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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독립군’ 김준엽을 기리며

조국 광복 위해 싸우고 군사정권에 맞선 시대의 참스승

  • 황의봉│세종대 초빙교수·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hyp8610@daum.net

‘마지막 독립군’ 김준엽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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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교육계의 큰 별이자 지식인의 표상인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별세했다. 김 전 총장은 독립군으로 일제와 맞서 싸웠고 광복 후에는 학계에 투신해 교육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전두환 정권의 강압에 맞섰고 노태우 정부의 총리직 제의를 거절하는 기개를 보였다. 생전에 그와 남다른 교분을 가졌던 황의봉 전 동아일보 출판국장이 김 전 총장의 일대기를 돌아보고 추모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마지막 독립군’ 김준엽을 기리며

6월1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열린 김준엽 전 총장 발인식.

마지막 독립군 별세’

6월7일 오전 김준엽(金俊燁) 사회과학원 이사장(전 고려대 총장)의 별세 소식을 전한 많은 언론이 붙인 제목이다. 일제강점기 학병으로 중국 전장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충칭(重慶) 임시정부에 도착, 광복군에 가담한 ‘학병탈출 1호’ 김준엽의 행적은 그동안 하나의 전설처럼 회자돼왔다. 올해 91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마지막 독립군이 우리 곁을 떠났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김준엽 선생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보면 ‘독립군 김준엽’은 시대의 스승으로 불리는 애국적 삶의 시작일 따름이다. 6월10일 거행된 영결식에서 이기택 4·19혁명공로자회 회장은 “선생님은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나라의 기둥이셨고 우리의 힘이고 자랑이었다”고 추모했다. 일생을 학자로 초지일관하면서 그가 보여준 꼿꼿한 지성인의 자세와 치열한 시대정신 그리고 다양한 업적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끼게 해준 게 사실이다.

필자는 대학 1학년 때 김준엽 선생을 만나 근 40년 동안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가르침을 받고 또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최근 10여 년간에는 일년에 두세 차례 만나 뵙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거의 완벽한 기록으로 남긴 자서전 ‘長征’ 시리즈 5권과 중국 관련 저서들, 선생과 가까이 지낸 많은 분의 증언, 그리고 생전에 직접 들려주신 이야기를 토대로 독립군 김준엽에서 시대의 스승으로 살다 간 고귀한 삶의 주요장면을 더듬어본다.

일제가 한국을 강제병합한 지 10년이 지난 1920년 김준엽이 태어난다. 평안도의 북단으로 압록강에서 가까운 강계(江界)의 부유한 집안이었다. 압록강 부근의 시중(時中)에서 보통학교를 다녔고, 고등보통학교(5년제 중학교)는 압록강가에 있는 신의주고보에 다니게 된다. 평안도는 조선시대 때부터 차별대우를 받아온 지역으로 저항의식이 강했고, 만인평등을 주장하던 기독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다. 따라서 외세의 침략에 민감했고 망국 이후 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강계는 그중에서도 압록강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군 소식이 빨리 전달되는 곳이었다. 신의주고보 역시 이런 지역적 배경과 무관치 않은 학교다. 일제시대 신의주고보는 평양고보 함흥고보 등과 함께 동맹휴학을 가장 자주 하는 학교였다. 동맹휴학의 저변에는 항일의식이 흐르고 있었다.

학병 입대와 탈출계획

‘마지막 독립군’ 김준엽을 기리며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김준엽은 어린 시절, 군자금을 얻기 위해 잠입한 독립군들이 자신의 집을 드나드는 것을 보았고,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질 때면 대포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고 회고했다. 또 신출귀몰하는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지게 된 동경심이 후일 학병탈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도 했다.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과 집안 분위기 그리고 학창생활 속에서 항일의식이 자라고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일본 도쿄의 게이오(慶應)대학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김준엽은 대학시기를 통해 반골의식과 민족정신이 투철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동양사 중에서도 최근세사에 흥미를 느껴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도 조선의 멸망, 중국의 몰락, 일본의 근대화 성공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서였다.

1943년 여름방학을 고향에서 보내고 도쿄로 돌아온 김준엽은 9월 초 개학이 되자 조선인 전문학생·대학생들도 학병으로 징집한다는 소문을 접하게 된다. 학병 징집을 피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산으로 숨는 학생들로 학교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김준엽은 마침내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숙고를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학병으로 입대하자는 것이었다. 중국전선으로 가게 된다면 일군을 탈출해 동경해오던 독립군 임시정부로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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