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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울면서 시를 써야 남도 울면서 시를 읽는다”

도종환

  • 이소리│시인, 문학in 대표 lsr21@naver.com

“울면서 시를 써야 남도 울면서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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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를 키운 건 8할이 가난과 외로움
  • ● 수제비만 먹던 시절…친구들이 문제집 풀 때는 책만 읽어
  • ● “세상의 벽을 만날 때마다 담쟁이 떠올리자”
  • ● ‘접시꽃 당신’은 죽어가는 아내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
  • ● “독약이 독이듯, 악법은 악”…교육운동 투신
  • ● “백석처럼 정신 못 차리고 헤매는 그런 사랑 해봤으면”
“울면서 시를 써야 남도 울면서 시를 읽는다”
사람들은 유명인이라고 하면 겉만 본다. 그가 그 위치에 오를 때까지의 과정과 속내는 간과할 때가 많다. ‘접시꽃 당신’으로 대중적인 시인이 된 도종환(57)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도 시인이 오늘날 ‘빛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그가 살아온 삶에는 수많은 얼룩무늬가 자잘하게 새겨져 있다.

그의 어머니는 멸치장사를 했지만, 벌이가 시원찮아 그의 가족은 수제비만 끓여 먹어야 했다. 학생 때는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살 돈이 없어 도서관에 혼자 앉아 책만 읽어야 했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외로워했다. 지금에는 ‘나를 키운 건 8할(割)이 가난과 외로움’이라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100만 부가 넘게 팔린 그의 히트 시집 ‘접시꽃 당신’은 시골집 담벼락에 줄지어 핀 하얀 접시꽃을 보고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를 떠올리며 울면서 쓴 시다. ‘대중성에 영합한 저급한 문학’ ‘슬픔을 팔아서 장사를 하는 시인’이라는 크고 작은 비난에 시달렸지만 그는 “시는 스스로에게 다가온 슬픔을 내다파는 일이 아니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에세이집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를 펴낸 도 시인을 12월2일 서울 혜화동에서 만났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를 펼치면 자서전을 읽는 것 같아요.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요?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어요. 저를 키운 건 ‘8할이 가난과 외로움’이었습니다. 책에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삶,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그 삶에 따른 시가 담겨 있어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돈이 많이 드는 미술대학에 갈 수 없어 국가에서 등록금 전액을 대주는 국립사범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갔고, 1980년 광주에서는 군인으로서 시민군과 대치했고,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울면서 시를 썼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을 하다 감옥에 갔고, 대학 겸임교수직을 버리고 시골 중학교 교사로 갔고, 병든 몸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산에 들어갔고….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만났지만 그때마다 벽에 붙어사는 담쟁이를 떠올리며 ‘담쟁이처럼 그 벽을 오르자’고 마음먹었죠. 내 문학도 가난과 외로움, 좌절과 방황, 소외와 고난, 눈물과 고통, 두려움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거예요. 비가 오면 꽃은 젖겠지만 그 향기까지 적시지는 못하잖아요? 아픔이 없다면 문학이 우러나지 않아요.”

▼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 시인이 되었는데요. 아내를 비유한 ‘접시꽃 당신’이란 시를 쓸 때는 어떤 심정이었나요?

“아내가 토혈(吐血)을 하기 시작한 건 첫아이를 낳은 이듬해 봄이었어요. 그때 병원에서는 처음 십이지장궤양이라고 했어요. 의사도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해서 ‘별 탈 없겠지’ 생각했죠. 그해 가을걷이를 할 때 아내가 또 토사(吐瀉)를 했어요. 의사는 ‘천공에 피가 맺혀 피가 고였다 넘어오는 것 같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 아내 배 속에는 아이가 있었어요. 의사는 수술을 하려면 아이를 지워야 한다고 했죠. 나는 그때 아내도 살리고 아이도 살리고 싶어 의사와 상의한 뒤 아내에게 약물치료를 받게 했어요. 그해 겨울이 지나고 아내는 딸아이를 무사히 낳았죠. 그런데 의사가 ‘이상하다’며 소견서를 써줄 테니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 그렇군요.

“부랴부랴 암 전문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암이라 했어요. 의사는 길어야 6개월, 짧으면 두 달이라고 하더군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죠.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어요. 아내는 그때부터 항암치료를 받으며 모진 고통을 감수해야 했죠. 어떻게든 아내를 살려보려고 암을 이긴 사람들이 썼다는 약 이야기를 들으면 전국 어디든 쫓아다녔어요. 의사는 그때 아내에게 병명을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고민하던 중 우연찮게 시골집 담벼락에 줄지어 핀 하얀 접시꽃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하얀 접시꽃이 계속 피가 빠져나가 창백한 아내 얼굴처럼 보였어요. 그렇게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말을 쓴 게 ‘접시꽃 당신’이었죠. 나는 이 시를 울면서 썼습니다.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시는 남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시꽃 당신’을 내고 난 뒤에서야 알았어요.”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접시꽃 당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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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시인, 문학in 대표 ls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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