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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⑧

토니 라루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정점에서 퇴장 선언한 ‘라루사이즘’ 창시자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토니 라루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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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의 우승팀은 통산 11번째 우승을 달성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였다. 카디널스는 패색이 짙었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9회말 2아웃까지 상대팀 텍사스 레인저스에 뒤졌지만 극적인 동점타와 연장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이 여세를 몰아 마지막 7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이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쓴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는 토니 라루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이다. 라루사 감독은 현대 야구에서 보편화한 ‘선발-중간계투-마무리’라는 투수 운영방식을 정립해 ‘라루사이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1이닝 마무리를 필두로 한 불펜투수 분업화는 1920년 ‘몸에 맞는 볼’ 도입과 1960년대 마운드 높이 조정 이후 메이저리그의 혁신을 단행한 일대 사건으로 불린다. 그는 우승 직후 은퇴를 선언해 세계 야구계를 또 한 번 깜짝 놀라게 했다.
“법조인이 되는 것보다 버스를 타고 마이너리그를 돌아다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야구 감독이 된 이유입니다.”

이 말과 함께 재판정 대신 더그아웃을 택한 한 청년은 40년 후 메이저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변신한다. 바로 토니 라루사(67)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이다. 라루사 감독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엄청나다. 그는 197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1979~1986) 감독을 시작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1986~1995)를 거쳐 1996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을 맡아왔다. 그의 통산 승수는 무려 2728승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그보다 더 많은 승수를 거둔 감독은 코니 맥(3731승)과 존 맥그로(2763승)에 불과하며 현역 감독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1위다.

라루사는 1989년 아메리칸 리그에 속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맛본 후 내셔널 리그에 속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도 2006년과 올해 월드시리즈 정상을 밟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양대 리그에서 모두 월드시리즈 우승을 맛본 감독은 스파키 앤더슨(신시내티, 디트로이트)과 라루사 단 2명뿐이다. 그는 네 차례나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라 루사 감독의 전략적인 팀 운영은 1990년대 초반 그의 이름을 딴 야구 컴퓨터 게임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라루사이즘으로 대표되는 그의 전술이 ‘8월의 사흘 밤’이라는 책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은 그 이듬해 영화로도 제작됐다.

특히 올해 라루사가 발휘한 지도력은 그가 왜 메이저리그 최고 명장인지를 잘 보여준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8월 말까지만 해도 월드시리즈 진출이 불가능해 보였다. 내셔널리그 1위는커녕 디비전 결승에 진출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 1위 팀에도 무려 10.5경기로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31경기에서 23승8패라는 엄청난 승률을 올려 정규시즌 마지막 날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내셔널리그 디비전 결승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꺾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2승 3패로 몰린 상황에서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벼랑 끝에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쓰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라루사 감독은 2011년 11월1일 33년간의 메이저리그 감독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카디널스의 변화를 위해 내가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감독 은퇴를 선언했다. 라루사 감독은 메이저리그 역대 감독 중에서 감독 승수 3위 외에도 포스트시즌 70승(역대 2위), 통산 5097경기(역대 2위), 통산 최다패(역대 2위), 감독 33년(역대 동률 2위), 2728승(역대 3위), 14번째 플레이오프 진출(역대 3위), 3번째 월드시리즈 타이틀(역대 동률 6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라루사 감독이 명장인 이유는 단지 성적만이 아니다. 라루사는 현대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개척자이자 혁명가였다. ‘라루사이즘’으로 불린 그의 불펜 운용은 이후 다른 구단들이 뒤를 따르면서, 현대 야구의 표준으로 굳어졌다. 라루사로부터 시작된 1이닝 마무리와 좌타자 전용 투수, 즉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는 ‘쓸모없는 투수’들의 생명을 연장시켰고, 불펜 투수들의 처우를 개선했다. 또한 야구를 더욱 복잡하고 치열한 두뇌싸움으로 만들어놓았다. 이 때문에 야구계 인사들은 라루사의 퇴장을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며 칭송하고 있다.

토니 라루사는 누구인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혈통을 지닌 라루사 감독은 1944년 미국 플로리다 주 탬파에서 태어났다. ‘La Russa’라는 그의 성은 이탈리아어로 ‘러시아 사람(The Russian)’을 뜻한다. 라루사는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스페인어에 대한 재능은 메이저리그 야구 감독이라는 그의 커리어에 크게 공헌했다. 메이저리그의 많은 선수가 중남미 출신이기 때문이다. 중남미 선수들과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할수록 감독이 펼칠 수 있는 작전과 운용 방안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야구에 두각을 나타낸 라루사는 1963년 5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전신인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의 유격수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선수 라루사의 인생은 초라했다. 지독하게 따라다녔던 각종 부상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서른이 되기도 전에 메이저리거의 삶을 접는다. 선수로서 통산 132경기에 출장한 그는 1할9푼9리의 타율에 15안타 2루타 5개, 3루타 2개가 전부인 성적을 기록했다. 홈런은 단 하나도 없었고, 타점도 7개에 불과했다. 초라하다는 말을 하기도 민망한 성적이었다.

실망에 빠진 그는 은퇴 후 야구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갔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법학 대학원을 졸업한 라루사는 1980년 7월 플로리다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딱딱한 법정보다는 야구를 더 사랑했다. 법대 교수는 그의 결정을 간곡하게 말렸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라루사는 다시 야구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라루사는 197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더블A 감독을 맡아 야구계에 복귀했다. 1979년 시즌 중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감독을 맡으며 메이저리그 감독이 됐다. 라루사는 1983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지구 우승으로 이끌며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였다. 1984년과 1985년 연이어 부진한 성적을 올린 그는 1986년 시즌 도중 26승 38패를 끝으로 화이트삭스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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