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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해 위안소에 넣었다”

위안부 강제동원 자료 공개 정진성 서울대 교수

  • 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일본군은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해 위안소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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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인이 (군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어려운 시절 성매매는 매우 이익이 남는 장사”라고 한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 도쿄도지사의 발언이 국민적인 분노를 사고 있다. 1990년대부터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온 정진성 교수는 “위안부 강제동원은 역사적인 사실”이라며 미국·네덜란드 등의 국가기록보관소에서 찾은 비밀문서들을 공개했다.
“일본군은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해 위안소에 넣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하루빨리 그동안 일본이 숨겨온 문서가 실제로 공개되기를 바랍니다.”

10월 11일 일본 도쿄지방법원이 일본 정부를 향해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의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데 대해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59)가 한 말이다. 그는 “환영할 일이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등이 2006년부터 잇달아 제기해온 정보공개 소송에 따른 것. 일본 정부는 원칙적으로 작성 후 30년이 지난 문서는 공개한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 각종 현안이 담긴 한일회담 관련 문서는 국익 등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해왔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틈날 때마다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니 기가 막힌 일”이라며 “숨길 게 없다면 판결에 따라 당당하게 자료를 공개하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일본 정치인은 일본군위안부 관련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8월 21일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 있다면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는 발언이다. 3일 뒤인 24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또 한 번 “일본인이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어려운 시절 성매매는 매우 이익이 남는 장사”라고 했다. 다시 3일 뒤인 27일엔 마쓰바라 진 당시 국가공안위원장이 나서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직접적인 기술이 발견되지 않았다. 각료들 간에 (고노 담화의 수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처음 제기됐을 때부터 관련 연구와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정 교수는 “이런 발언 뒤에는 일본 측 관련 문서가 공개될 리 없다는 자신감이 숨어 있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일본군은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소각했다. 현재 남은 문서는 일본 정부가 꽁꽁 숨겨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군이 물리력을 동원해 위안부를 강제 모집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자료 보관소를 뒤지며, 모래 속의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발굴해낸 자료들이지요.”

정 교수는 2007년 네덜란드 정부기록물보존소에서 찾아낸 네덜란드 정보부대 문서 ‘일본 해군 점령기 동안 네덜란드령 동인도 서보르네오에서 발생한 강제 성매매에 대한 보고서(Report on enfor-ced prostitution in Western Borneo, N.E.I. during Japanese Naval Occupation)’를 공개했다. 당시 정 교수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관련 문제를 조사한 재미언론인 한우성 씨가 발굴한 이 문서(문서번호 5309)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서보르네오에서 벌어진 일본 군인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매우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일본 해군 특경대(特警隊)가 위안부 조달책임을 맡고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했으며, 강제적으로 신체검사를 받게 한 후 위안소에 넣었다. 여성이 위안소에서 탈출할 경우 가족을 체포해 학대했으며, 심지어 살해한 경우도 있다”는 내용이다. (문서 1)

“일본군은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해 위안소에 넣었다”
네덜란드 정보부대 문서 5309

한국 여성이 강제적인 방식으로 위안부가 됐음을 기록한 자료도 있다. 역시 정 교수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온 장태한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2002년 미국연방정부기록물보존소(NARA)에서 찾아낸 ‘쿤밍의 한국인·일본인 전쟁 포로(Korean and Japanese prisoners of war in Kunming)’다. 1945년 4월 28일 중국 쿤밍지역에서 미군에 의해 작성된 이 문서(문서명 Kunming-REG-OP-3)는 중국 쿤밍의 중국군 본부에 있는 한국인 여성 23명에 대해 “모두 강제와 사기에 의해 위안부가 됐다”고 기록했다. (문서 2)

2007년 일본 학자들이 찾아내 공개한 도쿄 극동국제군사재판 기록도 있다. 이 재판에는 연합군이 중국과 인도네시아·베트남 등에서 조사한 일본군위안부 강제연행 사건 자료가 제출됐다. 그중 네덜란드 정보부대가 1946년 일본군 중위 오하라 세이다이를 심문해 작성한 ‘오하라 세이다이 중위 진술서(statement by Lt. Ohara Seidai)’에는 “나는 1944년 9월 인도네시아 모아 섬에 군인들을 위해 위안소를 만들었다. … 5명의 여성을 강제동원했다. 그들의 아버지가 폭동을 일으킨데 대한 처벌이었다”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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