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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⑥

현대 정주영 VS 삼성 이병철

한국 경제부흥의 쌍두마차

  • 박상하| 저자 psangha1215@hanmail.net

현대 정주영 VS 삼성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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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주영 VS 삼성 이병철

이병철 삼성그룹회장(오른쪽) 77세 생일 및 회고록 ‘호암자전`’출판기념회에서 이 회장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축배를 들고 있다.

한국 경제사에서 1945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재계에선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비로소 한국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한 이때를 기점으로 8·15 광복 이전을 선사시대, 이후를 역사시대로 구분 짓기도 한다. 이 같은 광복 이후의 한국 경제사를 돌아봤을 때 지금의 현대(HYUNDAI)를 일으킨 정주영(1915~2001) 회장과 삼성(SAMSUNG)을 일으킨 이병철(1910~1987) 회장이 상징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전 생애를 건 모험과 도전으로 이들이 일궈낸 성공 신화는 오늘날까지 한국 경제계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한국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영학자들은 현대의 정주영을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 1위로 선정했다. 그런가 하면 오피니언 리더와 전문경영인(CEO)을 대상으로 한국에 필요한 ‘21세기형 CEO상이 누구인가?’를 설문한 조사에선 삼성의 이병철이 1위로 뽑혔다. 이러한 조사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이들이 우리 경제계에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정주영은 숱한 역경을 긍정적 자세와 도전정신으로 극복해 지금의 현대그룹을 키워냈을 뿐 아니라 광복 이후 최빈국 수준이던 한국 경제를 일으킨 일등공신이다. 또 그런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명확한 비전과 불굴의 용기는 곧 한국 경제의 신화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불같은 열정 vs 간결하고 냉철함

정주영이 뚝심과 저력으로 현대를 키워나가는 동안, 다른 한편엔 그의 영원한 맞수 삼성의 이병철이 있었다. 변화와 위기에 대한 탁월한 판단과 대처 능력, 미래를 내다보는 예리한 혜안과 확고부동한 경영 능력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지지 않았던 이병철의 리더십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기업이 안고 있는 고민 해결과 해법에 여전히 유효하다. 빈틈없는 태도와 날카로운 시선, 경쟁관계를 즐겼던 그는 수많은 난국을 헤쳐나가야 하는 기업가의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그리하여 기업의 부침이 유난히 심했던 한국 경제계에서 반세기 넘도록 정상의 자리를 지켜냈을 뿐 아니라, 마침내 전자기술 분야의 첨단산업에 나서 지금의 삼성전자 신화를 이룩해냈다.

이렇듯 같은 시기 경제계에 홀연히 등장한 두 사람은 상반된 경영 문법과 스타일로 한국 기업 성장사(史)의 쌍두마차를 이끌었다. 정주영이 한사코 ‘이기는 기업가’였다면 이병철은 ‘결코 지지 않는 기업가’였다. 자신들의 신념을 기업 경영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혈투마저 벼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두 사람은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라이벌이기도 했다.

사람을 보았을 때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 곧 인상은 그 사람의 생애를 밝히는 거울이기도 하다. 우리가 관상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그 사람의 외모만으로도 곧잘 ‘저 사람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더욱이 이런 상론이 대부분 맞아떨어지는 것에 대해 ‘그러면 그렇지’ 하고 말지, 놀라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인상이란 그만큼 사람의 진면목을 밝혀주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주영과 이병철은 이 대목에서부터 서로 판이했다. 기업가의 길을 평생 같이 걸었음에도 도무지 닮은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먼저 정주영의 인상을 보면, 우선 그의 이름과 함께 나타나는 이미지가 언제나 동일하다. 크고 단단해 보이는 체격에 빗어 넘긴 듯 만 듯 짧은 머리, 희미한 눈썹, 약간 부은 것 같은 두툼한 눈꺼풀, 커다란 뿔테 안경이 일종의 소품이라면, 오른쪽 안면에 살짝 힘을 준 채 수줍게 웃는 특유의 미소는 그의 총체적인 이미지를 대변하는 트레이드마크다. 정주영의 이런 순박한 웃음은 상대를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그가 이렇게 웃을 때면 그룹 회장의 이미지보다는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가 떠오른다.

정주영은 이런 순박한 외모에 걸맞은 수수한 옷을 즐겨 입었다. 아니 평소 옷차림엔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는 편이었다. 검소함이 몸에 밴 그는 트렌치코트 한 벌을 사도 보통 10년 넘게 입었다. 구두에 얽힌 일화는 유명하다. 유난히 발이 커서 구두를 맞춰 신어야 했던 그는 가죽이 닳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었다. 그가 남긴 사진첩을 보면 정주영은 대개 점퍼 차림을 하고 있다. 양복보다는 점퍼가 훨씬 더 편해 보일 정도다. 그래서인지 그의 옷차림과 인상은 언제나 조금 헐렁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반면에 이병철은 크지 않은 체격에 호리호리한 편이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군살이 없고 윤곽이 갸름한 데다, 얼굴 곳곳엔 젊은 시절부터 주름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주름살은 결코 밉살스럽지 않을뿐더러, 아무에게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눈언저리에 있는 잔주름은 그의 지성과 품위를 드러내는 ‘황금 주름살’같은 것이었다. 더욱이 그의 이목구비는 조금도 하자가 없었다. 영화배우처럼 조각 같은 얼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목조목 뜯어봐도 좀처럼 흠잡을 데가 없는 그런 얼굴이라는 뜻이다.

우선 그의 눈매는 크거나 가늘지 않고, 늘 예리하고 깊숙한 시선을 담고 있다. 오뚝한 코는 갸름한 얼굴과 조화를 이뤄 사뭇 지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입은 얼굴 윤곽에 비해 다소 큰 편이지만 입술이 얇으면서도 가지런하다. 헤어스타일은 흰머리가 제법 희끗희끗 섞여 있긴 하지만 한 올도 흐트러짐이라곤 없이 말끔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그가 늘 단정한 사람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옷차림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언제나 정장 차림을 한 이병철의 단정함은 무엇보다 바지 길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알맞은 바지 길이는 구두 위를 다 덮지도, 발목이 보일 만큼 짧지도 않았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정장 차림에서 바지 길이는 매우 중요한 몫을 한다. 바지 길이에 따라 정장의 맵시 전체가 크게 달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이병철은 바지 주름을 항상 날이 선 일자 모양으로 유지하고, 품 또한 꼭 들어맞게 입었다. 매우 절제된 식단으로 소식을 한 결과 중년의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데다, 이같이 항상 단정한 옷차림으로 빈틈없고 깐깐한 인상을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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