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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민심은 용수철 같은 것 누를수록 반작용이 커진다”

2011년을 달군 ‘나는 꼼수다’ 김용민 PD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민심은 용수철 같은 것 누를수록 반작용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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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는 한 맥락이다”
  • 김어준은 감성과 직관, 진중권은 논리 신봉자
  • “‘나꼼수’ 죽이고 싶으면 가만 놔둬라”
  • “재미있는 정치담론이 목적, 성역은 없다”
“민심은 용수철 같은 것 누를수록 반작용이 커진다”

김용민 PD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극동방송과 기독교TV에서 PD로 활동하다 시사평론가로 전업했다.

큼지막한 체구에 네모난 안경을 쓴 시사평론가 김용민(37)씨가 약속장소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그를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20대로 보이는 한 청년은 그에게 다가가 사인을 청했다. 왜냐고? 그는 2011년을 후끈 달군 인터넷 라디오방송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핵심멤버가 아닌가.

그의 포지션은 공동 진행자 겸 후반작업을 담당하는 PD다. “녹음한 오디오파일을 가져다가 음악을 입히고 재미없거나 아슬아슬한 내용을 걸러내는 일”이 주된 업무다. ‘나꼼수’는 언제 어디서든 내려받을 수 있는 인터넷 라디오 팟캐스트를 통해 mp3파일로 유통된다. 다운로드 건수는 현재 회당 평균 200만건, 조회 수는 600만건에 달한다. 그가 쓴 ‘나꼼수’ 관련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방송의 인기가 실감나겠다”고 운을 떼자 그는 허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다 이명박 대통령 덕분이다. 우리 방송이 대통령을 위한 헌정방송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그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주진우 ‘시사 IN’ 기자를 말한다. 네 사람은 ‘나꼼수’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나꼼수’ 4인방이다. 이들은 왜 모였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나꼼수’ 4인방의 꼼수

“우리는 재미있는 정치담론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시대적 상황이 위중하니까 다루는 주제가 만만치 않은 것들이긴 하다. 그래도 성역 없이 할 얘기 다하자며 시작했는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 몰랐다. 처음엔 진보 진영의 마니아를 중심으로 엄숙주의를 탈피해 공감하고 즐기는 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제는 세대와 성향을 초월해 우리 방송을 청취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생산해내니까 감당이 안 될 정도다.”

▼ 김어준 총수와는 어떻게 만났나.

“2006년 독일월드컵 특별방송을 통해 알게 됐는데 그때만 해도 당시 여당이었던 세력에 대한 견해차이가 있었다. 한나라당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하는 면은 정서가 통했지만 당시 여당 내부의 모든 갈등구조를 회의적으로 봤던 나와 달리 김 총수는 ‘노무현으로는 안 된다. 탈당을 해서 민주당 간판을 회복해야 살길이 보인다’고 주장했던 탈당파들에 비우호적이었고 유시민 쪽에 굉장히 무게중심을 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인간적으론 이해가 가지만 일방적인 면에 약이 올랐고, 총체적으로 뭘 해도 안 되던 때였으니까.”

▼ 김 총수와 껄끄러웠겠다.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그러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김 총수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아웃되고 나도 모든 프로그램에서 잘리면서 동병상련의 정이 쌓였다. 김 총수는 2009년에 한겨레신문에서 ‘김어준의 뉴욕타임즈’라는 인터넷 방송 진행을 맡으며 날 추천했다. 김 총수의 저서 ‘닥치고 정치’를 보면 나에 대해 유머와 시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해놓았는데 과찬이다. 싼값에 쓸 수 있어서 불렀을 거다, 틀림없이. 하하하.”

▼ 방송에서 잘린 이유가 뭐였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주말에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오프닝 멘트를 세게 날린 게 화근이었다. 대통령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을 언급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다음 개편에서 통보도 없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게시판에 붙은 것을 보고 알았다.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뒤로는 뭔 얘기를 해도 자기 검열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가 되더라.”

▼ 그것이 ‘나꼼수’ 탄생과 연관이 있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무슨 얘기건 다 할 수 있었다. 그게 당연한 건데 너무 제약이 많으니까 화딱지가 났다. 편집의 주체가 되어 뉴스를 걸러내는 게이트키핑(Gate Keeping)을 직접 주도하는 방송을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결심을 김 총수와 공유하는 와중에 정봉주 전 의원을 끌어들여 2010년 4월28일 첫 녹음을 한 거다. 주 기자의 영입 계획은 원래 없었는데 청계재단 문제로 8회에 출연했을 때 방송이 빵빵 터져서 눌러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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