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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채무에 신용불량, 이혼까지… “성공에 대비하지 못해 실패했다”

500만 명 가입한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김영삼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20억 채무에 신용불량, 이혼까지… “성공에 대비하지 못해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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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초로 방문자 수 ‘다음’ 이겼지만 비전 없어 곤두박질
  • ● 매입 대금 못받았는데 3년 만에 부과된 세금 24억 원
  • ● 정현철 씨(아이러브스쿨 지분 매입자) 9년 만에 귀국했지만 여전히 ‘기소 중지’
  • ● 대부분 벤처 1세대 창업 사이트에서 쫓겨나거나 재기 못해
  • ● “아이러브스쿨 성공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것”
  • ● “2001년 이후 헤게모니 잡는 아이디어 없다, 한국은 인터넷 소국”
20억 채무에 신용불량, 이혼까지… “성공에 대비하지 못해 실패했다”
2000년. 그야말로 벤처 광풍이었다. 한 해 동안 벤처 3864곳이 창업했다. 창업투자회사가 쏟아 부은 돈은 2조211억 원. 미래 가능성만 보고 투자하는 에인절 투자도 5493억 원에 달했다. 네이버, 옥션, 싸이월드 등 현재도 인기 있는 인터넷 사이트 대부분이 당시 벤처 붐을 타고 자리 잡았다. 그중에는 프리첼, 다모임처럼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현재는 명맥만 이어가는 사이트도 많다. 특히 1999년 한국 최초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표방하며 1년 만에 회원 500만 명을 모았던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김영삼(44) 씨는 모든 걸 잃고 20억 원대의 미납 세금을 껴안은 채 살고 있다.

최근 11년간, 그의 인생은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쳤다. 사기, 신용불량, 세금연체, 연이은 사업 실패, 이혼, 그리고 건강 악화까지. 3월 2일 서울 구로구 한 법률사무소에서 만난 김 씨는 “호접몽(胡蝶夢)이라는 말 아세요?”라며 대화를 시작했다.

“제가 꿈을 꾼 건지, 시대가 꿈을 꾼 건지 모르겠습니다. 목표 없이 시작한 사업이 갑자기 커버리고 그 뒤만 쫓아다니다보니 결국 저는 20억대 채무자가 돼버렸어요. 그 모든 일이 아득하고 부질없게 느껴져요.”

1999년 가을, 김 씨는 카이스트 경영정보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그때 형용준, 정태석 씨 등 연구실 옆자리 친구들이 벤처 ‘싸이월드’를 만들었다. 김 씨는 ‘사람을 모으려면 학연이 최고인데…’ 생각하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다. 당시 같은 연구실에 있던 이충석, 최병구 씨와 함께 50만 원씩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최 씨는 가족의 반대로 사업에서 발을 뺐고 이후 창업 과정에서 삼성전자 출신 임준규, 성기범 씨가 합류했다.

“사람 모으려면 학연이 낫다” 가볍게 시작

회원이 점차 늘어가자 서버 확충이 시급했다. KTB와 금양에서 투자 의향을 밝혔다. 당시 아이러브스쿨 회원은 1만 명. 김 씨는 두 회사에 “10억 투자하면 지분 40%를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결국 금양의 투자를 받았다. 금양은 발포제 및 관련 제품을 주로 만드는 화학공업업체로 1955년 부산에 설립된 중소기업이다.

아이러브스쿨은 ‘친구 찾기 열풍’을 선도하며 회원 수가 급격히 늘어갔다. 2000년 5월 25만 명을 돌파했다. 이후 한 달에 100만 명꼴로 회원 수가 늘었고 금세 회원 수 500만 명을 넘어섰다. 2000년 10월에는 세계 인터넷 사이트 방문자 순위를 매기는 ‘알렉사’ 사이트에서 한국 2위(1위는 야후코리아)까지 올랐다. 토종 한국 사이트로서는 늘 1위였던 ‘다음’이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빼앗긴 것.

야후코리아가 아이러브스쿨을 500억 원에 인수하려 했고, 초기에는 추가 투자를 거절했던 금양도 “500억 원에 인수하고, 경영권까지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지분 40%를 가진 금양 측의 거절로 야후코리아 인수는 실패했고, 창업주들은 금양에 회사를 넘기기로 결정했다.

2000년 9월 창업주 4명은 당시 금양 대표이사 정현철 씨와 계약을 맺었다. 아이러브스쿨에 대한 금양의 지분을 51%로 늘려 경영권을 확보한 뒤, 정 씨는 창업주들의 보유 주식을 개인적으로 매수하겠다고 밝혔다. 정 씨는 창업주 4명의 지분 32%를 개인적으로 매수했고, 매수대금 약 160억 원은 2001년 1월과 3월에 지급하겠다고 했다. 지급 기일이 됐지만 정 씨는 “시장 상황이 어렵다”며 지급 기한을 1년 늦춰줄 것을 요청했다.

2001년 11월 1일 정 씨는 본인 및 금양 보유 아이러브스쿨 지분 전량을 서울이동통신에 매각하고 그날 오후 홍콩으로 몰래 출국했다. 김 씨를 제외한 창업주 3명은 담보로 받아놓은 금양 측 어음 덕분에 50억 원을 변제받았지만, 김 씨는 담보 없이 계약서 한 장 달랑 가지고 있었다. 김 씨는 “당시 사업 경험이 없어 어수룩했고 ‘사업에서 빨리 손 털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코스닥 상장사 사장이자 대주주인 정 씨가 설마 내 돈을 안 갚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선 지급받은 20억 원을 제외하고 매매대금 73억 원과 정 씨에게 빌려준 10억 원, 총 83억 원을 떼이게 됐다. 민·형사상 소송을 했지만 정 씨는 이미 행방불명 상태. 형사 소송은 기소중지됐다. 서울중앙지법은 2008년 민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정 씨가 김 씨에게 원금 100억 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3년 만에 부과된 세금 24억 원

아이러브스쿨을 떠난 김 씨는 모두와 연락을 끊고 집으로 들어갔다.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후회할 일을 안 하려면 아무것도 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아이는 두 살과 네 살. 직장인 아내 대신 육아와 가사에 전념했다. 일은 없었지만 배짱은 두둑했다. 선 지급받은 20억 원 덕분이었다. 그 돈으로 10억 원대 아파트를 구입했고, 5억 원은 직원들에게 분배했으며 남은 5억 원으로 부모님과 자신의 차를 바꿨다. 그러고도 현금이 남아 있었다. “조만간 현금 80억 원이 더 들어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정 씨의 도주로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더 큰 문제는 3년 후 발생했다. 2004년 세금부과 예비통지서가 날아왔다. 김 씨가 정 씨에게 주식을 양도했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것. 김 씨는 돈을 못 받았기 때문에 세금을 낼 수도 없고 낼 필요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자문한 변호사 역시 “세금은 실질과세원칙이 있기 때문에 대금을 못 받았으면 세금을 안 내도 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국세청에서는 기존 세금 9억 원에 미신고가산세(50%), 연이율(25%) 등을 붙여 24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 국세청에 소명자료를 냈나요?

“네, 그런데 국세청에서는 ‘제가 받을 돈을 못 받았을 뿐이지 명의를 넘긴 건 확실하기 때문에 세금 관계에서 채권 채무관계는 유효하다’며 세금을 내라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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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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