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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 | 선각자 인촌을 말한다

건국의 ‘최대 주주’ 내려놓은 민족적 통합주의자

주제발표 ① 인촌과 대한민국 건국

  • 진덕규|이화여대 석좌교수·이화학술원장·정치학

건국의 ‘최대 주주’ 내려놓은 민족적 통합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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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15일의 해방은 한국 민족에게 새로운 정치 과제를 안겨주었다. 해방을 독립국가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민족적 당위의 실현이 그것이었다. 비록 ‘강대국에 의해 주어진 해방’이지만 독립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 민족적 협력도 절실했다. 그런데도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만의 집권을 위해 상대방을 배격하는 극심한 파쟁으로 치달았다.

이 시기 정치투쟁의 선두에는 여운형, 박헌영의 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조선공산당이 자리 잡고 있었고, 여기에 맞서서 김성수, 송진우 등의 한국민주당(한민당)이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귀국한 김구의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도 그 나름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노동자 농민의 공산주의 계급투쟁에 의한 좌파 정권의 수립이 획책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우파 민족주의의 정치가 추구되었다.

해방 정국에서 정치적으로 주도적인 위치에 서게 된 김성수에게 현실 정치는 그의 정치이념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밀어닥친 정치 혼돈에 대해서 어떤 편의적인 대응이 아닌, 확고한 정치적 원칙과 이념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이 시기 그에게 맡겨진 정치적 과제는 독립국가 수립이며, 이는 구체적으로는 38도선의 철폐에 따른 통일된 자립자강의 민족국가 확립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좌파의 이념 공세를 차단해야 했다. 그는 좌파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는 민족 분열을 가져올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특정 계급 독재를 추구하는 소련권으로 전락하고 말 것임을 확신했다.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집착은 일본 유학 때부터 잉태되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그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조선총독부의 억압적인 약탈과 강제의 제거였으며, 이를 위해서는 깨어난 민족, 즉 민족 구성원의 일대 각성이었다. 이 점에서 민족주의는 그의 일관된 사상체계였으며 정치적인 행위 원칙이었다.

김성수의 정치활동의 행동원칙은 타협적 통합주의였다. 타협적 통합주의는 자신의 주관이나 일방적인 의지의 관철이 아닌 모두에 의한 최선의 모색을 추구하는 행위원칙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특정 사항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 모두에 의한 협의 과정을 중시했으며, 함께 토의하고 공박함으로써 더 좋은 해결책을 얻는 것이야말로 그의 실천적 지향이자 삶의 철학이었다.

순고 원만한 국가의 조성

그의 이러한 성격은 민주주의적 일상성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타협만을 중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자신의 주관이나 신념의 약함이나 상대방의 주장에 맹목적인 추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었다.

이 점에서 김성수가 추구했던 타협적 통합주의는 모두 참여자가 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적인 일상성의 전개를 의미했다. 김성수 자신의 생활신조로 평생 추구했던 공선사후(公先私後), 신의일관(信義一貫), 담박명지(淡泊明志)도 더 좋은 것을 함께 추구하려는 그의 의지의 표현이자 생활철학이었다.

해방 정국에서 인촌 김성수 자신의 정치적 견해로는 동아일보 1946년 8월15일, 17일, 18일 3회에 걸쳐 연재된 ‘朝鮮의 將來: 純固 圓滿한 國家를 造成하자’에서 읽을 수 있다. 이 글의 모두에서 그는 해방 1년을 보내면서 그 자신의 회한으로 지나치게 흥분했기 때문에 환멸만을 안게 되었음을 밝혀놓았다. 해방이 “또 다른 무거운 종적(從的) 경애(境涯)의 침륜(沈淪)이 부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참하게도 38도 단절”의 비극을 가져왔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각자는 자신의 이해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통합이 아니오 분산, 협조가 아니오 대립, 건설이 아니오 파괴”로만 치달았음을 통탄했다.

여기에서 그가 말한 ‘순고(純固) 원만(圓滿)한 국가’는 자립자강의 민족국가로, 그것에 의해 이 땅의 민족 구성원 전체가 자유를 누리고 개개인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확보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적인 명제이기 때문에 이는 먼저 외세를 추종하는 행동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민족적 관점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정객이 조선 독립과 경쟁력이 순전히 국제정세의 여하에 매여 있는 듯이 선동하며 신탁의 감수를 곡설하는 것”은 그 목적이 여하하든 결과적으로 민족 분열로 귀결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반민족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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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규|이화여대 석좌교수·이화학술원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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