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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⑬

미국 메이저리그의 ‘엄친아’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

과감한 트레이드 유망주 육성으로 혁신 주도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미국 메이저리그의 ‘엄친아’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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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말 미국 메이저리그의 명문구단 보스턴 레드삭스에 28세의 풋내기 단장이 부임했다. 야구에 관한 경력이 거의 없는데다 어지간한 주전 선수보다 나이가 어린 엡스타인을 단장으로 뽑자 미국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여론의 우려와 팬들의 반대가 들끓었지만 이 초짜 단장은 부임 2년 만에 86년간 이어져오던 밤비노의 저주를 깼다. 불과 3년 후에 두 번째 우승컵을 안기며 보스턴 레드삭스를 200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 구단으로 만들었다. 엡스타인은 이제 새로운 저주를 풀기 위해 자신의 무대를 시카고로 옮겼다. 그는 2011년 말 1908년 이후 100년 넘게 월드시리즈 정상을 밟지 못해 ‘염소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는 시카고 컵스의 사장으로 부임했다. 밤비노의 저주를 깬 그가 염소의 저주까지 깨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쓸지 주목된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엄친아’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
메이저리그에서 1990년대가 ‘양키스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보스턴의 시대’라고 하겠다. 1918년 다섯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리며 이후 오랫동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밤비노의 저주’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이자 밤비노라는 애칭을 갖고 있던 베이브 루스를 1920년 헐값에 라이벌 구단 뉴욕 양키스에 팔아넘긴 보스턴이 이후 86년간 월드시리즈를 제패하지 못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 못지않게 열광적이고 때로는 극성맞기까지 한 팬을 보유하고 있는 레드삭스 구단은 이 저주를 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저주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급기야 보스턴 레드삭스의 구단주 존 헨리는 2011년 8월호 ‘Leadership in Sports ④’에서 소개한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을 레드삭스의 새 단장으로 영입하려 했다. 하지만 빈은 10년간 1250만 달러(약 140억 원)라는, 당시로서는 메이저리그 단장 중 최고 연봉을 거절하고 오클랜드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헨리 구단주가 선택한 인물이 바로 젊은 단장 테오 엡스타인이다.

애송이 단장의 행보는 좀처럼 주변의 신뢰를 얻기 어려웠다. 엡스타인은 세이버 메트릭스(saber metrix)란 희한한 통계를 동원해 보스턴 팬들로선 이해가 안 되는 트레이드를 해댔다. 특히 보스턴 레드삭스 최고의 스타인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까지 트레이드시켰을 때 비난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는 부임 첫해 레드삭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다음해에는 86년간 보스턴의 발목을 잡았던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다. 과감한 트레이드와 유망주 육성으로 그가 3년 후 또 우승에 성공하자 풋내기 단장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는 아이비리그 출신의 천재 단장 혹은 우승 청부사라는 칭송으로 바뀌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단장(General Manager)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단장이 선수단 구성과 팀 운영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신인 선발부터 트레이드, FA(자유계약선수) 영입에 있어 감독이 아니라 단장이 전면에 나서 모든 일을 주도한다. 이 때문에 각 구단은 능력 있는 단장을 영입하기 위해 선수 스카우트 못지않게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을 벌인다. 유능한 경영자가 때론 야구단의 핵심 자산인 선수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은 2011년 10월 임기를 1년 남겨둔 엡스타인이 시카고 컵스로 이동하면서 입증됐다.

시카고 컵스가 엡스타인 단장을 새 사장으로 전격 스카우트하자 능력 있는 젊은 경영자를 빼앗긴 보스턴 레드삭스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보스턴은 엡스타인을 내주는 대신 컵스의 에이스 맷 가자, 올스타에 뽑힌 명유격수 스탈린 카스트로를 달라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할 정도로 큰 상실감에 빠졌다.

4개월간이나 답보 상태에 빠졌던 양측의 분쟁은 결국 2012년 초 컵스가 마이너리거 2명을 내주는 조건으로 마무리됐다. 이로써 시카고 컵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는 구단 프런트와 선수 간 트레이드라는 희귀한 사례를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겼다. 게다가 컵스는 엡스타인에게 5년간 1850만 달러(약 200억 원)라는 엄청난 연봉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시카고 컵스가 이렇게 큰 출혈을 감수하고도 엡스타인을 데려온 이유는 컵스 역시 ‘염소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컵스는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던 1945년, 홈구장인 리글리필드에 염소를 데리고 나타난 팬의 입장을 거부했다. 당시 해당 팬은 “앞으로 이 구장에서 다시는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결국 시카고 컵스는 이해 월드시리즈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던 1908년 이후 104년 동안 우승하지 못하고 있다.

컵스는 메이저리그 내 30개 야구단 중 가장 오랜 시간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에 지난 9년간 팀을 이끌었던 짐 헨드리 단장을 해임하고 엡스타인에게 미래를 맡겼다. ‘밤비노의 저주’를 푼 천재 엡스타인이 ‘염소의 저주’까지 풀고 컵스에 우승반지를 안길 수 있을까. 만약 성공한다면 엡스타인은 어지간한 스타 선수나 감독보다 더 크게 자신의 이름을 메이저리그 역사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테오 엡스타인은 누구인가

미국 메이저리그의 ‘엄친아’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
테오 엡스타인은 1973년 미국 뉴욕시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家系)에는 글쓰기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많다. 엡스타인의 할아버지인 필립 엡스타인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고전영화의 교본 ‘카사블랑카’의 각본을 썼고 소설가인 아버지 레슬리 엡스타인은 보스턴대에서 창작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동생인 안야 엡스타인 또한 ‘강력살인’ ‘거리의 삶’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 등 미국 유명 드라마의 각본에 참여한 바 있다.

엡스타인은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와 전혀 인연이 없었다. 브루클린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미국 고교생이라면 한 번쯤은 참가하게 마련인 교내 야구부의 일원으로도 활동한 적이 없다. 1991년 예일대에 입학한 그는 교내 신문인 ‘예일 데일리 뉴스’에서 스포츠 담당 부장을 맡아 스포츠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는 결국 대학 졸업 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의 홍보부에 취직하는 계기가 됐다. 엡스타인은 파드리스 구단에 재직하면서 샌디에이고대 로스쿨을 다니고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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