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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신드롬의 허상

정치적 메시아가 아닌 ‘정치 로또’에 열광

  • 정해윤|미디어워치 객원논설위원 kinstinct1@naver.com

안철수 신드롬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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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신드롬의 허상
안철수 바람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는 잠시 정치무대에 섰다 물러났을 뿐이지만 세상의 관심은 여전하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권에 보내는 경고이자 새 시대에 대한 요구로 해석된다.

그러나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것 자체는 결코 새롭지 않은 현상이다. 한국인이 정치를 혐오하지 않은 때,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은 때는 한순간도 없었다. 실제로 많은 이는 안철수 현상에 기시감(旣視感·처음 경험한 대상을 이미 과거에 본 대상으로 느끼는 것)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안철수를 보면서 박찬종이나 노무현을 떠올린다.

분명 안철수 현상에는 이전에 없던 새로움과 반복되는 익숙함이 뒤섞여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필자는 안철수 현상이 한국인의 전통적 인물관이 재연된 현상일 뿐이라고 본다. 안철수는 복고적 인간형에 가깝다는 것이다.

안철수 신드롬의 바탕에는 신화화된 스토리가 있다. 그것은 한류드라마의 서사구조처럼 한국적 특성을 띤다. 학창시절 모범생이 성인이 돼서 사회에 공헌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신화는 엘리트들의 부패에 신물이 난 대중에게 신선한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장기에 아무런 일탈도 하지 않았던 그가 진보적이거나 변혁적 세계관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한국 문화에 깊이 내재된 보수성을 체득했다고 판단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필자는 그가 기업가로서 한계를 가졌다고 본다. 올해 초 여러 여론조사는 그를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멘토이자 모시고 싶은 상사로 꼽았다. 우리 주변에는 리더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안철수연구소㈜의 직원들이다. 현재의 사회 분위기대로라면 안철수를 상사로 모셨던 그들이야말로 더없이 행복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연애만 하고 싶은 남자

그러나 정말로 그랬을까? 흥미로운 점은 입사하고 싶은 회사를 조사하면 안철수연구소는 결코 인기 있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안철수연구소는 기업가로서 안철수의 실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가 만든 기업문화, 보상체계 등이 직원들에게는 삶의 현실이다. 한국에는 ‘외부적으로 덕망 있는 인물과 함께 사는 이의 고충’을 표현하는 말이 있다. ‘효자 남편을 둔 며느리’가 그것이다.

지금 대중은 두 가지 상이한 잣대로 안철수 리더십을 평가하고 있다. 한국 여성은 연애할 남자와 결혼할 남자를 뚜렷이 구분하는데, 지금 대중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안철수와 결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연애하고 싶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와 반대다. 창업자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만 얻어먹었다. 그런데 ‘입사하고 싶은 회사’ 조사에선 만년 1위에 오른다. 대한민국 진보 인사가 미국 욕을 하면서도 미국으로 자식 유학을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여론조사대로라면 삼성전자에서 봉급을 받으면서, 안철수 같은 상사를 모시는 것이 대중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안철수연구소가 애플 같은 회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안철수 캐릭터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에 있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냉철한 현실감각을 회복하듯이 이제 우리는 그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인 평가를 내려야 할 때다. 어느덧 안철수가 한국인에게 결혼의 대상으로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치인 안철수가 어떤 한계를 가질지는 이미 다른 이가 지적한 바 있다. 박경철은 “안 교수의 최대 단점이 권력의지가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유시민은 “정치는 단순히 어떤 사상과 아이디어 정책의 경쟁일 뿐만 아니라 그 속에는 때로는 비인간적일 수 있는 권력투쟁이 포함돼 있다. 이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다는 내면적 확신이 있어야 대통령선거에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평가는 필자가 기업가 안철수에 대해 내리는 평가와 결코 다르지 않다. 정치건 사업이건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져야 하는 성향이 있다. 그것은 비인간적인 면이다. 서구에서는 일찍이 군주에게 그런 예외를 용인했다. 그러나 유교문명의 군주론은 이런 정상참작이 없다. 선량한 인물이 덕을 베풀기만 하면 세상이 저절로 평온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 지난 세기 동양이 서양에 뒤떨어진 것은 도덕과 현실의 간극을 이렇게 혼동한 데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리더에게 비인간적인 면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안과 밖에서 다른 현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호전적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나라다. 이들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지도자는 때로는 전쟁을 결심할 만큼 대담하고, 때로는 아침에 한 말도 저녁에 뒤집을 만큼 표리부동해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처럼 선량한 얼굴을 한 인물이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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