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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금도 그렇죠, 장발장처럼…”

‘지강헌 인질사건’ 마지막 생존자 강영일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금도 그렇죠, 장발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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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년 복역 후 만기출소…“그땐 잡히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
  • ● “‘조건부 변호사’ 고용하면 형기 줄어드는 세태에 분노”
  • ● “비행청소년, 장기수 자녀 도우며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 ● 2월 말 채널A 회상다큐 ‘그때 그 사람’ 강 씨 스토리 방영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금도 그렇죠, 장발장처럼…”
‘지강헌’이란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서울올림픽의 여흥이 채 가시지 않은 1988년 10월, 지강헌을 포함한 12명의 미결수가 호송 중 탈주해 서울시내 가정집을 돌며 인질극을 벌이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마지막 남은 4명의 탈주범은 북가좌동 가정집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2명은 자살하고 지강헌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가 강영일(46) 씨다. 19년형을 마치고 6년 전 출소한 그를 만났다.

“우선 커피나 한잔 하자”는 말에 그는 “우유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26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TV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된 사건 현장에서 그는 동생이 사온 빙그레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며 고함을 질러댔다. 술에 취했는지 눈빛은 흐렸고, 불안과 초조함이 스물 한 살의 청년을 짓누르던 모습. 4시간의 인터뷰 후 우유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징역만 오래 살아서 귀가 얇은데, 책에서 보니 우유가 완전식품이라서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종합편성방송 채널A가 대한민국 과거 그 시절과 사람을 재조명하는 회상다큐멘터리 ‘그때 그 사람’을 선보인다. 2월 말로 예정된 첫 방송에서 ‘지강헌 인질사건’과 강영일 씨를 다룰 예정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출소 후 6년간 두문불출하던 강 씨를 설득하는 데 두어 달이 걸렸다고 한다.

▼ 출소 후 어떻게 지냈습니까.

“신학대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노가다도 하고 식당 일도 하고. 냉온수기 소독, 안경알 배달 일도 했고 인사동에서 액세서리를 판 적도 있어요. 겨울엔 군고구마, 여름엔 아이스크림 장사도 했고요. 근데 아르바이트로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서 3학년 때 학교 그만두고 돈을 벌려고 했는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퇴행성 디스크라고….”

▼ 직장을 가지려고 한 적은 없나요.

“제가 미싱 기술이 있거든요. 봉제공장에 취직하려고 했어요. 굳이 전과 숨기기 싫어서 오픈하면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하더라고요. 근데 다음에 연락 주는 일은 없잖아요. 뭐 그렇죠. 아직은.”

▼ 다큐 출연을 결심한 계기는.

“출소한 지 얼마 안 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범법자가 떳떳한 것 같은 뉘앙스로 기사가 나갔어요. 이후엔 인터뷰를 일절 안 했어요. 그리고 신학대도 포기한 상태라 내세울 게 없어 망설였어요. 하지만 순열이 형이 계속 골방 노인처럼 지내지 말고 뭔가 반전할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해줬어요. 고민 끝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번 해보자’ 했습니다.”

순열이 형은 이순열 현진시네마 대표다. 그는 2006년 지강헌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홀리데이’를 제작했다. 그 인연으로 둘은 형 동생 사이로 지낸다고 한다.

다시 찾은 북가좌동

탈주 8일째인 1988년 10월 15일 밤, 지강헌 강영일 한의철 안광술은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모 씨의 가정집을 침입, 다섯 번째 은신처로 삼는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고 씨가 몰래 빠져나가 신고함으로써 경찰의 포위망에 둘러싸였다. 집 안에는 고 씨 부인과 4명의 딸, 막내아들이 남은 상황. 정오 무렵 일당은 고 씨 부인과 막내아들을 풀어주며 도주를 위한 봉고차를 요구했고, 봉고차를 구하러 강영일이 셋째 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 사이 한의철 안광술은 지강헌에게서 총을 빼앗아 자살한다. 이어 지강헌이 경찰이 쏜 총에 맞음으로써 9일에 걸친 도주는 끝이 났다.

북가좌동 집은 사건 이듬해인 1989년 2월 재단법인 교정협회에 매매됐다. 아무도 이 집에 살려고 하지 않아 교정협회가 인수한 뒤 현재까지 지방 교도관 자녀들의 기숙사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강 씨는 얼마 전 제작진과 함께 이 북가좌동 집에 다녀왔다. 그는 “고 씨네 집과 그 건너 수사본부가 차려졌던 집 두 개만 기억나더라”고 했다.

▼ 다시 가보니 어떻던가요.

“그간 가보고 싶어도 맘 아플까봐 못 갔어요.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거, 친구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제가 ‘실패하면 무조건 죽는 거다’라고 철이와 광술이를 세뇌시킨 건지도 몰라요. 지금은 40, 50대도 한창때지만 그땐 마흔 넘으면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어요. 도주죄까지 형을 살고 나오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겼어요.”

▼ 인질로 딸들을 잡고 있었죠.

“특히 둘째와 넷째 딸에게 미안해서…. 철이와 광술이가 그 아이들 앞에서 자살했거든요. 저도 한동안 선잠만 들어도 애들이 꿈에 나와 ‘야, 뭐해? 빨리 와, 가자’ 그랬거든요. 근데 죽는 걸 봤으니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컸을까 싶어요.

큰딸은 여걸이었어요. 그날 직장에서 회식이 있어 늦게 들어왔는데, 대뜸 우리한테 한 말이 ‘잘 왔어요’였어요. 회식하면서 ‘탈주범들이 왜 우리 집엔 안 올까’ 농담했대요. 아버지가 신고한 후에도 ‘정말 죄송하다. 하루이틀 편하게 있다 가시면 좋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고요. 우릴 자극하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상황 판단도 빨랐고 대처도 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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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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