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계 지도자와 술 ⑪

무송과 관우가 마신 술 황주(黃酒)

  •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무송과 관우가 마신 술 황주(黃酒)

1/3
  • ‘수호지’ 최고 호걸 중 한 명인 무송(武松)은 사발로 술을 18잔을 마시고 고개를 넘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
  • 무송이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술 백주(白酒)를 18사발 마셨다면 호랑이를 때려잡기는커녕 주막을 나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삼국지’의 관우는 ‘데운 술이 식기도 전에’에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와 따뜻한 술을 들이켰다. 관우가 마신 술도 삼국지(189~280)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당연히 발효주였을 것이다. 고량주와 같은 독한 술을 데워 마신다는 개념 자체가 어색하다.
  • 중국 4대 기서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무송과 관우가 마신 술 황주(黃酒)
옛 중국의 4대 기서(奇書·‘삼국지연의’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수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래 이름이 수호전(水滸傳)인데, 글자 그대로 ‘물가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는 뜻이다. 책 내용은 양산박(현재의 중국 산둥(山東)성 수장(壽張)현 근처로 추정)이라는 수상 세계를 무대로 권력의 부당한 압제에 항거하는 호걸 108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양산박의 주요 인물 중 상당수는 당시 하급군인과 직책이 낮은 행정관리 출신으로, 비록 그 지위는 높지 않았지만 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민중 지도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북송(北宋·960~1127)의 제8대 황제인 휘종의 치세기(1101~1125)다. 휘종은 명군으로 평가받는 신종의 아들로, 원래 왕위 계승 서열로는 황제가 될 가능성이 없었으나, 형인 철종이 후사 없이 일찍 죽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황제가 되는 행운을 누린 인물이다. 휘종은 ‘풍류천자’로 불릴 정도로 한량 기질이 강했다. 황제가 되자 국정보다는 그 자신을 위해 국고를 탕진했다. 결국 그의 무책임하고 방만한 국가 운영은 150년 이상 지속돼오던 북송이 금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휘종의 시대에 조정은 부패한 간신과 환관들이 득세하며 통제 없는 권력을 휘둘렀다. 수호지는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물이기 때문에 소설에 나오는 고위 관리들은 대부분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당시 4명의 간신, 즉 사간(四奸)으로 불렸던 재상 채경, 환관인 동관과 양진, 그리고 고구 중에서 특히 고구는 소설의 처음부터 주요 인물로 등장해 마지막까지 대표적인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그들의 시각에서는 조정에 대항해 활동하는 양산박의 호걸들은 민초의 불만을 대변하는 민중 지도자라기보다 불법을 저지른 전과자이면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한낱 도적의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양산박 108 호걸

16세기 후반 명대에 등장한 수호지는 저자도 명확하지 않고, 그 판본도 70회분, 100회분, 120회분 등 다양해 처음 소설이 지어진 후 상당한 첨삭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중 기본이 되는 70회분에서는 개별 호걸이 양산박으로 집결하는 과정을 옴니버스 구성으로 독립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마치 한 편씩 독립된 단편소설처럼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수호지 최고 호걸 중의 한 명인 무송(武松)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의 형 무대(武大)와 형수 반금련(潘金蓮), 그리고 형수의 정부 서문경(西門慶)이 어우러져 흥미롭게 전개되면서 수호지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서 서문경과 반금련의 관계는 또 다른 중국의 4대 기서인 ‘금병매(金甁梅)’의 중심 내용을 이루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수호지 관련 내용이 중국 4대 기서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수호지 22회분에서 무송은 소선풍 시진의 집에서 수호지의 중심인물인 송강을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한 뒤, 길을 떠나 고향의 형을 만나러 가게 된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도중에 경양강(景陽崗)이라는 험준한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그 근처에 도달했을 때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마침 무송은 고개 아래에 있는 주막을 발견했다. 그런데 주막에는 ‘삼완불과강(三碗不過崗)’이라는 의미심장한 글이 씌어 있었다. 주막의 ‘술 석 사발을 마시면 고개를 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주막 주인은 자기 집 술이 투병향(透甁香·향기가 술병을 뚫고 나갈 정도의 술)으로 불릴 정도로 향과 맛이 좋지만 한편으로는 출문도(出門倒·문을 나가자 마자 쓰러질 정도의 술)로 불릴 정도로 독한 술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내고 마시는 손님이라도 한 사람에게 석 사발 이상을 팔 수는 없다고 미리 다짐을 한다. 그러나 무송은 석 잔을 마신 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더 요구한다. 주인이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기어이 18사발을 마신 무송은 취기에 호기롭게 주막을 나선다. 그러고는 만취 상태에서 어두운 고갯길을 걷던 중 때마침 나타난 큰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 이 일은 무송타호(武松打虎)라는 고사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무송의 취중 무용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비록 친형제이긴 하지만 무송과는 달리 못생기고 약골이면서 가난한 친형 무대와 재회하고 나서의 일이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형수로 등장하는 요녀 반금련이 마을의 유지 서문경과 눈이 맞으면서 발생한다. 무송은 결국 무대를 독살하면서까지 불륜을 저지르는 반금련과 서문경을 죽인 죄로 맹주로 귀양을 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감옥을 관리하던 전옥(典獄)의 아들 시은의 부탁으로 동네 건달이자 힘이 천하장사인 장문신과 대결을 벌이기 위해 쾌활림(快活林)이라는 곳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결투 날, 무송은 채비를 갖추고 떠나기 전 시은에게 쪽지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무삼불과망(無三不過望)’이라고 적혀 있었다. 의아해하는 시은에게 무송은 “술이 없이는 싸울 힘과 기분이 나지 않는다. 쾌활림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주막마다 석 사발씩 술을 마시지 않고는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출발장소인 성문에서 쾌활림까지는 십사오리 거리로, 족히 여남은 개의 주막이 있기 때문에 한 주막에서 석 사발씩이면 무려 서른대여섯 사발을 마셔야 된다는 뜻이었다. 시은은 결전을 앞둔 무송이 술에 취해 일을 그르칠까 못내 걱정스러웠지만, 무송은 보란 듯이 보이는 주막마다 들러 술을 마신다. 그러고는 취한 상태에서 동네의 소문난 역사 장문신을 완력으로 거뜬히 무찌른다.

반금련을 죽이고 귀양 간 무송

그렇다면 무송이 경양강 고갯길 앞 주막과 쾌활림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주막에서 마신 술은 과연 어떤 종류의 술이었을까? 오늘날 중국 술이라고 하면 누구나 금방 떠올리는 고량주, 즉 백주(白酒)였을까?

기름진 중국 요리에 곁들여 작은 잔으로 조금씩 마시는 독특한 향의 독한 백주는 아무도 부인할 수없는 중국 술의 상징이다. 그러나 유구한 중국역사를 통해 백주와 같은 높은 도수의 술이 중국 사회에 소개된 것은 뜻밖에도 그렇게 오래전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에 존재하는 효모균이 과일이나 곡물 속에 있는 당 성분에 작용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발효주에 비해, 인위적인 증류 과정을 거쳐 알코올 농도가 높은 술을 얻는 증류주는 인류 역사를 통해 훨씬 늦게 소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3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목록 닫기

무송과 관우가 마신 술 황주(黃酒)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