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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알리의 전쟁 ②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 속으로 내던져 버리다

팍스아메리카나의 실상을 관통하는 대서사

  • 안병찬│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언론인권센터명예이사장 ann-bc@daum.net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 속으로 내던져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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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락 오바마는 알리의 충실한 팬이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무하마드 알리를 멘토로 여겼다고 한다. 오바마는 일찍이 ‘알리는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제목의 평론문을 써서 알리의 노력과 용기를 찬양한 바 있다. 권투천재 클레이는 전설적인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와 한 팀이 되어 변칙권투를 구사하고 떠버리 전술을 구사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처음으로 알리를 표지기사로 올려 이렇게 풍자했다. “그가 매섭게 노려보면 힘센 자는 전율하고 그가 미소 지으면 예쁜 여자는 기절한다. 그는 천둥을 일으키고 번개를 만든다….”
2장/ 챔피언의 꿈

1. 권투 소년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 속으로 내던져 버리다

영화 ‘알리’의 한 장면.

미국 켄터키 주는 아일랜드 출신인 백인 작곡가 스티븐 포스터가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하고 서정이 넘치게 노래한 고장이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켄터키는 본래 노예의 땅이다.

클레이의 집안은 그 고장에 끌려간 노예의 후손이다. 조상은 남북전쟁 이전에 아프리카에서 미국 남부 켄터키로 팔려가서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Cassius Marcellus Clay·1810~1903)라는 백인 농장주 밑에서 노예로 일했다. 그 후손은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6세대를 살았다.

백인 농장주 클레이는 신문편집인이자 군인이며 정치가였다. 남부 출신이면서 노예제 폐지운동에 참여해 지도자가 된 사람이다. 그는 대학생 시절에 노예제 폐지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835년 켄터키 주 의회에 처음으로 진출했으나 1840년에는 노예제 문제로 선거에서 패배하고 루이빌에서 노예제를 반대하는 잡지 ‘더 이그저미너(The Examiner)’를 발행한 경력도 있다. 클레이 집안은 이런 백인 기독교도 농장주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캐시어스 마커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썼다. 노예로서 체념과 순종의 삶을 산 것이다.

알리는 1942년 1월17일 아버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시니어와 어머니 오데사 클레이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이어서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라는 이름을 얻었다. 동생 루디는 2년 후에 태어났다.

어린 클레이는 붉은 벽돌집에서 살았는데 방 다섯 칸은 모두 바닥에 융단이 깔려 있었다. 거실 벽은 아버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시니어가 손수 그린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페인트 광고공으로 기독교 감리교 신자였다. 어머니 오데사 클레이는 알리 형제를 데리고 침례교회에 다녔다.

소년 클레이는 장난꾸러기였다. 부모를 놀라게 하려고 침대 시트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부모에게 와락 덤벼들거나 부모 침실 커튼에 끈을 매서 부모가 침실에 들 때 커튼을 움직여 놀라게 만들었다.

동생인 루디는 소년 시절에 형 알리가 대단히 민첩했다고 말한다.

“형은 걸핏하면 돌을 자기한테 던져보라고 했어요. 나는 형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돌을 던지면 언제나 날쌔게 피했지요. 내가 아무리 여러 번 돌을 던져도 맞힐 수 없었어요.”

/ 새 자전거 도둑맞고 /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가 권투에 입문한 동기는 이렇다. 1954년 10월 어느 날 12세의 클레이는 선물로 받은 새 자전거를 타고 루이빌 시내 서비스클럽으로 갔다. 어린이에게 아이스크림과 풍선을 무료로 주는 시설이었다.

알리가 회관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잠시 들어갔다가 나와 보니 그 사이에 도둑이 자전거를 훔쳐가버렸다. 클레이는 울면서 지하에 있는 컬럼비아 체육관으로 뛰어갔다. 백인인 루이빌 경찰관 조 마틴이 어린이들에게 권투를 가르치고 있었다. 클레이는 울면서 자전거를 훔쳐간 도둑을 찾아내서 혼내주겠다고 말했다. 조 마틴은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는 클레이 소년을 달래면서 “도둑을 혼내주려면 먼저 권투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일을 알리의 어머니 오데사 클레이는 이렇게 얘기했다. (미국 레온 개스트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가 왕이었을 때’ 중에서)

그 애가 자전거를 타고 컬럼비아 체육관에 갔어요. 볼일이 있어 밖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들어갔지요. 나와 보니 누가 자전거를 훔쳐간 거예요. 그 애는 울면서 안으로 들어가 조 마틴이라는 경찰관한테 자전거를 도난당했다고 말했어요. 마침 조 마틴은 소년들에게 복싱을 가르치고 있었지요. 알리에게 복싱을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어요. 그 애는 좋다고 했어요. 자전거 도둑을 찾게 되면 싸워서 이길 생각이었던 거지요.

알리의 친구인 시나리오 작가 그레고리 앨런 하워드(‘타이탄을 기억하라’의 필자)가 지적한 말이 있다.

“나이 어린 캐시어스 클레이가 자전거를 도둑맞은 일이 무하마드 알리 일대기의 시작을 알리는 열쇠가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렇다. 알리가 복싱을 하게 된 운명은 이 자전거 도난사건이 결정지었다.

조 마틴은 소년 클레이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클레이는 다른 권투선수들보다 훨씬 열정적이었다. 그는 오직 권투를 연마했다.

조 마틴의 평.

“첫째, 그 애는 건방지고 생기발랄했으며, 둘째, 그 애는 내가 가르친 어떤 애보다 열심히 훈련했다. 그 애는 다른 애들보다 더 큰 야망을 품었다. 운동하는 데 값어치가 있는 일이라면 뭐든 희생을 무릅쓰는 아이였다. 알리는 기를 꺾을 수 없는 소년이었다. 그것이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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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언론인권센터명예이사장 ann-b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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