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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감독이요? 아직도 미워요, 하하”

“내 뒤에 공 없다” 영원한 전성기 김병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히딩크 감독이요? 아직도 미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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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축구를 즐기다니! ‘축구’와 ‘즐긴다’는 함께 쓸 수 없어
  • ● 축구선수로 성공하려면 스스로 감동할 만큼 훈련하라
  • ● 금주·금연은 프로 선수의 100가지 금기 중 하나일 뿐
  • ● 44세 7개월 17일, ‘신의손’ 기록 깨고 당당하게 은퇴하겠다
“히딩크 감독이요? 아직도 미워요, 하하”
‘수원 삼성’ 이용수의 페널티킥은 골문 오른쪽을 향해 세차게 날아갔다. 그러나 ‘경남 FC’ 김병지의 손이 더 빨랐다. 몸을 날린 그의 펀칭에 공은 맥없이 골문 밖으로 나가떨어졌고, 잠시 후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7월 8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수원 대 경남전의 마지막 장면. 이번 시즌 홈 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던 수원이 경남에 0대 3 완패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경기 내내 쉴 새 없이 ‘날아다닌’ 골키퍼 김병지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이 번졌다.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단연 김병지였다. 수원은 슈팅 17개를 쏟아내며 끊임없이 경남 골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단 한 골도 김병지를 뚫지 못했다. 경기 시작 5분 30초 만에 허용한 페널티 박스 바로 바깥에서의 프리킥부터 그랬다. 골문 왼쪽을 파고드는 에벨톤의 강슛을 쳐내고 1분 뒤, 이번에는 스테보가 골문으로 쇄도했다. 김병지는 또 한 번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지막 페널티킥을 막았을 때는 수원의 홈팬들마저 박수를 보냈을 정도로 김병지의 선방은 눈부셨다. 이날로 만 42세 3개월이 된 K리그 최고령 선수. 그는 여전히 가벼웠고, 날쌨다. 수원을 제물 삼아 개인 통산 무실점 경기 기록을 202경기로 늘렸고, 통산 588경기를 뛰어 K리그 최다 출장 기록도 이어갔다. 현역 선수 중 2위인 전남 최은성(41)의 476경기보다 100경기 넘게 더 뛴, 독보적인 기록이다.

그를 만나러 경남 함안의 경남 FC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길, 머릿속에서는 내내 수원전의 장면들이 흘러다녔다. 김병지의 도약, 펀칭, 수비 리드, 그리고 분노. 이날 경기에서 수원이 얻은 가장 확실한 득점 기회는 종료 직전의 페널티킥이었다. 후반전이 끝나고 추가 시간마저 끝나갈 무렵, 경남 수비수 유호준이 위험 지역에서 무리한 태클을 한 게 화근이었다.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하는 순간 김병지는 유호준을 호되게 꾸짖었다. 다른 선수들이 다가와 말려야 했을 정도로 그의 분노는 거셌다. 수원의 마지막 공격을 완벽하게 막은 후 김병지가 마침내 웃을 때까지, 그라운드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절대 하면 안 되는 실수

승부는 일찌감치 결정된 터였다. 게다가 김병지는 이미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수비 실수로 인한 페널티킥 탓에 설령 한 골을 허용한다 한들 뭐가 달라질 것인가. 대체 무엇이 김병지를 그토록 화나게 만든 건지 궁금했다.

함안은 멀었다. 서울서 꼬박 5시간이 걸리는 그곳에서 김병지는 많게는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후배들과 같이 숙소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가족들과는 한 달에 두세 번 보는 것이 전부인 일상에서, 그는 팀의 어린 선수들을 조카로 대했다. 거리낌 없이 김병지를 ‘삼촌’이라고 부르는 그들에게서 친근함이 느껴졌다.

▼ 축구장에서는 후배들을 무섭게 대하시던데, 지금은 정말 삼촌 같네요.

“원래 골키퍼는 고래고래 고함지르고 동료 선수들을 혼내는 포지션이에요. 저는 20년 전 데뷔했을 때도 경기 중에는 선배들 이름을 그냥 불렀어요. 경기장의 전체적인 상황을 알려주면서 수비 위치를 잡아줘야 하는데 그라운드가 많이 시끄럽거든요. 고함을 계속 치니까 모르는 분들이 보면 화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죠.”

경상도 억양이 선명한, 조금은 투박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설명은 차분했다.

“밖에서는 이렇게 작게 말하잖아요. 그런데 경기 한 번 하고 나면 목이 쉬어요. 하도 소리를 질러서.”

김병지는 자신의 별명을 ‘날미존’이라고 했다. ‘날아다니는 미친 존재감’이라는 뜻이다. 축구장 안에서 그는 확실히 그랬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슈팅을 막아낼 때도, 후배를 호되게 꾸짖을 때도. 그 뚜렷한 존재감 때문에 그의 분노가 더 크게 느껴졌던 걸까.

▼ 이번 수원전에서의 모습을 말씀드린 겁니다. 유호준 선수를 혼낼 때 정말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 김병지는 빙긋 웃었다.

“그때는 정말 화가 났죠.”

조금은 쑥스러운 듯한 웃음이었다.

“일단 유호준 선수는 지금 우리 팀에서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후배고요. 그런데 그날은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집중력을 잃고 어이없는 반칙을 하더라고요. 그게 페널티킥으로 이어져서 실점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니 화가 난 거죠.”

김병지는 “호준이는 예전에 다른 경기에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내준 적이 있다. 축구를 하다보면 자책골을 넣는 것처럼 불가항력으로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런 건 이해하고 다독여준다. 하지만 긴장하지 않는 바람에 저지르는 실수는 따끔하게 혼내야 반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승리가 확정적인 경기라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이기려고만 경기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관중에게 열정을 보여줘야 하고, 감동도 줘야 합니다. 그냥 동네 운동장에서 경기하듯 축구를 한다면 사람들이 왜 돈을 내고 축구장에 오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알고 있다. 골키퍼에게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1948년 런던 올림픽에 국가대표팀 골키퍼로 출전했던 고(故) 홍덕영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1969년 ‘신동아’에 기고한 ‘골키퍼의 고독과 영광’이라는 글에서 “누구나 시합 도중 3, 4회는 실수를 한다. 골키퍼는 한 번도 안 된다. (나는) 그런 골키퍼 자리를 10년이나 했으니 다른 선수보다 더 많이 늙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김병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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