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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⑥

염장 조대용

대오리 2000가닥으로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과학적인 커튼

  • 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염장 조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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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날 대청마루에 발을 걸면 그늘이 드리워지고 바람은 시원하다. 바깥 사람들의 시선을 막아주면서 안쪽에서는 바깥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발은 한때 우리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용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활용품보다 귀한 예술품이 되었다. 통영에서 발을 만드는 염장(簾匠) 조대용은 아주 가는 대오리로 매우 섬세한 발을 만든다. 특히 아름다운 문양은 통영 발의 특징이자 한국 발의 특징이고 조대용의 특기다.
염장 조대용

우리나라 발에 가장 자주 쓰이는 육각형 귀갑문과 그물코 문양을 넣어 짠 발.

北窓淸曉捲疏簾 북창에 맑은 새벽, 성근 발을 걷으니

重疊雲山露碧尖 겹겹 구름 산, 푸른 꼭대기가 뾰족 드러났다

夜前似聞行雨過 간밤 비 지나가는 소리 들은 듯한데

朝來爽氣滿虛 아침이 오니 상쾌한 기운 빈 처마에 가득하다

조선 중기 시인 석주(石洲) 권필(權)이 여름 새벽에 일어나 북쪽의 구름 덮인 천마산을 보기 위해 걷은 발은 성근 발이었다. 그러나 염장(簾匠) 조대용(趙大用· 61)이 짜는 발은 곱고 촘촘한 발이다. 그래서 옛 시인은 고운 보슬비가 내리는 광경을 ‘섬세한 발처럼 내린다[雨簾纖]’고도 했나 보다. 그 고운 발을 더운 여름날 창이나 방문, 마루에 걸어놓으면 햇볕을 가려 그늘을 만들면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또 굳이 걷지 않아도 바깥 풍경까지 담아낼 수 있었다.

“발을 치면 안과 밖이 분명하게 구분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발을 치면 밖에서는 어두운 실내가 잘 안 보이지만,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밝은 바깥을 훤히 내다볼 수 있지요. 새색시나 부인네가 타는 좁은 가마가 답답해 보이지만, 가마에 발을 드리우면 안에 앉은 여인은 바깥 구경을 다 할 수 있었어요.”

가마에 치는 가로로 긴 모양의 가마발은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 창문의 색유리와 비슷하다 할 텐데, 색유리에 댈 게 아니다. 유리와 달리 발을 치면 바람도 통하고 바깥 소리도 다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경계’와 ‘소통’의 기능을 아울러 갖는 발의 장점 덕분에 수렴청정(垂簾聽政)도 가능했으리라. 궁궐의 여인은 자신의 얼굴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정사(政事)를 논하는 대신들의 말을 들으며 그들의 얼굴 표정까지 하나하나 다 살필 수 있었을 테니.

이처럼 발은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바깥을 볼 수 있어, 더운 날에도 방문을 활짝 열어놓기 곤란했던 옛 부인네들이나 선비들에게 매우 요긴했을 터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분명히 쓰임새가 있건만, 애석하게도 요즘 발을 사용하는 집은 거의 없다.

“가옥 구조가 아파트로 바뀐 것이 가장 큰 요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곳 통영 부인네들은 눈이 높아서 발을 찾는 사람이 꽤 됐었는데, IMF 구제금융 때 발 구입이 확 줄더니 그 뒤로 세대가 바뀌면서 발을 사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이제 발의 매력과 멋에 빠진 사람이 사라졌나 보다. 아니, 있지만 저렴한 중국 발을 손쉽게 사다 쓰지 섬세하면서도 묵직하고 우아한 우리 발은 까마득히 잊은 듯하다. 그래서 조대용의 발은 이제 일반 가정집 대신 박물관이나 전람회에 자주 내걸린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자주 초청을 받고, 파리 국제박람회에서도 전시회를 열었고, 서울 코엑스에서 현대미술 작가와 함께 공동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하는 등 그의 작품은 국제적인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에서 발이 더 이상 일상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점을 가장 안타까워한다.

나일론 실로 엮은 발을 출품하다

염장 조대용

발로 엮을 대나무는 한겨울에 채취해 1년치 쓸 것을 마련해둔다. 작업에 들어갈 때 한 감씩 꺼내와 1mm 두께로 일일이 갈라야 한다.

그가 발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4대를 내려온 발 짜기 전통이 그의 대(代)에서 큰 변화와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증조할아버지가 철종 임금님 때 무과에 급제했는데, 발을 손수 짜서 임금님께 진상해 큰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증조할아버지가 짠 발은 문양을 넣지 않은 민짜 발에다 먹으로 희(喜)자를 쓴 것이라고 하니, 아마 소박했을 겁니다.”

집안 대대로 발을 짰다고 하나, 그렇다고 그의 집안이 발을 전문적으로 짜는 장인 집안은 아니다. 무관이었던 증조할아버지에 이어 할아버지는 면장을 지냈고, 아버지는 고향 광도면 면서기로 시작해 부면장으로 퇴임하기까지 평생 공무원 생활을 했다. 다만 옛사람들이 농사지으며 일상 생활도구를 손수 만들어 쓰던 전통대로 발도 직접 짰던 것뿐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의 집안 어른들은 솜씨가 뛰어났던 것이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발을 잘 짜셨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퇴직하시고 사촌누나의 부탁으로 자형이 다니던 은행 지점장에게 선물할 발을 짜주셨는데, 이를 본 부산 사람들이 주문을 해올 정도였지요.”

솜씨도 내림을 하는 것인지 그 역시 딱히 짜는 법을 배운 적도 없건만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문양 없는 부분은 어렵지 않게 짤 실력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발 짜는 일이 평생 숙업이 되리라고는 그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군대 다녀오고 나서 그저 용돈벌이 삼아 발을 짰습니다. 당시 부인네들은 계를 많이 했는데 계원들이 열 개, 스무 개씩 주문하곤 했으니 용돈벌이로는 꽤 괜찮은 편이었지요. 물론 ‘작품’을 만든다는 의식도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명주실로 짜는 것도 아니고 나일론 실로 엮은 것이었어요. 나일론실이 튼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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