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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알리의 전쟁 <마지막 회>

흑인 인권 투쟁가에서 백인국 자유시민으로

  • 안병찬│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ann-bc@daum.net

흑인 인권 투쟁가에서 백인국 자유시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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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킨슨병에 걸린 알리. 평생 흑인의 정체성과 인권을 위해 싸워온 그는 이제 인종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세계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대에 점화하고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하고 백악관에서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는다. 2002년 알리의 피에 아일랜드 백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제7장 / 파킨슨병과 어린이의 꿈

1. 영웅에게 닥친 불치병

흑인 인권 투쟁가에서 백인국 자유시민으로
무하마드 알리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대에 점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알리가 입은 흰색 체육복은 검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대조를 이루었다. 횃불 든 손을 뻗어 점화할 때 그의 손이 파킨슨병으로 떨리는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알리가 파킨슨병 확진을 받고 10년이 지난 때였다.

일찍이 알리는 ‘백인전용’ 식당의 인종차별에 격분해 올림픽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버리고, 흑인의 정체성을 위해 온몸을 던져 ‘알리의 1인 전쟁’을 벌였다. 그런데 냉전체제 속에서 반쪽짜리 올림픽 행사를 주관하게 된 미국 정부는 이슬람교도인 무하마드 알리에게 올림픽 금메달의 모사품을 만들어 증정하며 유화책을 편다.

미국 주류 언론은 알리가 스포츠 세계에 얼마나 공헌했는지, 사람들이 알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준다고 찬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사연으로 알리가 성화대에 점화하는 장면은 역설적이었다. 흑인의 정체성을 찾아서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온 알리가 이제는 미국의 정치와 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주류세력과 타협하고 인도적인 사업에 눈을 돌리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 한국 사진작가 김명중이 본 알리 /

근년에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알리를 가까이서 본 사람은 알리의 전담 사진작가이던 김명중이다. 김명중에 따르면 알리는 한 마디 한 마디 떼어서 겨우 말을 하고 부축을 받아야 걸을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얼굴 근육은 굳어져서 탈을 쓴 것처럼 표정이 없다. 그렇게 힘든 상황이지만 눈빛이 살아 있고 정신이 맑다고 했다.

권투를 하다가 큰 주먹을 맞으면 충격 때문에 휘청댄다. 미국 사람들은 이것을 ‘펀치 드렁크’라고 말한다. 강타를 당해 술에 취한 듯 비틀댄다는 뜻인데 흔들흔들하는 ‘그로기’ 상태와 뜻이 비슷하다.

알리가 파킨슨 증후군 진단을 받은 것은 1984년이다. 파킨슨병은 뇌 신경계의 만성 퇴행성 질환으로 안정 떨림, 경직, 자세불안이 증세의 특징이다. 알리는 헤비급 선수로 수없이 싸우면서 머리가 가공할 살인 펀치에 수없이 노출되어 누적된 펀치 드렁크가 그의 뇌 신경계를 병들게 했을 것이다. 파킨슨 진단을 받은 알리는 의연하게 처신하며 꾸준히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 부인 로니의 간병 /

알리의 네 번째 부인인 로니 알리는 파킨슨병 환자와 보호자 두 사람이 좋은 삶을 살자면 질병이 주는 스트레스를 인내하는 길뿐이라고 말한다. 21년 전 알리가 막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을 때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녀는 지체 없이 알리를 간병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파킨슨병은 행동을 제어하는 두뇌세포가 기능을 정지하는 진행성 중추신경계의 질환이다. 이 병은 떨림·근육 경직·동작 퇴행·자세 불안정·보행 곤란 등의 증세를 보인다. 처음에 무하마드 알리는 그의 몸이 자신을 파멸시킨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2. 무하마드 알리 센터

2004년 2월 알리는 단일 이벤트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미국 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 경기장에 등장해서 ‘미래는 어린이들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해 여름에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했다.

2005년 11월 9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무하마드 알리에게 민간인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주고 포옹했다. 알리의 부인 로니 알리가 옆에서 지켜봤다. 부시는 9·11사태에 대한 보복으로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차례로 침공한 주역이므로 ‘이슬람 민족’을 신봉하는 무하마드 알리에게 최고 훈장을 주는 것은 운명의 장난 같기도 했다. 그해 알리의 나이 63세였다.

2005년 11월 19일 건축비 8000만 달러를 들인 ‘무하마드 알리 센터’가 알리의 고향 루이빌의 오하이오 강변에 문을 열었다. 연면적 8988㎡의 6층 건물은 기념관, 문화관, 전시실, 권투 링, 타원형극장, 광장으로 이루어졌다. 뒤이어 2006년에는 알리의 이름과 문화적인 유산을 지속해서 함양한다는 취지로 ‘무하마드 알리 기업’이 설립됐다.

로니 인터뷰

다음은 로니 알리가 의료전문 자유기고가인 신시아 람나라스와 인터뷰(온라인 건강진단 정보망인 ‘에브리데이 헬스’ 2007년 게재)한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문 : 간병인으로서 하루는 어떤가?

답 : 매일 24시간을 돌보는 문제이므로 시작도 끝도 없는 하루다. 설사 잠시 쉬는 시간이 나도 환자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가 별일 없는가. 그가 예정대로 약을 먹고 하루를 뜻있게 활동하는가. 이런 것을 살피며 하루 단위로 삶에 의미를 준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문 : 보호자 한 사람이 환자의 육체적 치료뿐 아니라 삶의 질에 책임을 지므로 너무 어깨가 무거운 일이 아닌가?

답 : 그래서 파킨슨병 간병인은 경험담을 듣거나 충고를 받을 수 있는 공동체적 수단이 필요하다.

문 : 당신은 자책감이 드는 일을 한 적은 없는가?

답 : 나는 진심으로 남편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던 알 바가 아니다. 자기들은 남을 돌보지도 않으면서 이러쿵저러쿵 판정하려 드는 것이 가장 해로운 일이다.

문 : 진이 빠지는 것을 어떻게 피하는가?

답 : 많은 계획을 짠다. 일어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난 적이 없다. 남편이 나와 같이 있기를 좋아하므로 나도 남편을 위해 일하는 것이 좋다. 주말에도 무하마드와 단둘이 있다. 볼일이 있으면 그도 함께 간다. 그는 채소상점에 가고 카트를 미는 것을 좋아하지만 계산대를 나가기 전에 과자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런 일은 무하마드에게 하나의 모험이므로 즐긴다. 그를 보고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챔프! 어떠세요?” 하고 인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의 생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인생은 삶이다. 그는 삶을 즐긴다.

문 : 파킨슨병이 무하마드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답 : 파킨슨병은 퇴행성 신경장애 병이다. 신의 뜻으로 새로운 치료법이나 수술방법이 나오지 않는다면 시간이 갈수록 악화한다. 우리는 정말 행운이다. 무하마드의 파킨슨병은 진행 속도가 대단히 늦다. 그의 건강 상태는 썩 좋다. 문제는 무하마드의 목 부위 척추의 협착증이다. 그래서 오늘 보행보조기를 썼다. 2년 전에 수술을 받았다.

문 : 파킨슨병이 무하마드의 의사소통에 주는 영향은?

답 : 말에 문제가 있다. 몸의 상태는 늦은 저녁보다는 아침이 좋다. 약을 섭취할수록 말하는 데 장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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