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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5년 안에 비빔밥을 빅맥만큼 유명하게 만들겠다”

‘CJ푸드월드’ 만든 노희영 브랜드 전략 고문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5년 안에 비빔밥을 빅맥만큼 유명하게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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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안에 비빔밥을 빅맥만큼 유명하게 만들겠다”

CJ푸드월드 내 비비고 (왼쪽) 매장과 빕스 매장

노 고문은 CJ 외식업계 전체의 로고에서 제품 메뉴까지 전방위적으로 손을 댔다. CJ푸드빌 직원들은 “식재료부터 음식 담는 접시까지 노 고문님의 손길이 안 닿는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덕에 브랜드 전반에 활력이 생겼다. 노 고문이 제시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바로 ‘기본으로 돌아가기’다.

“내가 전세계 내로라하는 요리사들 만나보면, 전부 다 자신의 경쟁력은 신선한 재료에 있다고 말해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요리 테크닉이 좋아서라고 답하지 않아요. CJ는 밀가루, 설탕 시작한 회사예요. 2차 가공만 하는 회사랑은 달라요. 기본을 갖췄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기업보다 우월한데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SPC ‘파리바게뜨’의 무서운 성장세에 밀려 ‘만년 2위’로 처졌던 뚜레쥬르 재정비 역시 빵의 기본, 밀가루에서 시작했다.

“처음 여기 와서 백설 밀가루 공장장을 딱 불러놓고 지시했어요. 식빵, 소보루빵, 바게트빵 등 빵마다 특성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각 빵에 맞는 밀가루를 세분화해서 개발하라고요. 우리나라는 한 가지 밀가루로 여러 가지 빵을 다 만들지만, 일본은 많은 경우 빵마다 60가지 이상의 밀가루를 써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역시 ‘디테일’이죠.”

처음 노 고문의 지시를 받은 공장장은 “밀가루가 다 밀가루지, 어떻게 차별화하냐”며 곤란해했다. 결국 지금은 4가지 이상의 밀가루를 개발해냈다. 각기 다른 밀가루로 빵을 만드는 기술은 뚜레쥬르가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했다. 노 고문은 “뚜레쥬르가 2위 업체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파리바게뜨와 차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제가 CJ에 왔을 때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루 빵 포장지 벗겨놓고 비교해보면 각 빵이 어느 회사 제품인지 전혀 차이가 안 났어요. 서로 상품을 너무 베끼는 거예요. 그런데 2인자는 1인자를 따라가기만 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전략적으로 새로운 틈새를 노려야지. 요즘 파리바게뜨의 경우 점포가 많아지면서 빵집도, 카페도 넘어 편의점 같아졌어요. 그런 때일수록 뚜레쥬루는 촌스럽더라도 빵 자체로 승부를 겨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밀가루, 빵 제품 개발 등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어요.”

“우는 아이 지겨워 의대 포기”

톡톡 튀는 그의 성장 과정이 궁금하다. 16살에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난 그는 미국 남가주대 의대 소아과에 진학했지만 인턴을 하던 도중 그만뒀다. “왜 의대 공부를 그만뒀느냐”고 묻자 그는 “우는 아이한테 질려버렸다”고 ‘쿨’ 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1년 반 후, 그는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색에 예민했던 만큼 “패션디자인 하면 돈 벌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파슨스 디자인스쿨에는 제일모직 대표 디자인 브랜드 구호(KUHO)를 만든 정구호씨를 비롯해 디자이너 박윤정, 박지원씨 등이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노 고문은 “여기서 얘들이랑 똑같은 거 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의상이 아닌 액세서리 디자인으로 전향했다.

노 고문은 1988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고급 의상실용 단추 디자이너로 패션업계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했던 일을 반복하는 게 너무 재미없었던” 노 고문은 1990년대 말 차근차근 사업을 정리했다. 잡지에 여행기를 싣고 호텔 VIP 마케팅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 전화’가 걸려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왔는데 부재 중 전화가 잔뜩 찍혀 있는 거예요. 다시 걸어보니 당시 현대백화점 이병규 사장(현 문화일보 사장)이세요. 이 사장님이 ‘목동 현대백화점을 만들면서 식당가를 꾸미는데 목동점만의 특별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근데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노희영밖에 없다’고 생각하셨대요. 사실 이 사장님과는 몇 년 전에 뵙고 꾸벅 인사한 것밖에 없었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인데 나를 이렇게 필요로 해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프리미엄 누들바 ‘호면당(好面堂)’이다. 당시 외식업계에서는 아웃백, TGIF 등 서양식 패밀리 레스토랑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노 고문은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건강, 자연, 그리고 동양적 맛을 가진 웰빙 브랜드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호면당은 자연적인 재료를 이용해 얼큰하고 담백한 동양적 맛의 국수 요리를 선보였다. 2002년 호면당은 목동 현대백화점 6층과 청담동에 점포를 낸 후 ‘줄 안 서면 못 먹는’ 인기 브랜드로 성장했다. 노 고문은 “당시 호면당 들어선 청담동 뒷골목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호면당 입점 이후 청담동이 갑자기 성장했다”며 웃었다.

조직에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노 고문은 2007년 오리온 외식계열사 롸이온즈에 이사로 입사했고, 2008년 12월 천연과자 ‘마켓오’를 선보였다. ‘합성첨가물을 쓰지 않고 과자에 천연 재료의 참맛을 담는다’는 콘셉트로 승부를 건 마켓오는, 출시 1년 만에 매출 500억원을 달성했다. 마켓오가 선보인 ‘브라우니’는 ‘제2의 초코파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프리미엄 제과 시장을 열었다. 노 고문은 성과를 인정받아 그룹 부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성공이었지만 노 고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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