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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교수가 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 ⑤

조선의 근대화 추구한 실학적 실용주의자 박지원…중국어공용화론 제창한 급진 개혁주의자 박제가

박지원과 박제가

  •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조선의 근대화 추구한 실학적 실용주의자 박지원…중국어공용화론 제창한 급진 개혁주의자 박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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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기획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지식인을 꼽으라면 바로 초정 박제가다. 개인적 편견인지 몰라도 박제가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문제적 지식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적이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이른바 모더니티에 정공법으로 대결했던 것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던 서자 출신이라는 사회적 구속에도 그가 보였던 담대한 태도다.
조선의 근대화 추구한 실학적 실용주의자 박지원…중국어공용화론 제창한 급진 개혁주의자 박제가
“너는 시집간 지 10년이 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으니… 뒷날로 보면 후손이 끊어지고 말았구나!… 나는 가고 싶었지만, 직책상 함부로 도의 경계를 넘을 수 없어, 묘지명을 지어 광중에 넣는다. 후세사람들은 이를 보고 네가 정유 박제가의 딸임을 알 것이다. 명을 짓는다.”

박제가가 더없이 사랑하던 둘째딸 윤씨 부인이 죽었을 때 쓴 글이다. 이 비감한 글을 읽고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자식을 먼저 보내야만 하는 부모의 애끊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박제가의 한없이 드높은 자존심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되던, 새로운 사회변동의 기운이 꿈틀거리던 조선 후기의 한가운데를 거침없이 걸어갔던 지식인,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천년 뒤에도 천만 명의 이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자기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냈던 지식인이 바로 박제가다. 박제가와 그의 스승 연암 박지원이 바로 이번 기획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이다.

18세기, 새로운 시대정신의 요구

우리 역사의 시대정신과 지식인을 다루는 이 기획에서 가장 고심한 부분 중 하나는 앞서 말한 바 있지만 어떤 지식인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이황과 이이를 다룬 다음에 누구를 택할 것인지를 놓고 지난 한 달 동안 여러 생각을 했다. 예송 논쟁을 중심으로 우암 송시열과 미수 허목을 다뤄볼까도 고민했지만 곧바로 조선 후기로 오기로 했다.

송시열과 허목이 활동했던 시기는 17세기다. 이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 인조반정, 병자호란, 북벌 추진으로 이어진 시대다. 이 시기에는 송시열과 허목 외에도 김육, 윤휴, 이현일, 김창협 그리고 유형원 등의 지식인 정치가들이 개성 있는 지적 활동과 치열한 현실 참여를 벌였다.

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체제를 정비하고 조선을 소중화(小中華)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실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암중모색한 시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면의 제한을 고려할 때 조선 후기로 그대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기획의 핵심 주제가 시대정신의 관점에서 본 지식인이라는 데 있다.

시대정신의 시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적 변화와 그 변화를 판독하는 새로운 철학과 사상이다. 여기서 시대적 변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그것은 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 그리고 다시 근대사회로의 변동을 뜻한다. 물론 17세기를 중세사회가 쇠잔해가고 근대사회의 단서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였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송시열과 허목으로 대표되던 당시 지식사회의 주요 흐름은 유교적 이상사회의 구현에 있었지 새로운 모더니티의 모색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와 비교해 18세기는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려는 흐름이 세계적으로 나타났던 시기다. 서구사회에서는 정치·경제적으로 모더니티가 본격화됐으며, 동아시아에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한 지식인들이 실학파다. 이 실학파가 등장한 데에는 내외적인 조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내적으로는 시대정신으로서 성리학이 한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 성리학은 철학적으로 내적 발전을 이뤘는지는 몰라도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적지 않은 한계를 드러냈다. 한편 외적으로는 청나라를 통해 새로운 서양 문물이 조선에 소개되면서 서구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서양의 과학 및 기술은 물론 천주교를 포함한 서양 문화와의 본격적인 접촉이 조선 사회에서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었다.

실학파의 조류

실학에 대한 우리 학계의 관심은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계속 돼왔는데, 이 기획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한 심포지엄이 2005년 10월에 열렸다. 한국실학학회, 한국한문학학회,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한 ‘박지원·박제가 서거 2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그것이다. 이 학술회의는 그 주제를 ‘18세기 조선, 새로운 문명 기획’으로 삼고 18세기 조선을 새로운 문명국가로 개조하기 위한 치열한 지적 고투(苦鬪)로서 박지원과 박제가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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