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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영화 ‘청포도사탕’ 주연 박진희

“모범생 같다고요? 저도 한때 일탈해봤어요”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감성 영화 ‘청포도사탕’ 주연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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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글 쓰는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파
  • ● 한때 깊어지던 우울증, 명상으로 극복
  • ● 20대 중반 성장통 겪으며 자아 성숙
  • ● 술은 현재진행형, 담배는 과거형
  • ● “똑 부러져 보이지만 실수 많은 덜렁이에요”
감성 영화 ‘청포도사탕’ 주연 박진희
배우 박진희(34)를 만난 건 8월 21일 오후 6시 서울 왕십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였다. 마침 이날 오전에는 그가 출연한 영화 ‘청포도사탕’ 시사회가 열려 인터뷰를 하기 전에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스크린 나들이는 ‘친정엄마’ 이후 2년 만인 데다 그가 맡은 여주인공 선주는 밝고 씩씩한 기존의 이미지와 상반된 캐릭터라 여느 때보다 더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극 중에서 박진희는 결혼을 앞둔 은행원 선주로 등장한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삶이지만 선주에겐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다. 누구에게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한 17년 전의 그 상처는 어린 시절 친구 소영(박지윤 분)과 재회하면서 되살아나고 선주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자아를 찾아간다.

전체적으로 전개가 빠른 작품은 아니지만 선주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만큼 팽팽하게 이어졌다. 인간의 고뇌를 섬세하게 건드리는 박진희의 내면 연기는 그중에서도 백미로 꼽을 만했다. 특히 과거의 진실과 맞닥뜨리는 게 두려워 옛일을 파헤치는 소영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이나, 소영을 가이드하기로 한 사실을 숨기고 다른 일로 출장 가는 것처럼 속이는 남자친구의 거짓말을 태연하게 받아주는 장면에서는 객석에서 욕설이 튀어나올 정도로 영화에 몰입하게 했다.

그로부터 여섯 시간이 지나 박진희를 만났을 때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박진희가 선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영화 찍으며 위로받은 느낌”

▼ 선주는 왜 거짓말하는 애인에게 아무 말도 못한 건가요?

“화낼만한 지점들이 있지만 선주는 대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제게도 비슷한 면이 있었어요. 연인과 문제가 있어도 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참는 게 둘 관계에서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에요.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설령 부끄러운 일일지라도요. 그래야 관계가 더 오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 그런 깨달음을 얻은 계기가 있었나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했어요.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 마냥 참는 것이 누군가를 오래 만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요. 그렇다고 아무 때나 화내진 않아요. 화낼만한 일이면 한두 번은 참지만 그게 쌓이면 어느 순간 폭발하더라고요. 요즘은 폭발하기 전에 평정심을 찾으려고 해요. 그게 최선이죠.”

▼ 극 중 배역에 너무 몰입하면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다던데 어땠나요?

“촬영 후반부에 선주 아파트에서 여러 신을 찍었는데 중요한 장면이 많았어요. 그걸 다 찍고 새벽 4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헛헛해서 감독님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선주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아쉽고 마음이 먹먹하고 그렇다고요. 감독님도 저랑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하시더라고요.”

▼ 영화 말미에 애인에게 이별을 고할 때 기분이 어떻던가요?

“마음이 정화된 듯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꼈어요. 전 우리 영화가 서른 살에 성장통을 겪는 선주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성장통을 겪는 과정에서 소라가 17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선주에게 자꾸 일깨워주는데, 선주는 그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렸거든요. 억지로 잊었겠죠. 두려움이나 충격이 너무 크면 회피하고 부정하게 되잖아요. 어느 순간에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믿게 되고요. 선주는 어릴 적 친구 소라를 만나면서 17년 동안 잊고 살았던 열세 살 때의 아픈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다시 한 번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느껴요. 아픈 만큼 한 단계 성숙하게 되고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저도 위로받는 느낌이었고 한 단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선주처럼 친구 때문에 아파본 경험이 있나요?

“그럼요. 스무 살에 연기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 때문에 한 번씩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잖아요. 저도 그런 적이 있죠. 중고교를 같이 다닌 절친한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뒤로 연락이 끊겼어요. 학창시절에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있는데 그 무리하고도 연락을 끊었고요. 그땐 어렸기 때문에 ‘사랑하는 친구니까 이해해야지’ 그런 좋은 시선으로 보지 못했어요. ‘어떻게 남자 때문에 연락을 끊을 수 있지?’ 하는 배신감이 들었어요. 내 친구를 남자친구한테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요. ‘네가 연락을 끊어? 나도 끊는다!’ 하고 지내다 3년 만에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어요. 강남 신사동 길에서요. 멀찍이서 걸어오는 그 친구를 한눈에 알아보겠더라고요. 근데 연락이 끊겼을 때처럼 미운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년 동안 제 마음의 키도 자랐을 거고, 너무 좋아했던 친구이기도 해서 서로 웃으며 재회했죠. 그 뒤로 다시 친해져서 자주 만나요. 그 친구는 결국 남자친구랑 결혼해서 잘살고 있어요. 얼마 전에 둘째 낳아서 보러 갔다 왔어요.”

▼ 친구를 사귀면 오래가나요?

“좀 오래 사귀는 편인 것 같아요. 지금도 만나는 학창시절 친구가 예닐곱 명은 되는데 한 명은 초등학교 때 친구고, 나머지는 다 중학교 때 친구예요. 사회생활 하면 친구가 많이 생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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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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