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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부러진 화살’ 혈흔 없는 와이셔츠…미스터리 석궁 재판

석궁 사건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 김유림 기자│rim@donga.com

사라진 ‘부러진 화살’ 혈흔 없는 와이셔츠…미스터리 석궁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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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석궁 재판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1월 19일 개봉
  • ● 재판 전에 ‘사법부 테러’ 정의한 사법부
  • ● “정봉주 무죄를 구걸할 게 아니라 국민이 사법부를 처벌해야 한다”
  • ● FTA ISD? “판사들이 헌법만 지키면 문제없다”
  • ● “법원장 이상 선거로 뽑자”
사라진 ‘부러진 화살’ 혈흔 없는 와이셔츠…미스터리 석궁 재판
2007년 1월 15일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재임용 탈락 무효 소송에서 패소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조교수가 서울 고등법원 민사2부 박홍우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겨눈 것. 이튿날 주요 일간지는 일제히 이 사건을 1면에 다루며 ‘석궁 테러’ ‘국내 최초 소송 당사자의 판사 테러 사건’으로 규정했다.

사건 발생 직후 장관급인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긴급 확대 간부회의가 열렸다. 당시 한 언론은 참석자들이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진 결과다” “사법 불복사태가 이어지는 것 아니냐”며 침통해했다고 전했다. 당시 검찰총장은 사건 직후 관할 검찰청 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검장이 직접 수사본부장을 맡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김 씨는 대법원에서 흉기상해 등 혐의로 4년형이 확정되면서 2011년 1월 만기 출소했다.

2012년 1월 19일 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한다. 석궁 사건 이후 재판부와 김 씨에 대해 다뤘다. 이 영화는 정식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시사회에 초대된 관객들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간 것. 한 관객은 “김 씨의 ‘석궁 재판’은 한국 사법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라고 평했다. 몇몇 관객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도가니’처럼 이 영화가 현실 변화의 도화선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한편 법조계에서도 ‘부러진 화살’은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 개봉 한 달 전 서울지방법원에서 대책회의가 열렸고, 영화 개봉 1주일을 앞두고 대법원은 석궁 재판 관련 판결문을 정리한 자료를 각급 법원 공보판사에게 발송했다.

기자는 당사자인 김 씨를 지난해 12월 말과 1월 초, 두 차례 만났다.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였던 김 씨는 1995년 대입 본고사 수학과목 채점위원으로 참가했다가 수학 문제 1개에서 오류를 발견했다. 김 씨는 “문제의 가정이 틀렸으므로 수험생 전체에게 15점 만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출제한 교수와 학교는 “오류 여부 논쟁으로 채점을 무작정 미룰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후 김 씨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으며 부교수 승진에서 실패하고 이듬해 조교수 재임용에도 탈락했다. 김 씨의 이야기는 1997년 초 세계적인 과학지 ‘사이언스(Science)’지에 ‘올바른 답에 대한 비싼 대가’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1996년 말 뉴질랜드로 이민 간 후 미국에서 생활한 김 씨는 2005년 3월 귀국해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김 씨는 적극적으로 재판에 응하며 재판 기록을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하고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입시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고, 서울고법 민사2부 박 판사 역시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 판결이 나고 나흘 뒤 김 씨는 박 판사의 집에 석궁을 들고 갔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김 씨는 퇴근하던 박 판사 아파트 1층 계단에서 그에게 70㎝ 길이의 검은 철제 석궁을 겨누며 다가갔다. 박 판사는 가방을 들어 가로막으며 실랑이가 벌어졌고 두 사람 간격이 1m 내외로 엉켜 있을 때 석궁에 장착됐던 화살 한 발이 튀어나갔다. 둘은 몸싸움을 벌였고 김 씨는 운전기사와 경비원에게 제압당했다.

화살을 뽑았다? 튕겨나갔다?

사라진 ‘부러진 화살’ 혈흔 없는 와이셔츠…미스터리 석궁 재판

김명호 전 교수가 사건 당시 사용한 석궁.

영화는 석궁 사건 재판에서 석연치 않은 점들을 지적한다. 먼저 박 판사가 화살을 맞았는지 여부다. 사건 발생 보름 후인 2월 2일 박 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순간 제 왼쪽 배에 화살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살을 뽑았던 기억이 난다”고 진술했다. 대법원 역시 “화살이 박 판사 복부에 박혔다는 점”을 인정했다.

당시 화살을 최초 수거한 경비원은 경찰 조사에서 “화살이 부러진 채 끝이 뭉뚝했다”고 진술했다. 김 씨는 “박 판사 몸에 철갑을 두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몸에 맞은 석궁의 끝이 뭉뚝해지겠느냐”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송파소방서의 구급활동일지에 ‘활이 복부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는 것 역시 박 판사의 진술과 불일치한다. 박 판사가 왜 처음에 ‘화살이 배를 맞고 튕겨졌다’고 말했다가 후에 ‘화살이 배에 박혀 손으로 뽑았다’고 했을까?

2007년 2월 송파경찰서 강력2팀은 65㎏ 상당의 돼지고기, 당시 박 판사의 옷차림 등으로 석궁 화력 실험을 했다. 석궁 화살이 발사됐을 때, 박 판사의 진술과 같이 복부에 박히면서 2㎝가량의 상처를 입히는 경우를 찾기 위해 경우의 수를 따져봤으나 결국 적합한 상황을 찾지 못했다. 화살 불완전 장전 상태에서 석궁을 쐈을 때 화살은 목표물을 관통하지 못했고, 완전 장전된 상황에서는 모두 목표물이 깊이 9㎝ 이상 관통했기 때문.

“단순히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화살이 발사됐을 뿐입니다. 저는 화살을 쏠 생각도 없었고 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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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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