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자살은 사회적 질병…정책적인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

‘자살 없는 사회’ 전도사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장

  • 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1-05-19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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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ECD 1위 자살률, 자살증가율
    • 과도한 경쟁과 성과 지상주의 … ‘자살 권하는 사회’
    • “자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없애라”
    • 자살 예방 전문가 300명 양성
    “자살은 사회적 질병…정책적인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대한민국 최고 인재를 선발해놓고 자살에 이르게 한 학교를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그러나 카이스트 사태를 통해 수면으로 드러났을 뿐,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이 어제오늘 생긴 일은 아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률은 지난 10년 사이 2.38배나 증가했다. 2009년 한 해 동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는 1만5431명. 인구 10만명당 31명이 자살을 선택한 셈이다. 하루 평균 42.2명꼴, 34분마다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사망률 1위, 자살사망률 증가 속도 1위. 2011년 현재 대한민국의 자살 지표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하규섭(50)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오래전부터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씻기 위한 사회운동을 벌여왔다. 2004년 협회 창립 때부터 회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회장으로 취임한 것. 지난 3월 국회에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하 자살예방법)’이 통과되면서 그의 노력은 1단계 결실을 보았다. 이 법안은 자살예방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수립, 자살실태조사 및 정보관리체계 구축, 자살예방센터 설치, 자살 위험자 지원 및 정신건강증진 대책 마련, 자살예방 상담과 교육, 자살유해정보 예방체계 구축, 자살자 및 자살시도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 제정 후 정부가 시범운영을 시작한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센터장을 맡아 자살예방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마련 등을 위한 또 다른 활동을 시작한 하 회장은 감개무량한 듯 보였다. 그는 “법 제정을 위해 함께 애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자살 급증

    ▼ 자살예방법 제정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신 걸로 압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네. 17대 국회 때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자살예방 관련 법안을 제출했지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된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임두성·강창일·윤석용 의원 세 분이 각각 대표로 나서 법안을 발의했지만 심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잘 될까 마음 졸였죠. 그런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 신상진 의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힘을 보태면서 일사천리로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기쁘고 감사해요.”



    ▼ 애초에 법안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건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이 법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자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몰라요. 신 의원만 해도 지난해 9월 우리 협회가 ‘세계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에 초대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날 우리 회원들의 설명을 듣고 ‘자살예방법 제정이 이렇게 시급한 현안인지 몰랐다. 국회에서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거지요. 그동안 자살예방이 왜 중요한지 열심히 알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걸 절감합니다.”

    하 회장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라는 이슈가 얼마나 중요한지, 왜 정부가 나서서 자살 ‘예방’ 정책을 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994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10명이 채 안 되는 수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자살자 수보다 적었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자살률이 서서히 높아지더니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급상승했다. 자살이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며, 사회 흐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무렵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자살률이 올라갔지만 대부분 외환위기가 지난 뒤 예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만 잠시 떨어지는 듯 보이던 자살률이 2000년대 이후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2000년대 중반에는 자살자 수가 인구 10만명당 20명 수준이 됐다.

    “이때 연구자들이 심각성을 느끼고 자살예방협회를 만든 거예요. 2004년부터지요. 정부도 자살예방 5개년계획을 수립했습니다. 현재 2차 5개년계획이 진행 중이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자살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자살사망률 증가 속도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따라올 나라가 없습니다.”

    ▼ 유독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고 자살사망률 증가 속도가 빠른 이유는 뭘까요?

    “정신과적 문제와 복지 문제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봐야죠. 협회 연구 자료를 보면 전체 자살자의 약 30%는 우울증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50%는 신체적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 성적 문제 등 개인적인 문제로 자살에 이르고요. 나머지 20%는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죠.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에도 우울증 환자가 있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신체적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세상을 떠나는 걸까. 저는 우리 사회가 압축 성장하고 급격하게 변화한 점이 자살률과 자살 증가속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급격한 가족 해체와 통신 수단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고민을 털어놓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여지가 적어진 것도 문제죠. 예전에는 ‘다 같이 잘살아보자’ ‘민주화를 이룩하자’ 같은 사회 공통의 지향점과 가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없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이제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가치가 돈이 됐으니,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어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변화하는 조류에 잘 적응해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가 열광하지만 변화에 더디게 적응하거나 아예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면당하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배려하는 서비스나 제도,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

    “자살은 막을 수 있다”

    ▼ 최근에는 명문대 학생, 대학교수,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는 이들의 자살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앞의 얘기와 맥이 통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성과지상주의가 지배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사실 성과를 내는 것 못지않게 성과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사회 전체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으로 봐야겠죠. 100을 가진 사람이 50을 잃었다고 가정합시다. 애초 10을 가진 사람 눈에 그 사람은 50이나 가진 걸로 보이겠지만 실은 50을 잃은 고통이 있는 거거든요. 잃을 게 적은 사람,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많이 가진 사람이 왜 자살하나 싶겠지만 모든 건 상대적인 거죠.”

    하 회장은 “자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 미비도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한때 자살률 세계 1, 2위 국가였지만 관련법을 만들고 자살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자살률 증가세를 꺾었다는 것이다.

    ▼ 자살예방법이 제정됐지만, 지금도 과연 이 법이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의심하는 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협회 차원에서 자살예방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도 바로 그겁니다. 많이 배우신 분이든 아니든 한결같이 ‘법을 만든다고 죽을 사람이 안 죽냐?’‘법으로 자살하지 말라고 하면 자살을 안 하냐?’되물었어요. 그런데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면 교통사고 사망자가 줄고, 국민건강증진법을 제정하면 암 사망자가 줄어드는 건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나요. 국가가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분명히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건 자살 문제 해결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하 회장은 “누가 위궤양 혹은 간염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와 우울증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낌이 서로 다르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사람들은 분명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조차 싫어하고, 자살에 따른 사망을 다른 죽음과는 다른, 불편하고 어색한 것으로 여긴다. 하 회장에 따르면 자살예방협회는 홍보대사를 구하기조차 어렵다.

    “기업도 자살예방 활동을 후원하는 건 꺼려요. 돈만 쓰고 오히려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제 막 법이 제정된 터라 아직 관련 예산은 없는데, 도와주는 분도 거의 없으니 사실 기쁜 만큼 걱정도 많습니다.”

    국민 100명 중 1명은 자살 시도자

    그는 이런 의식을 바꾸고, 자살을 사회 문제로 받아들이며, 정책적인 노력을 통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 것만이 날로 높아지는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 구체적으로 자살예방법이 어떻게 자살을 막을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먼저 자살의 프로세스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보통 첫 번째 자살 시도로 죽는 사람은 드물어요. 대부분이 5번, 10번씩 시도하고 그때마다 응급실로 실려 오죠. 그럼 왜 대부분이 계속 자살을 시도하느냐. 그걸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죠. 삶의 옵션 중 잘못된 옵션, 잘못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자살인 겁니다.”

    하 회장은 “한 해 자살자 수가 1만5000명이라면 대략 20만명이 자살 시도를 한 것”이라며 “우리 국민 중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는 사람이 50만명쯤 되는 걸로 추산된다. 이들만 잘 관리해도 자살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법 제정을 통해 이제는 국가에서 이들을 보호하고, 고통에서 회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하고 있는 일이죠. 우리 법은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지방자살예방센터를 만들어서 실질적인 자살예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자살예방 전문가 교육을 정부가 지원하도록 했어요. 또 정부가 직접 자살 실태 조사도 하게 했고요. 앞으로 마련될 법안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이런 활동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길 겁니다.”

    하 회장은 외국 입법례를 들어 우리나라에 마련돼야 할 제도를 소개했다. 첫째로 거론한 것이 ‘심리적 부검(Psych- ological Autopsy)’. 자살자가 생기면 그가 왜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밝히는 제도다. 자살 예방 선진국에서는 전문 검사관이 자살자의 가족 및 주변인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고인의 일기 등 남은 기록과 경찰의 사건수사 기록, 병원의 의무기록, 검시관의 진술 등까지 수집해 자살 원인을 규명한다. 이처럼 정리한 자살자에 대한 심층 연구 결과는 자살예방 대책을 수립하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살자에 대해선 덮어두길 원해요. 이런 상황에서 자살자의 신상 정보를 누가 어떻게 수집하고 관리할 것이냐,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보호되는 정보를 자살자라고 해서 함부로 공유할 수 있을 것이냐 등의 민감한 문제를 반드시 검토해야 하겠지요. 또 심리적 부검을 제대로 하려면 정신보건 전문가들이 경찰의 현장조사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는 게 좋은데 그런 협조 체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할 겁니다. 현재는 자살 시도자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119가 출동하는데, 그때 소방청과 병원·자살예방센터가 어떤 정보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도 잡혀 있지 않은 상태예요.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 어떻게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잘 담는가 하는 것이 정부나 우리 협회가 안고 있는 숙제입니다.”

    하 회장은 “4월 말 한국자살예방협회 주도로 ‘자살예방정책 포럼’을 열고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며 “앞으로 구체적인 내용들을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신보건센터 네트워크 구축

    ▼ 법 제정 후 새로 문을 연 중앙자살예방센터장도 맡게 되셨는데 여기서는 어떤 일을 하십니까.

    “이곳은 정부 정책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실행 조직이 될 거예요. 현재는 시범운영 중이라 시행령·시행규칙 마련 등 여러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일단 자살 예방을 위한 밑거름, 즉 튼튼한 기초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튼튼한 기초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십시오.

    “현재 전국적으로 보건복지부 관할 정신보건센터가 164개 있어요. 지자체 단위의 자살예방센터도 있고 관련 민간기관도 여러 개 되지요. 문제는 민간기관의 경우 대부분 규모가 작고 영세하며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각각 계란으로 바위를 깨고 있는 셈이죠. 이런 기관들을 잘 조직화해서 시스템을 짜면 훨씬 큰 힘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또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올해 안에 자살 예방 전문가 300명을 양성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네트워킹 강화와 인력 보강 등을 통해 자살을 막는 힘을 기를 생각입니다.”

    하 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살을 고민하는 위험자는 20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들을 지켜보며 마음 졸이는 가족까지 생각하면 인구의 10% 이상이 ‘자살’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자살시도자와 자살위험자 등 관리대상을 빨리 발견해 자살에 이르는 걸 막는 사람을 ‘게이트 키퍼’라고 부른다. 하 회장은 ‘게이트 키퍼’ 양성을 위해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올해 전국적으로 보급할 계획이다.

    “5월 중순부터 새 프로그램에 따른 첫 게이트 키퍼 교육이 시작됩니다. 지자체 자살예방센터 관계자, 자살예방 문제에 관심 있는 교수, 군과 경찰청의 자살 관련 전문가 등 24명을 첫 교육생으로 모셨어요.”

    중앙자살예방센터 시범 운영과 게이트 키퍼 교육 등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자살을 줄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하 회장의 목소리에서 설렘과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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