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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④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

인재 선발 기준 바꿔 메이저리그에 돌풍을 일으킨 혁신가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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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독특한 선수 선발 방식,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거둔 투자는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의 최대 이변이자 혁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빈은 140년 동안 불문율처럼 이어져오던 우수 야구 선수의 평가 기준을 재정립하고, 숨어 있는 저평가 인재를 발굴했으며, 이들을 적극 기용함으로써 독보적인 성공 신화를 이룩했다.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빈의 놀라운 성공은 야구계는 물론 금융계, 비즈니스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2004년 미국 금융 월간지 ‘스마트머니’ 12월호는 미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파워 엘리트 30인을 선정했다. 1위는 최고의 투자자로 손꼽히는 세계적 거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2위는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차지했다. 30명 중 유일하게 경제 금융과 관련 없는 사람이 바로 빌리 빈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조지 W. 부시도 30명에 들지 못한 상태에서 빌리 빈이 포함됐다는 건 월스트리트가 얼마나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2007년에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빈을 최고의 메이저리그 단장으로 선정했다. 2009년 미국 유명 스포츠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도 빈을 지난 10년간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우수한 단장 10명 중 한 명으로 뽑았다.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월스트리트의 이면을 잘 그려낸 베스트셀러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는 빌리 빈의 이야기를 ‘머니볼(Money Ball)’이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이 책은 2003년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빈의 이야기는 현재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빌리 빈은 누구인가

빈은 1962년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태어났다. 곧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로 거주지를 옮겨 성인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자랐다. 그에게 야구를 처음 가르친 사람은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다. 빈의 아버지는 복무를 위해 종종 집을 비웠다. 이 때문에 집에 돌아올 때는 반드시 아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겠다는 의욕에 불탔다. 빈의 아버지는 신병 훈련을 하듯 아들에게 야구를 가르쳤다. 아버지와 함께 캐치볼을 하고 리틀 야구장을 누비는 건 어린 빈의 주요 일과였다.



빈은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운동에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생 때는 야구, 풋볼, 농구 등 주요 구기 종목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빈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야구였다. 당시 명문 스탠퍼드대가 그에게 야구-축구 합동 장학금을 제시했지만 많은 이의 예상을 깨고 이마저 거절했다. 스탠퍼드대는 1980년대 미식축구 최고의 쿼터백으로 꼽혔던 존 엘웨이의 프로 데뷔가 임박함에 따라 그를 대신할 고교 선수를 뽑으려 했다. 대학 측이 내건 조건은 나쁘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 또한 대학 진학을 원했다. 그러나 빈이 선택한 곳은 메이저리그 무대였다.

고교 마지막 해에 빈은 뉴욕 메츠 선수들과 조우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샌디에이고에 도착한 메츠 팀의 스카우터가 빈을 원정 팀 클럽하우스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에서 리 마질리, 무키 윌슨, 윌리 백맨 같은 메츠의 스타 선수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빈에게 “메츠는 네가 필요하다. 당장 빅 리그로 오라”고 부추겼다. 당시 메츠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던 명장 조 토레 감독도 빈에게 관심을 표했다. 어린 선수가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빈은 1980년 뉴욕 메츠에 12만5000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외야수로 입단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그는 오랫동안 마이너리그에서만 머물러야 했다. 기껏 메이저리그에 올라와도 타석에서 제대로 된 스윙 한 번 보여주지 못한 채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생활이 반복됐다.

선수로서의 빈은 자제력과 평정심이 매우 부족했다. 그는 삼진의 공포 속에서 어설프게 배트를 휘둘렀고, 번번이 투수에게 농락당했다. 1군 경기에 자주 출전하지 못하니 가끔 출전할 때 반드시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욕심이 앞서 항상 일을 그르쳤다. 결국 뉴욕 메츠는 그를 미네소타 트윈스로 트레이드했다. 여기서도 오래 머무르지 못한 그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거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까지 왔다.

1990년 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에서 빈은 은퇴를 결정했다. 그는 스카우터로 새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10년 전에는 모든 스카우터가 동경해 마지않던 유망주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나이도 서른 줄을 향해 가는데 언제까지 무명 선수로만 지낼 수는 없었다. 이미 결혼도 했고 곧 첫아이도 태어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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