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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 한호 수교 50주년 - 호주의 재발견

호주 친한파 상징 존 브라운(변조은) 목사

한국 선교사에서 호주 한인교회 대부로

  • 시드니 = 윤필립 시인, 호주전문 저널리스트

호주 친한파 상징 존 브라운(변조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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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북한이 남침하자 호주는 불과 나흘 뒤인 6월29일 파병을 결정했다. 6월30일엔 공군 77비행중대 소속 무스탕 전투기를 6·25전쟁에 투입했다. 이어 9월28일에는 호주 육군 제3대대가 부산항에 당도했다. 호주 육해공군이 모두 6·25전쟁에 투입되는 순간이었다.

호주는 6·25전쟁 상황을 주요 뉴스로 자세하게 보도했다. 전쟁 뉴스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된 호주 사람들은 그 장면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밖에 없다. 호주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멜버른에서 대학에 다니던 한 호주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스코틀랜드 출신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목회자를 꿈꾸던 그는 연일 보도되는 6·25전쟁의 참상을 보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처참하게 파괴된 도시와 기나긴 피난민 행렬 때문이었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밥 먹고 잠잘 곳은 있을까? 온몸을 붕대로 친친 감은 그 아이는 아직도 살아 있을까? 혹 고아가 되지는 않았을까?’

6·25전쟁이 만든 인연

호주 친한파 상징 존 브라운(변조은) 목사

변조은 목사는 1974년 호주 최초의 한인교회인 시드니 연합교회를 설립했다.

불길한 상념은 또 다른 상념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나라의 전쟁에 왜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됐는지, 처음엔 자신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심했다. 저 나라에 가서 저들을 도와주리라고. 그는 곧바로 장로교단을 찾아가 한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겠다고 신청했다.

그가 바로 존 브라운(75·한국 이름 변조은) 목사다. 그는 20대 초반에 한 결심을 평생 실천하며 살았다. 한국에서 12년간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호주 장로교신학대 교수를 역임하고, 호주 최초의 한국인 교회인 시드니연합교회를 설립했다.

변 목사는 멜버른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호주 장로교신학대에 입학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3년 동안 목회활동을 했다. 그 사이 노마 브라운과 결혼하고, 아들 마이클 브라운(한국 이름 변선태·목사)을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로교단으로부터 대학시절에 접수한 한국 선교사 파송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연락이 왔다.

1960년 초, 변조은 선교사 부부와 두 살배기 아들은 마침내 한국으로 먼 길을 떠났다. 보도를 통해 6·25전쟁의 참상을 접하고, 난민과 전쟁고아를 돕기로 결심한 지 10년 만이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피난민이 많이 모여 살던 부산. 휴전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부산 피난민촌의 환경은 열악하기만 했다. ‘하코방’이라고 부르는 판잣집이 즐비했다.

피난민촌에 잠시 머물던 변조은 선교사는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마산에 정착했다. 마산을 중심으로 거제도까지 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봉사활동을 벌였다. 교인이 10∼20명밖에 안 되는 작은 교회를 순회하면서 선교활동을 했다. 교회도 피난민들이 거주하는 집과 마찬가지로 판잣집이었다.

농촌교회를 순회하던 변 선교사는 충북 음성의 한센병 환자들이 개간지에 세운 교회에 몸담기도 했다. 그 후 마산과 거제 지역 48개 농촌교회 담임목사와 당회장을 맡았다. 그는 처음으로 한국어 설교를 준비해 48번이나 반복했던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호주 양 50마리 싣고 태평양 건너

변조은 선교사 가족이 한국에 도착한 지 8개월 만에 둘째딸 선혜가 태어났다. 그 후 고아인 순자를 입양해 자녀가 셋으로 늘어났다. 입양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선 그는 굳이 아이를 낳지 않고도 귀한 가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입양을 제안했고, 브라운 여사도 그 뜻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가난한 교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변조은 선교사는 호주에 흔해빠진 양을 떠올렸다. 양을 키워본 적이 있던 그는 호주로 건너가 양 50마리를 배에 실었다. 다시 부산을 향해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배에서 손수 양에게 꼴을 먹이고, 배설물을 치웠다. 그 양들은 거제 지역의 가난한 농가에 무상으로 대주는 우유 공급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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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 윤필립 시인, 호주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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