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⑦

‘에고를 버리고 예술을 껴안으니 피안이 여길세’

무주 적성산의 예술가 이익태와 두 여자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에고를 버리고 예술을 껴안으니 피안이 여길세’

1/6
  • 자유분방한 예술가로 알려진 ‘저산’과 예술을 사랑하는 두 여자가 만나 무주 적상산의 폐교에 터전을 마련했다. 세간의 온갖 잣대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다. 억압과 경쟁구도를 지워버린 공간엔 허랑한 자유가 넘쳐난다. 바람과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다.
‘에고를 버리고 예술을 껴안으니 피안이 여길세’

예술가 이익태(가운데)와 공동생활을 하는 두 여자가 한가로이 춤을 추고 있다.

‘ 새들아/ 여긴 허공이 아냐/ 머리를 박지마라.’

유리창에 흰 물감으로 그렇게 쓰여 있다. 풍경이 거꾸로 비치는 유리창엔 걸핏하면 새들이 날아와 머리를 처박는다. 돌멩이가 날아왔나 싶어 깜짝 놀라 고개를 들면 전속력으로 날다 유리에 머리를 부딪힌 새가 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 꼴을 산꼭대기에 사는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런데 다친 새를 안고 안타까워 쩔쩔맸을지언정 저런 글귀를 써 붙일 생각은 못했다. 새들이 한글을 해독해서 날기를 자제할 리 없다는 건 합리에 길든 과학적 사고다. 그러나 전북 무주군 초리분교 인근의 새들은 한글해독 능력이 있나보다. 그렇게 써 붙인 뒤 추락사고가 한결 줄어들었다 한다.

방은 크지 않다. 분교 사택의 작은 방에 창만 크게 뚫었을 뿐인데 새에게 말을 거는 글을 써 붙인 뒤 이 방은 슬며시 기운이 달라졌다. 새와 인간이 만나고 교감할 수 있는 영역이 됐달까. 초배지 바른 방 안에는 여기저기 푸르게 물들인 한지조각이 붙었다. 얼룩이 졌거나 뚫어진 자리를 적절히 기운 흔적이다. 그러나 가라앉은 닥종이 빛깔 위에 알맞게 내려앉은 쪽빛 네모꼴은 한 폭의 모노크롬 추상 회화다. 거실로 쓰는 방에도 그림이 있다 .먹으로 간결하게 밥그릇과 수저를 그려놓고 곁에다 ‘개밥그릇 씻어 아침 먹으니/ 아/ 한 식구 되었네’라고 써뒀다. 부엌에도 있다. 커다랗게 ‘밥’이라고 쓰고는 ‘한 그릇 한 그릇 /담을 때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라고 해설했다. 밥의 ‘ㅂ’자가 커다란 밥그릇이거나 웃고 있는 입 같다는 생각을 처음 해본다.

한반도의 배꼽

여기는 그림을 그리는 ‘저산’의 집이다. 집은 무주 적상산을 마주 보고 있는 마을의 옛 초등학교 분교인데 두 칸짜리 교실 중 하나를 작업실로 쓰고 뒤쪽 쓰러져가던 관사를 슬쩍 손봐서 살림집으로 만들었다. 이 공간은 말하자면 세간의 온갖 잣대로부터의 해방구다. 일정한 시간에 자고 깨서 움직여야 한다는 규칙도 없고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초조도 없고 남보다 앞서도록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는 긴장도 없다. 억압과 경쟁구도를 지워버린 공간엔 허랑한 자유가 넘쳐난다.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가득 찼다.

“무주는 삼태극의 땅이랍니다. 무주, 진안, 장수는 한반도의 배꼽쯤 되는 부분에 놓였어요. 아주 고요해요. 중심이 깊어 모든 진동이 멈추는 땅이에요.”

저산의 가족은 지금 셋이다. 혈연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등록부에 기재된 혼인관계도 아니지만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따로 또 같이’ 특별한 화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물결’과 ‘저산’이 가까이 사는 곳에 지난해 새롭게 ‘빔’이 등장했다.

“내가 좋은 여자가 생기면 집에 데려올 수도 있고 물결이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데리고 올 수도 있지. 자유롭고 성숙한 인간이라면 그 정도는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어? 물결하고 나는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관련되어 있어. 관계를 맺는 경우에는 서로를 소유하려고 하지만, 관련됨에는 집착도 소유도 없어. 사람 사이가 관계로 이어지면 일상이 틀 속에 갇혀 무감각해지지만 관련지어져 있으면 인생이 확장되고 보다 생생해지거든.”

“맞아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불확실한 것을 두려워하지요. 두려워서 관계를 맺어 틀 속에 서로를 묶어놓으려 하잖아요. 그러나 그 틀 때문에 도리어 관계 자체를 죽이고 마는 일이 허다하지요.”
1/6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목록 닫기

‘에고를 버리고 예술을 껴안으니 피안이 여길세’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