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호

“5년 안에 비빔밥을 빅맥만큼 유명하게 만들겠다”

‘CJ푸드월드’ 만든 노희영 브랜드 전략 고문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9-21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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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안에 비빔밥을 빅맥만큼 유명하게 만들겠다”

    CJ제일제당센터 전경

    7월문을 연 서울 중구 쌍림동 CJ제일제당 센터. 지하 5층, 지상 20층 규모로 CJ제일제당, 푸드빌, 프레시웨이 등 CJ 식품 관련 계열사가 모두 입주했다는 점만 보면 평범한 대기업 사옥이다. 이 건물이 등장과 동시에 ‘강북의 랜드마크’가 된 비결은 바로 CJ 외식브랜드 17개를 총망라한 ‘CJ푸드월드’에 있다.

    지상 1층 디저트 카페 ‘투썸 플레이스’와 베이커리 ‘뚜레쥬르’부터, 지하 1층에는 ‘빕스 스테이크 하우스’‘프레시안’‘제일제면소’‘로고커리’등 CJ 외식브랜드 점포가 빠짐없이 자리했다. 햇반, 백설밀가루 등 CJ 상품으로만 구성된 프리미엄 슈퍼마켓 ‘프레시마켓’과 헬스·뷰티 전문점인 ‘CJ올리브영’까지 있어 간단한 쇼핑도 할 수 있다. 1층에는 콩과 벼를 직접 재배하는 ‘실내 농장’과 아기자기한 요리기구들이 돋보이는 쿠킹스튜디오도 눈에 띈다.

    CJ푸드월드에는 1953년 백설 설탕, 밀가루로 시작해 이제는 대한민국 식품·외식 분야 대표 브랜드로 성장한 CJ의 꿈과 역사가 담겨 있다. CJ의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은 바로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 노희영 CJ그룹 브랜드 전략 고문이다.

    노 고문의 이력을 아는 사람들은 CJ푸드월드를 보며 “역시 노희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의 손을 거친 레스토랑치고 안된 경우가 없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늘 새로웠고, 언제나 성공했다.

    1989년에는 서울 청담동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스타 파스타’를 오픈하면서 처음으로 ‘파스타’란 용어를 국내에 소개했다. 1997년 국내 최초로 퓨전 레스토랑인 ‘궁’을, 2002년에는 청담동과 목동 현대백화점에 유기농 퓨전 누들바 ‘호면당’을 열었다. 이밖에 공원과 카페를 접목한 슬로푸드 카페 ‘느리게 걷기’, 티 테이크아웃 브랜드 ‘Tea talks’ 등 유행을 선도한 레스토랑은 모두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국내 최초로 ‘웰빙 과자’를 표방했던 ‘마켓오(Market O‘)’ 역시 그가 낳은 ‘자식’이다. 2003년 마켓오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브랜드를 키웠고 2007년 오리온 외식 계열사 롸이즈온에 개발담당이사(CCO)로 임명되면서 오리온에 마켓오를 팔았다. 노 고문은 2010년 오리온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여섯 달 만에 사직한 후 CJ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CJ그룹에 내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J는 식품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미디어, 홈쇼핑 등 유통, 제약·바이오 등 생명공학까지 아우르는 그룹입니다. 만약 지금 이 CJ제일제당센터에 M·net 펍(Pub)을 만들고 옥상에 CGV 극장을 넣고 1~3층에 CJ오쇼핑 패션매장을 넣으면 웬만한 쇼핑몰 하나를 만들 수 있어요. 세계에 이런 콘텐츠를 가진 기업이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구슬’을 가진 CJ는 각기 분야만 잘했지 ‘큰 그림’을 못 그리는 게 내 눈에는 보였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 굴러다니는 구슬들을 빨리 꿰어서 예쁜 목걸이를 만들고 싶었어요.”

    8월29일 오후 CJ푸드월드에서 만난 노 고문은 당당함 그 자체였다. 빨간 재킷과 특이한 프린트의 블라우스, 허리선이 높은 통바지 등 옷차림부터 남달랐다. 패션을 칭찬하자 그는 “원래 남들 입는 건 잘 안 입는다”며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CJ푸드월드를 만든 계기를 묻자 역시 시원하게 답했다.

    “사실 여기가 직원식당 자리인데, 나부터가 ‘짬밥’을 먹기 싫었어요. 나는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게, 즐겁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나랑 밥 먹는 걸 싫어해, 워낙 까다롭게 고르니까(웃음). 근데 내가 먹기 싫은 음식을 우리 직원들 먹일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이 건물 상주하는 4000명 직원 대부분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우리 직원들부터 맛있는 밥을 먹어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않겠어요?”

    “맛은 쌓인다”

    “5년 안에 비빔밥을 빅맥만큼 유명하게 만들겠다”
    여기에는 노 고문이 고민한 ‘리더의 태도’도 담겨 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하직원들을 잘 부려먹는 사람이다. 리더 1명이 일을 잘하면 딱 그만큼만 성장하지만, 리더 1명이 직원 100명을 조직적으로 이용하면 100명의 노력만큼 기업이 클 수 있다는 것. 노 고문은 “나는 매일 아침 눈 뜨면 ‘오늘은 누구를 혼낼까, 오늘은 누구한테 뭘 시킬까’부터 고민한다”며 “내가 가진 맛에 대한 감각을, 우리 직원들도 느끼고 성장하길 바라며 이 공간을 구상했다”고 덧붙였다.

    노 고문의 등장 이후 CJ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먼저 백설이 바뀌었다. 백설의 갈색 로고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새 단장했다. 제일제당 50여 년 역사를 담은 광고는 “그때, 그곳, 그맛”, “맛은 쌓인다”는 카피로 향수를 자극한다.

    “제조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는 홍보를 할 때 기술을 드러내지 않으면 불안해해요. 햇반의 경우 이전에는 ‘당일 도정을 해서 신선합니다’ 이런 광고를 했어요. 그런데 소비자는 햇반의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다만, 맛이 있느냐 없느냐. 내가 이 제품을 사고 싶으냐, 아니냐 이것만 고민한단 말이에요. 백설 광고, 리뉴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CJ가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은 내용이 아니라 소비자가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걸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5년 안에 비빔밥을 빅맥만큼 유명하게 만들겠다”

    CJ푸드월드 내 비비고 (왼쪽) 매장과 빕스 매장

    노 고문은 CJ 외식업계 전체의 로고에서 제품 메뉴까지 전방위적으로 손을 댔다. CJ푸드빌 직원들은 “식재료부터 음식 담는 접시까지 노 고문님의 손길이 안 닿는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덕에 브랜드 전반에 활력이 생겼다. 노 고문이 제시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바로 ‘기본으로 돌아가기’다.

    “내가 전세계 내로라하는 요리사들 만나보면, 전부 다 자신의 경쟁력은 신선한 재료에 있다고 말해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요리 테크닉이 좋아서라고 답하지 않아요. CJ는 밀가루, 설탕 시작한 회사예요. 2차 가공만 하는 회사랑은 달라요. 기본을 갖췄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기업보다 우월한데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SPC ‘파리바게뜨’의 무서운 성장세에 밀려 ‘만년 2위’로 처졌던 뚜레쥬르 재정비 역시 빵의 기본, 밀가루에서 시작했다.

    “처음 여기 와서 백설 밀가루 공장장을 딱 불러놓고 지시했어요. 식빵, 소보루빵, 바게트빵 등 빵마다 특성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각 빵에 맞는 밀가루를 세분화해서 개발하라고요. 우리나라는 한 가지 밀가루로 여러 가지 빵을 다 만들지만, 일본은 많은 경우 빵마다 60가지 이상의 밀가루를 써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역시 ‘디테일’이죠.”

    처음 노 고문의 지시를 받은 공장장은 “밀가루가 다 밀가루지, 어떻게 차별화하냐”며 곤란해했다. 결국 지금은 4가지 이상의 밀가루를 개발해냈다. 각기 다른 밀가루로 빵을 만드는 기술은 뚜레쥬르가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했다. 노 고문은 “뚜레쥬르가 2위 업체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파리바게뜨와 차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제가 CJ에 왔을 때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루 빵 포장지 벗겨놓고 비교해보면 각 빵이 어느 회사 제품인지 전혀 차이가 안 났어요. 서로 상품을 너무 베끼는 거예요. 그런데 2인자는 1인자를 따라가기만 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전략적으로 새로운 틈새를 노려야지. 요즘 파리바게뜨의 경우 점포가 많아지면서 빵집도, 카페도 넘어 편의점 같아졌어요. 그런 때일수록 뚜레쥬루는 촌스럽더라도 빵 자체로 승부를 겨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밀가루, 빵 제품 개발 등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어요.”

    “우는 아이 지겨워 의대 포기”

    톡톡 튀는 그의 성장 과정이 궁금하다. 16살에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난 그는 미국 남가주대 의대 소아과에 진학했지만 인턴을 하던 도중 그만뒀다. “왜 의대 공부를 그만뒀느냐”고 묻자 그는 “우는 아이한테 질려버렸다”고 ‘쿨’ 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1년 반 후, 그는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색에 예민했던 만큼 “패션디자인 하면 돈 벌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파슨스 디자인스쿨에는 제일모직 대표 디자인 브랜드 구호(KUHO)를 만든 정구호씨를 비롯해 디자이너 박윤정, 박지원씨 등이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노 고문은 “여기서 얘들이랑 똑같은 거 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의상이 아닌 액세서리 디자인으로 전향했다.

    노 고문은 1988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고급 의상실용 단추 디자이너로 패션업계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했던 일을 반복하는 게 너무 재미없었던” 노 고문은 1990년대 말 차근차근 사업을 정리했다. 잡지에 여행기를 싣고 호텔 VIP 마케팅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 전화’가 걸려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왔는데 부재 중 전화가 잔뜩 찍혀 있는 거예요. 다시 걸어보니 당시 현대백화점 이병규 사장(현 문화일보 사장)이세요. 이 사장님이 ‘목동 현대백화점을 만들면서 식당가를 꾸미는데 목동점만의 특별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근데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노희영밖에 없다’고 생각하셨대요. 사실 이 사장님과는 몇 년 전에 뵙고 꾸벅 인사한 것밖에 없었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인데 나를 이렇게 필요로 해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프리미엄 누들바 ‘호면당(好面堂)’이다. 당시 외식업계에서는 아웃백, TGIF 등 서양식 패밀리 레스토랑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노 고문은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건강, 자연, 그리고 동양적 맛을 가진 웰빙 브랜드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호면당은 자연적인 재료를 이용해 얼큰하고 담백한 동양적 맛의 국수 요리를 선보였다. 2002년 호면당은 목동 현대백화점 6층과 청담동에 점포를 낸 후 ‘줄 안 서면 못 먹는’ 인기 브랜드로 성장했다. 노 고문은 “당시 호면당 들어선 청담동 뒷골목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호면당 입점 이후 청담동이 갑자기 성장했다”며 웃었다.

    조직에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노 고문은 2007년 오리온 외식계열사 롸이온즈에 이사로 입사했고, 2008년 12월 천연과자 ‘마켓오’를 선보였다. ‘합성첨가물을 쓰지 않고 과자에 천연 재료의 참맛을 담는다’는 콘셉트로 승부를 건 마켓오는, 출시 1년 만에 매출 500억원을 달성했다. 마켓오가 선보인 ‘브라우니’는 ‘제2의 초코파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프리미엄 제과 시장을 열었다. 노 고문은 성과를 인정받아 그룹 부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성공이었지만 노 고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암행어사가 체질

    “나는 제과업체 부사장이 너무 재미없었어요. 임원회의 할 때는 정말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난 원래 조직이랑은 안 어울리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면서 다른 팀이 하는 사업에는 ‘지적질’을 하지 못하니까 답답한 거지. 내가 마켓오만 맡으니까 닥터유 같은 다른 제품에는 뭐라고 말을 못하잖아. 게다가 오리온이 온미디어, 메가박스 등 비식품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 ‘식품’으로 한정돼버리니까 너무 답답했어요.”

    노 고문이 CJ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문이 퍼지자 대부분 “경쟁사 부사장이 자리를 옮기니 계열사 사장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런데 노 고문이 선택한 자리는 사장이 아닌 ‘그룹 브랜드 고문’이었다.

    “나는 고문이 너무 좋아요. 요즘은 직원들에게 그냥 ‘아줌마’라고 부르라고 해요(웃음). 나는 암행어사 체질이에요. CGV부터 오쇼핑까지, CJ 어떤 계열사에도 맘껏 삿대질할 수 있고 다양한 계열사로 다양한 사업을 구상할 수 있잖아요. 대기업을 보면 다른 계열사에서는 지적을 안 하는 게 마치 각자의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래서는 서로 발전할 수 없어요. 개발, 마케팅 모든 파트가 섞여서 아이디어를 공유해야 뛰는 심장을 가진 제품을 개발할 수 있어요.”

    ‘암행어사’답게 그는 모든 제품에 대해서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특히 최근 ‘신라면 블랙’을 둘러싼 ‘해프닝’에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농심이 올 4월 ‘신라면 출시 25주년 기념’으로 당당하게 내놓은 프리미엄 라면 ‘신라면 블랙’은, 빛을 본 지 4개월 만에 판매가 중단됐다. 농심이 3년간 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온 제품이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허위·과장광고 시정명령’을 내리며 과징금 1억5500만원을 부과하는 등 가격 논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 고문은 “‘신라면 블랙’을 둘러싼 블랙코미디”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먼저 농심이 잘못했어요. 브라우니가 초코파이보다 10배는 비싸요. 근데 만약 마켓오 출시하면서 브라우니를 ‘뉴 초코파이’라고 했으면, 사람들이 그 돈을 주고 사 먹었을까요? 두렵더라도 신제품은 기존 제품과의 고리를 끊어야 해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아예 다른 상품군(群)을 만들었으면 되는데 괜히 신라면의 영광을 잃기 싫어서 신라면으로 이름 지었다가 뭇매만 맞았잖아요. 정부, 언론도 문제예요. 좋은 재료를 가지고 개발해서 만든 거라면 인정을 하고 시장에 맡겨야지 왜 나서서 시장을 정리하나요? 이래서 식품업자들이 좋은 제품을 개발하겠어요?”

    “5년 안에 비빔밥을 빅맥만큼 유명하게 만들겠다”

    CJ푸드월드 내 제일제면소 (왼쪽)와 프레시마켓.

    고객 라이프스타일 반영해야

    CJ푸드월드가 CJ 음식계열사 간의 통합이었다면, 노 고문은 이제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 그가 꿈꾸는 ‘CJ 문화왕국’은 어떤 모습일까? 7월 새 단장하고 오픈한 CGV압구정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극장 1층은 늘 영화표를 사려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하지만 압구정 CGV 1층은 시장통 같은 발권카운터 대신 넓은 커피숍이 있다. 1층에 통째로 디저트카페 투썸플레이스가 자리한 것. 차 한 잔 마시다가 가볍게 영화를 보러 가는 듯한 새로운 분위기다. 노 고문은 올 3월 영업을 종료한 신사동 씨네시티도 한창 리뉴얼 중이다.

    “예전에는 ‘영화’하면 코엑스 메가박스에 쭉 늘어선 발권카운터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다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예매를 하잖아요. 바뀐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극장이 살아남는다는 거예요. 압구정 CGV를 리뉴얼하면서 처음에는 다들 ‘커피숍 매출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 ‘사람들이 예매데스크 못 찾고 우왕좌왕할 거다’라고 불평했는데, 리뉴얼 이후 CGV 매출도 상당히 좋아졌어요. 소비자 만족도도 꽤 높아졌고요. 무엇보다 ‘물’이 좋아졌어요. 그만큼 ‘좋은 공간’에 대한 소비자의 열망이 큰 겁니다.”

    노고문의 또 다른 계획은 멋진 부티크 호텔을 만드는 것이다. 주요 콘셉트는 ‘아침에 먹는 빵이 너무 맛있는 호텔’이다. 뚜레쥬르 등 CJ 브랜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틈새시장을 장악하겠다는 목표다.

    노 고문이 CJ에 온 순간부터 이루고 싶었던 최종 목표는 ‘CJ 브랜드를 전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첫걸음은 벌써 뗐다. 지난해 노 고문이 개발에 참여한 비빔밥브랜드 비비고(Bibi-go)는 현재 중국, 미국 뉴욕 등에 점포를 열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비비고 1호 매장 오픈 당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015년까지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 글로벌 매장 1000개 점포를 오픈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비고는 여러 가지 채소와 나물, 밥 등을 섞어 먹는 비빔밥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레몬간장, 닭가슴살 등 외국인 입맛에 맞는 재료를 개발했다. 그는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비비고’는 언젠가 맥도날드 ‘빅맥’만큼 유명해질 것”이라고 거침없는 포부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5년 안에 CJ의 외식브랜드, 문화 콘텐츠, 쇼핑몰 등이 세계인과 맛 좋게 ‘비벼지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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