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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자와 술 ⑮

데킬라의 아버지, 아스텍 왕국의 술 ‘풀케’

  •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데킬라의 아버지, 아스텍 왕국의 술 ‘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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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텍을 점령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들 눈에 들어온 재밌는 술이 ‘풀케(pulke)’라는 토속주였다. 멕시코 일대에 자생하는 아가베(agave·용설란)에서는 아구아미엘(aguamiel·꿀물)이라는 천연 당을 포함한 즙이 분비되는데, 이 즙에 천연 효모가 작용하면서 저절로 발효가 일어나 만들어진 술이 풀케였다. 아스텍 정복자들은 이 신기한 술을 스페인 본국까지 보내려 했지만 낮은 알코올도수 때문에 운반할 수 없었고, 결국 풀케를 높은 도수의 증류주로 만들려고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이 메즈켈과 데킬라.
데킬라의 아버지, 아스텍 왕국의 술 ‘풀케’

에르난 코르테스.

스페인어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는 정복자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는 15~17세기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한 스페인들을 이르는 말로 주로 사용된다. 이 기간 많은 콘키스타도르가 있었지만, 이 중에서도 1521년 멕시코의 아스텍 왕국을 제압한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1485~1547)와 1532년 페루의 잉카제국을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1475?~1541)가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이 중 제1세대 콘키스타도르를 상징하는 인물인 에르난 코르테스는 1485년 스페인 서부 지역 작은 마을 메데인(Medell?in)의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훗날 잉카 제국을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그의 외가 친척이다. 코르테스에 대한 기록은, 그의 일생에 대한 객관적인 사료가 부족한데다 업적에 대한 후세 평가도 위대한 정복자에서 사악한 약탈자에 이르기까지 극명하게 나뉘어 있어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콘키스타도르’ 에르난 코르테스

코르테스는 14세가 되던 해에 명문 살라망카대에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에 싫증을 내고 2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공증인 일을 배워 이 방면 일을 하던 그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갈 계획을 세운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당시 모험가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이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한동네 유부녀와의 간통 현장에서 급히 도망가면서 입은 부상 때문에 계획을 일시 연기했다.

마침내 그는 19세 때인 1504년, 아메리카로 건너가 에스파뇰라(지금의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서인도제도에 속함)에 도착했다. 코르테스가 에스파뇰라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 그의 먼 친척뻘이 되는 니콜라스 데 오반도(Nicol?as de Ovando·1460~1518)가 지역 총독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르테스는 에스파뇰라에 도착한 지 얼마 후부터 총독의 후원 아래 주변 식민지를 개척하는 데 큰 활약을 보였다. 이 때문에 그는 포상으로 토지와 노예 등을 하사받는 등 개인적 기반을 쌓아갔다. 1503년 당시 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 제정돼 ‘엔코미엔다(encomienda)’로 불린 이 포상 제도는 정복자들에게 토지와 원주민 인디오들을 함께 나눠주면서 업적을 보상해주는 제도였다. 1511년 코르테스는 총독 보좌역인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1465~1524) 휘하로 쿠바 정복 작전에 참여한다. 코르테스는 이 전투에서 상당한 공을 세웠고, 상관인 벨라스케스는 쿠바 정복에 대한 공로로 쿠바 총독으로 임명된다. 벨라스케스는 코르테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총독비서 등 총독부의 요직을 맡겼다. 앞서 말한 엔코미엔다의 혜택도 당연히 뒤따랐다.

그러나 당시 아메리카 정복자들 사이에선 음모와 배신이 난무했다. 벨라스케스 총독 역시 젊은 코르테스의 승승장구를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518년 벨라스케스의 지시로 멕시코 유카탄반도 일대를 개척해나가던 후안 데 그리할바(Juan de Grijalva)에게 지원군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벨라스케스는 처음에는 코르테스를 책임자로 해 지원군을 편성하도록 했고, 호시탐탐 더 큰 기회를 노리고 있던 코르테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다. 그러나 코르테스의 충성도를 신뢰하지 않던 벨라스케스는 지원군 출발 직전에 마음을 바꾸어 책임자를 교체하려고 했다.

부유한 아스텍 왕국

데킬라의 아버지, 아스텍 왕국의 술 ‘풀케’

멕시코시티에서 북쪽으로 50여 km 떨어진 테오티우아칸의 ‘달의 피라미드’. 7세기 경 갑자기 쇠퇴한 테오티우아칸 문명은 12세기 멕시코시티로 이주한 아스텍인들에 의해 발견돼 ‘신이 지은 도시’로 숭배됐다.

평소 벨라스케스 총독의 태도로 이런 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코르테스는 벨라스케스의 명령을 무시하고 1519년 11척의 배에 병사 500명과 말 13필을 나누어 싣고 출항해 유카탄 반도에 상륙했다. 이는 공식적으로는 엄연히 명령 불복종죄에 해당하는 중죄 행위였다.

어쨌든 그는 유카탄 반도에 상륙한 후 교두보로 항구도시 베라크루스(Veracruz)를 만들고, 그곳의 마야 원주민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부족들을 점령해나갔다. 당시 말이나 대포에 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원주민들은 무장한 스페인 군을 보고 공포 속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했다. 멕시코 내륙으로 진군하던 코르테스는 타바스코(Tabasco) 지역에서 저항하던 원주민들을 물리친 뒤 젊은 여인 20명을 받게 된다. 이 중에는 훗날 그의 정부가 되어 아들까지 낳는 마린체(Malinche)가 있었다. 마린체는 그에게 훌륭한 조언자이자 통역 역할을 했는데, 그의 도움으로 코르테스는 원주민들로부터 서쪽으로 더 가면 아스텍이라는 부유한 왕국이 있다는 정보를 얻는다.

코르테스 군은 아스텍 왕국과 오랫동안 숙적 관계에 있던 틀락스칼란(Tlaxcalan) 원주민들과 동맹 관계를 맺은 뒤, 1519년 11월 아스텍 왕국의 중심지 테노치티틀란(Tenochititlan)에 도착했다. 이때의 코르테스 군은 중간에 보충한 스페인 병력과 원주민 인력까지 포함해 상당한 병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아스텍 왕인 몬테수마 2세(Moctezuma II·재위기간 1502~1520)는 위풍당당하게 군대를 이끌고 나타난 코르테스의 모습을 보고, 아스텍 전설 속의 신(깃털 달린 뱀 형상을 한 신 케트살코아틀)이 보낸 사자이거나 심지어 신 그 자체로 착각하고 그를 환대했다.

코르테스 일행을 환영한 몬테수마 왕도 곧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채고 그를 유인해 반격을 꾀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코르테스에게 사로잡혀 스페인 왕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몬테수마 2세가 코르테스에게 굴복하자 아스텍 국민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코르테스는 아스텍 왕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뒤 그들의 우상을 파괴하고 왕국의 실력자들을 차례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한편 불법 출정에서부터 아스텍 왕국의 침략 등 코르테스의 행동을 반란으로 간주한 쿠바 총독 벨라스케스는 1520년 4월 판필로 데 나라바에스(Pa?nfilo de Nara?vaez·1478~1528)에게 군사 1100명을 주어 코르테스를 정벌할 것을 명령한다. 정벌대가 베라크루스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은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에 200명의 병사를 남겨놓고, 이들 군과 대항하기 위해 떠났다. 전투 결과 코르테스 측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진압군을 성공적으로 무찌르고 패잔병들을 오히려 그의 군대에 합류시키는 전과를 올린다.

그런데 테노치티틀란 관리를 부탁했던 부관이 원주민 학살을 자행하는 바람에 대규모 원주민 폭동이 발생한다. 코르테스는 사태 수습을 위해 황급히 테노치티틀란으로 돌아가 유화책을 쓰려고 했지만 이 와중에 1520년 7월 1일 몬테수마 2세가 자신의 백성들 손에 죽음을 맞는 비극이 일어난다. 스페인 측 기록에 따르면 몬테수마 왕이 코르테스의 부탁을 받고 아스텍 백성들을 설득하는 연설을 하려고 하다가 흥분한 군중의 돌과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었으며 그로부터 얼마 뒤 목숨을 잃었다. 이때 당황한 코르테스는 그간 획득한 재물도 포기하고 많은 부하를 잃은 채 간신히 도망가는 수모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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