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호

맥킨지 최초 한국인 여성 파트너 김용아

“‘유리 천장’ 뚫는 롤 모델 많이 나와야 경제적 이득”

  • 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11-04-21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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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킨지 최초 한국인 여성 파트너 김용아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그는 ‘기록의 여인’으로 통한다. 2005년 서른두 살에 한국 여성 최초로 맥킨지의 파트너가 됐다. 파트너는 한국기업의 부사장급.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뿐 아니라 리더십, 도전정신을 갖춰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그는 맥킨지 서울 오피스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후 결혼한 상태로 회사에 다닌 최초의 여성 컨설턴트다. ‘최초 사내 컨설턴트 부부’라는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다. 그뿐인가. 최단시간인 4개월만에 어소시에이트 (Associate)에서 팀장(Engagement manager)으로, 4.5년만에 어소시에이트에서 파트너로 승진하는 기록도 세웠다. 일반적으로 어소시에이트에서 파트너로 승진하는 데는 6-7년이 걸린다.

    이 화려한 커리어의 주인공은 김용아(38) 맥킨지 파트너다. 4월11일 서울 중구 수하동 맥킨지 서울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언론사와 단독 인터뷰하기는 5년 만에 처음이다.

    단정한 쇼트커트 헤어에 깔끔한 블랙정장, 차분한 말투….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외양은 성실하고 꼼꼼한 그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 완벽한 모습이 숨 막히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인터뷰 틈틈이 배어 나오는 인간미 때문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얘기를 할 때면, 그는 따스한 ‘엄마 미소’를 지었다.



    여성 파트너가 유리한 이유

    ▼ 맥킨지 파트너가 된 지 6년이 흘렀습니다.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한국 여성 최초 파트너’라는 타이틀 때문에 대외적으로 강연할 기회가 많아졌어요. 대학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커리어에 대한 조언도 하고 있죠. 여성의 리더십이나 파트너 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궁금해하는 분이 많았어요. 컨설턴트로서 클라이언트에게 임팩트를 주는 것 못지않게, 사회 어젠다가 될 만한 부문에 기여하는 것도 제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는 무엇인가요?

    “2008년 건국 60년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뒤에서 ‘우먼 코리아로 가는 길’을 주제로 진행한 강의가 기억에 남아요. 당시 남성 관객의 공통적인 질문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올라갔다. 여성 대학진학률이나 사법시험 합격률도 높아졌는데 여성 고용 불평등이 진짜 문제냐’는 것이었어요. 나이 지긋한 남성분은 ‘예로부터 한국은 여자가 곳간 열쇠를 가져서 대대로 여성 파워가 세다’고 하셨고요. 그때 ‘사회적 인식이 아직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여성이 지속적으로 사회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지, 기업에서 임원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여성 리더를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는지, 여성이 리더로 성장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갖췄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 여성 파트너를 대하는 클라이언트의 반응은 어떤가요?

    “어려운 점도 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많아요. 언론에 종종 나오다보니 ‘유명한 사람이다’ 하며 호감을 나타내기도 하세요. 아무래도 첫 대화를 풀어가기 쉽죠. 제 얘기를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여주시는 것도 장점이에요.”

    ▼ 술과 골프는 한국 사회에서 네트워크를 쌓는 중요한 수단이죠. 하지만 여성에게는 불리한 게임의 법칙입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 중 오히려 술자리나 골프로 관계를 형성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분도 많아요. 남자들끼리는 술자리를 같이하거나 골프를 함께 쳐야 한다는 사회 통념 때문에 ‘하기 싫다’는 말을 못하는데, 여자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저는 점심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술자리나 골프장에서 못하는 진지한 얘기를 나눠요. 관계를 형성하는 데 비즈니스 안팎으로 공통된 대화 주제를 찾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전문성이 있는 의료와 금융 분야 이야길 하며 신뢰를 쌓습니다. 일 외적으로는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CEO분들이 종종 제게 자녀 진로 상담 요청을 해오세요. 때론 클라이언트의 자녀에게 ‘MBA에 진학하기 위해 에세이는 어떻게 쓰는지, 대학 진학과 입사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지’ 등 제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죠.”

    남편의 외조

    ▼ 컨설팅 업무는 야근이 많은 ‘하드 워크(hard work)’로 유명합니다. 파트너로서, 엄마·아내로서의 임무를 병행하는 데 내적 갈등은 없었나요?

    “아들과 보내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저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엄마가 하는 일을 이해시키고,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친구와 사귀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폭넓게 물어봐요. 월·화·수 계속 저녁 약속이 있다면, 주중 하루 정도는 아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집에서 남은 일을 하죠. 일주일, 한 달 계획을 미리 수립해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게 맥킨지의 장점이에요. 아이에게 중요한 날은 되도록 같이 있어주려고 노력해요. 주말에 출근할 땐 아들을 사무실에 데리고 나와요. 엄마가 이런 일을 한다고 보여주면 자긍심을 갖게 돼요.”

    ▼ 일과 가정 중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닥칠 텐데요.

    “맥킨지는 ‘우먼즈 이니셔티브(Wo men’s Initiative)’란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이 어떻게 커리어를 매니징할 것인지 교육해요. 거기서 접한 한 미국 여성 CEO의 얘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백악관의 초대와 딸의 발표회가 겹쳤는데 그는 딸의 발표회에 가는 걸 택했어요. ‘백악관에 초대된 사람은 수백 명이라서 자신이 안 가도 상관없지만, 딸에게는 나밖에 없다’는 게 의사 결정의 이유였어요. 회사는 일이 후순위인 직원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직장이 항상 먼저이거나 가정이 꼭 먼저가 될 순 없죠. 어느 시점이냐에 따라 나의 커리어가, 아이의 진로가, 때론 남편의 일이 우선시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상의하면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야겠죠.”

    맥킨지 출신인 그의 남편은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두 사람은 늘 공통 관심사를 나누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함께 세운다. 그가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남편의 외조(外助) 덕이 크다.

    “서로 비즈니스 목표가 같아서 말이 잘 통해요. 문제를 보고 해결하려는 성향도 비슷해요. 신혼여행을 갈 때는 지역 후보를 놓고, 선정기준을 정하고, 평가 점수를 매겨 여행지를 결정했습니다. 신혼여행지에서는 5년, 10년, 20년 단위의 인생 계획을 도표로 그렸죠. 서로의 일에 관심을 갖고, 좋은 부분을 부각해 말해주는 것도 장점입니다.”

    통역사로 오해한 첫 클라이언트

    김씨는 1973년생이다. 은행원인 부친을 따라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 3년은 미국에서, 중학교 3년은 영국에서 보냈다. 그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분석하는 ‘컨설턴트 마인드’를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 교육의 영향이 크다.

    “영국에서 부모님은 제게 ‘여동생과 남동생과 함께 대영박물관에 다녀오라’는 과제를 주셨어요. 그냥 갔다 오는 게 아니라, 박물관에 어떻게 갈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기행문도 쓰게 하셨죠. 지하철 동선을 짜는 것부터 고민했고, 기행문을 쓰기 위해 박물관을 더 열심히 둘러봤어요. ‘어떤 엽서로 글을 장식하면 좋을까’도 생각했죠. 영국 학교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체계적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에세이를 많이 써본 것도 도움이 됐어요.”

    그가 컨설턴트의 꿈을 품은 것은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재학 시절이다. 컨설팅 업체에 다니는 대학 서클 선배들과의 대화 후, ‘컨설턴트가 천직’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CEO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매번 색다른 프로젝트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는 4학년이 되자마자 맥킨지 서울사무소에 지원 에세이를 보냈다.

    “당시만 해도 상시 지원체제였어요. 남들은 여름이나 가을에 지원서를 내는데, 저는 3월에 보냈죠. 그래서 인터뷰 프로세스가 굉장히 길었어요. 10번 정도 인터뷰를 했죠.”

    1996년 꿈에 그리던 맥킨지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만 해도 여성 컨설턴트가 드물던 시절이었다. 그는 첫 프로젝트를 위해 고객사를 방문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프로젝트를 위한 첫 회의. 고객사의 임원도, 프로젝트 팀원도, 컨설턴트도 저를 빼고 모두 남자였어요. 고객사 CEO가 모두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당황하시더라고요. 제게 ‘통역사시죠?’ 하고 묻는 분도 있었어요.”

    맥킨지 최초 한국인 여성 파트너 김용아

    김용아 맥킨지 파트너는 여성 후배들에게 “사랑받기보다 존경받는 프로가 되라”라 조언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한 기업에서는 여성 과장 1명을 만났다. 김 파트너는 6개월간의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회식 자리에서 그 과장에게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활약이 고객사 경영진의 ‘여성 인력에 대한 편견’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고객사에서 처음 컨설팅 팀 프로필을 받고 ‘여자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얘기했는데, 여성 과장님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잘되면서 고객사 경영진이 ‘우리 회사도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게 됐다는 거예요. 지금 여성 과장님은 그 회사의 임원이 되셨죠.”

    맥킨지 서울사무소의 여성 인력 비율은 45%에 달하며 직급별로 여성이 포진해 있다. 지난해에는 또 다른 여성 파트너가 탄생했다. 지금은 여성 컨설턴트가 보편화돼 있지만, 이는 사회적 인식 전환을 위한 끝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제 여자 선배는 고객사로부터 ‘조직 분위기상 여성과 일하기 어려우니 팀에서 빠지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 맥킨지는 ‘프로젝트를 위한 베스트팀을 꾸렸기 때문에 한 명도 뺄 수 없다. 꼭 빠져야 한다면 이 회사 프로젝트를 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대응했죠. 결국 고객사가 저희 요구를 받아들였고, 프로젝트가 잘돼 연장됐어요. 클라이언트가 다음 프로젝트에도 ‘여성 컨설턴트를 꼭 넣어 달라’고 당부했죠. 그 얘기를 들으면서 맥킨지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어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다

    그는 199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MBA 학위를 받고 2001년 맥킨지 서울사무소로 복귀했다. 한 대학병원을 담당하며 환자 중심의 운영시스템과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병원의 진료 및 수술 건수가 늘어나고 환자의 대기 시간도 줄었다.

    당시만 해도 맥킨지 서울사무소에서 의료 파트는 미개척 분야였다.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의료 분야 연구팀까지 만들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2003년 출간된 서적 ‘한국의료개혁 2010’이다.

    “‘한국 사회가 점차 노령화하고 있고, 의료 선진화가 필요한데 왜 체계적으로 안 될까’ 하는 의문을 가졌어요. 그래서 9개월 동안 클라이언트 일을 안 하고 ‘의료 제도 개혁’에 관한 연구에 매달렸죠. 당시 팀장급이었는데, 제 도전을 걱정해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팀장은 부파트너, 파트너로 승진하기 전 클라이언트 씨앗을 뿌리는 시기거든요. 하지만 저는 승진을 못하더라도 해보고 싶은 걸 하자고 생각했죠. 저희 연구가 알려지면서 여러 병원, 제약회사에서 컨설팅을 요청해오기 시작했어요. 그 덕분에 파트너 선정 평가에서 ‘개척정신이 강하고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위험감수)을 했다’는 평을 들었어요. 맥킨지는 ‘남이 하지 않은 어떤 도전을 했나’ ‘회사를 더욱 좋아지게 만들었나’를 인재 평가의 기준 중 하나로 삼는 것 같아요.”

    그의 프로젝트는 의료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하나의 성과는 의료 경영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그는 대한의사협회와 서울대병원이 공동 운영하는 의료고위과정(AHP)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훌륭한 의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지 못하는 분들을 보고 안타까웠어요. 미국에서는 병원 경영을 위해 의사가 MBA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의료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 설립은 저희 책에서 나온 아이디어예요. AHP 과정은 병원 경영, 최신 의료 트렌드, 조직관리, 성과개선법 등을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금융은 그의 또 다른 전문 분야다. 한국 금융 산업은 다른 산업군과 달리 세계화에서 뒤처져 있다. 유독 보수적인 한국 금융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글로벌 은행 톱10’을 보면 중국계 은행이 1,2위를 달립니다. ‘아시아 톱10’ 은행을 보면 중국계가 6개, 인도계가 2개, 싱가포르계가 2개입니다. 한국의 은행은 ‘아시아 톱10’에 하나도 끼지 못합니다. 중국, 인도의 은행이 한국의 은행에 비해 역량이 더 뛰어난 게 아니라, 인수·합병(M·A)을 훨씬 더 공격적으로 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다른 나라 은행이 선점해버리면 우리는 (해외 진출을)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스페인 은행인 산탠더는 1985년 세계 135위였다가, M·A를 통해 현재 ‘세계 톱10’으로 성장했습니다. 산탠더는 ‘초반 M·A의 3분의 2는 재무적으로 실패했지만, 실패라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자 투자였다’고 말합니다. 국내 은행도 작은 실험부터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논리적 사고 + 소프트 스킬

    컨설턴트는 최근 많은 대학생이 꿈꾸는 유망 직종이다. MBA를 마친 우수 인력들이 컨설팅 기업에 몰리고 있다.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논리적 사고가 중요하죠. 문제를 구조화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잘게 쪼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창의적 사고나 분석력은 기본이고요. 직급이 올라갈수록 중요한 건 대인 커뮤니케이션(interpersonal communication) 스킬이에요. 권고안이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실행이 안 되니까요. 소프트 스킬이 답을 찾는 능력만큼 중요합니다.”

    김 파트너에게는 꼭 직업병 같은 습관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작은 문제에 부딪히면,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골몰한다. 이 무서운 습관을 통해 그는 분석적 사고를 체화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어떤 식으로 구조를 만들면 엘리베이터 운영이 효율적일까’를 고민해요. 붐비는 시간대, 운영 방법 등을 고려하죠. 주차하기 어려울 땐 주차난 해소방법을 생각하고요.”

    ‘최초’ 타이틀을 거머쥔 이에게는 개척자의 숙명이 뒤따른다. 그는 임신한 채 회사를 다닌 첫 여성 컨설턴트였다. 그는 책을 집필할 당시 금요일에 원고를 넘기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 아들을 낳았다. 여성이 출산 때문에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금요일까지 근무, 월요일에 출산

    “후배들에게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땐 제게 그런 얘기를 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후배에게 임신한 여성이 할 만한 프로젝트 등을 조언하고 있어요. 10년 전에 비해 이제는 결혼하고 출산한 여성 컨설턴트가 많아졌어요.”

    ▼ 여성 컨설턴트가 증가하고 있는데, 여성은 특히 어떤 점에서 유리한가요?

    “구매 의사 결정자 중 여성이 많습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데 여성이 유리하죠.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여성이 앞서는 것 같아요. 할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조리 있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남자의 세계는 군대와 학연 등으로 위계질서가 분명한 데 비해 여성은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사회의 짜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기회가 많죠.”

    ▼ 다른 기업에 근무하는 여성 임원들과의 교류도 잦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가장 힘든 점으로 꼽나요?

    “‘롤모델이 없었다’는 게 공통적인 얘기입니다. 상대방을 제압하는 남성의 리더십을 따라 하는 게 힘들었다는 분도 계시고요.”

    ▼ 파트너님도 자신만의 리더십을 찾는 데 시행착오를 겪으셨죠?

    “저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그의 장점을 많이 얘기해서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편이에요. 저는 소프트하면서도 확고하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믿어요. 사회 초년병 때는 남자처럼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제 몸에 맞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만의 색깔을 찾자고 생각했죠. 하지만 ‘대치(confrontation)’를 선호하는 클라이언트는 저를 처음 만난 뒤 콘텐츠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대요. 제가 상대방의 의견을 바로 반박하는 게 아니라, 잘 들어준 뒤 차분하게 제 생각을 개진했기 때문이죠.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그때 ‘자기만의 색깔을 갖되 상황에 따라 리더십을 변형할 줄 알아야 한다’고 깨달았어요. 가장 잘 쓰는 연장을 갖고 있되 다른 상황에서 사용할 보조 도구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 2011년 여성 고용에서 가장 큰 이슈는 뭘까요?

    “최근 3~4년 사이 ‘우리 회사가 여자를 너무 많이 뽑게 돼 문제’라고 말하는 CEO가 늘어났습니다. 보통 기업의 여성 직원 비율이 몇 %인지 보는데, 그 표면적 수치를 보고 ‘여성 고용 차별이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해요. 여성이 직급별로 어느 정도 비율을 차지하고,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2008년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여성 과장 비율은 8%였어요. 국내 100대 대기업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은 1%도 되지 않았고요. 반면 유럽 기업은 10%에 달합니다. 여성 취업률이 60% 정도 되는데, 그중 절반은 비정규직입니다. 전문직 여성도 L커브를 겪습니다. 출산 후 고용의 단절, 노동의 단절로 인해 하향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제는 고용의 연속성과 질을 얘기할 때입니다.”

    맥킨지 최초 한국인 여성 파트너 김용아
    ▼ 기업이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맥킨지는 여성 인력을 리테인(retain ·유지) 하는 측면에서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풀타임, 파트타임 근무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마음가짐(mindset)과 태도(behavior)입니다. 경영진이 자신의 행동과 말이 여성 인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고 변화에 동참하는 게 중요합니다.”

    ▼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보통 ‘요즘 여자들이 사회생활 하느라 애를 안 낳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은 나라가 출산율도 높습니다. 여성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과 인프라 투자가 뒷받침돼 있기 때문입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한국은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과 출산율이 모두 하위를 기록했어요. 정부는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하면 경제적 이득이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여성의 경제 활동을 장려하려면 비용이 발생하는데, 기업과 개인이 그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육아 시설 확충 등을 지원해야죠.”

    그의 수많은 조언 중 가슴에 와 닿은 건 “슈퍼우먼 콤플렉스부터 버리라”는 메시지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이자 아내, 동시에 최고의 커리어 우먼이 되겠다”는 건 애초 불가능한 목표기 때문이다.

    “실현할 수 없는 목표를 세팅하는 순간, 실패로 갈 수밖에 없어요. 결국 안 되니까 한꺼번에 포기하고, 특히 직업을 포기하죠. 일로는 슈퍼우먼이지만 다른 부분에서 부족하다면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매 순간 항상 잘할 수 없어요. ‘여자니까 혼자 해결하지 못한다’고 할까봐 여성은 도와달라는 말조차 잘 꺼내지 못합니다. 주변에 멘토를 많이 두는 게 중요해요.”

    사랑받기 보다 존경받기를

    누구에게나 사랑받길 원하는 여성의 성향에 대해서도 그는 일침을 가했다. 직장에서 프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존경받는 것이 낫다”는 게 그의 충고다.

    “많은 여성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해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나이스하게 대하고, 후배나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말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존경받으려면, 바른 결정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고 쓴 소리도 할 수 있어야죠. 필요한 갈등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여성 자신이 먼저 바뀌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직장 생활을 시집가기 전초 단계로 여기는 미혼 여성에게 따끔한 비판을 가했다.

    “결혼하면 직장 그만두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여성은 취업할 필요가 없어요. 뚜렷한 커리어 목표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나 이론과 실제의 괴리를 경험하게 마련이다. ‘여성 인력 운용 확대’를 설파하는 그도 맥킨지 파트너기 이전에 아들을 키우는 엄마다. “아들이 며느리의 가사를 대신하는 걸 보면 속상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아들이 소꿉놀이하던 모습을 전하면서 말이다.

    “하루는 아들이 남자친구와 소꿉놀이 하는 걸 봤어요. 친구가 아빠를 하겠다니까, 아들은 ‘난 훌륭한 엄마 할래’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저처럼 화장을 하고 회사 갈 준비를 하더라고요. 회사를 다녀온 뒤 아빠를 맡은 친구가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아들이 ‘같이 밥을 하자’고 했어요.(웃음) 저는 아들을 키우면서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저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사회적 통념상 여자가 주장을 내세우면 ‘대가 세다’고 하고, 남자가 울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하잖아요. 남자라서 갖는 심리적 부담도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남녀를 구분하기에 앞서 하나의 인격체로 키우고 싶었어요. 맥킨지에서 2000년대 초 ‘우먼코리아 보고서’라는 책을 냈는데, 그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고정관념 부수기’라고 지적했습니다. 남자는 직장에서 일하고 여자는 식사를 준비하는 교과서 속 그림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점을 심어줬다는 거죠. 하지만 제 아들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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