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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배우로 돌아온 원조 섹시 아이콘 안소영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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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장 없는 말 타다 하혈…팔당호에 빠져 죽을 뻔도
  • ● ‘왕대빵 가슴’ 글래머? 감독이 부풀린 환상!
  • ● 결혼 생각 없었지만 아이 낳고 싶었다
  • ● 사람에 상처 받고, 영화에 환멸 느껴 미국행
  • ● 동남아서 찍은 인어 화보, 할머니 되면 전시할 것
“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북한 김정일이 왜 못 쳐들어온 줄 아세요? 중학교 일진들이 무서워서래요(웃음).”

3월 12일 오전,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을 찾은 배우 안소영(54·본명 안기자)은 첫 만남의 어색함을 유머로 날려버렸다. 1982년 ‘애마부인’으로 에로영화 전성시대를 연 그의 눈가와 목에는 어느덧 나이테 같은 주름이 살짝 패었지만 몸매는 세월을 비껴간 듯 늘씬했다.

“안 보이는 곳에 군살이 많이 붙었어요, 운동을 안 해서. 아이 낳고 뱃살 붙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 근데 전신을 꼭 찍어야 하나? 난 얼굴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처음엔 카메라 앞에 서기를 주저하던 그는 플래시가 터지자 표정이 이내 환해졌다. 올림머리에 주홍색 원피스 차림의 그에게선 부잣집 마나님 같은 기품이 흘러나오나 싶다가 왕년의 섹시미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유난히 긴 팔다리의 움직임이 요염한 매력을 더했다. 그는 “실제로는 체구가 아담한데 그에 비해 가슴이 크고 팔다리가 긴 체형이라 키 큰 글래머인 줄 알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가 ‘신동아’ 1월호 ‘한국 여배우 열전’에 소개된 후 공중파방송은 물론 채널A 교양프로그램 ‘그때 그사람’에서도 그를 새롭게 조명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나 잊힌 유명 스타와 함께 추억을 좇는 ‘그때 그 사람’은 1980년대 섹시 아이콘이었던 그의 배우 인생을 다큐 형식으로 방송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살이 찢겨도 아픈 줄 몰랐다”

▼ ‘애마부인’ 찍다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겼다면서요.

“우리 때는 뭐든 배우가 직접 해야 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더구나 ‘애마부인’은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라 촬영 여건이 아주 열악했죠. 초보 운전자일 때 촬영장에 차를 몰고 가다 팔당호에 빠져 죽을 뻔했어요. 압권은 한겨울에 비 맞는 장면이었죠. 몇 번이나 기절하면서 찍었거든요. 안장 없는 말을 타다 하혈을 하기도 했고….”

▼ 안장이 없으면 위험하잖아요.

“안장 없는 말에, 그것도 알몸으로 탔으니 충격이 더했죠. 그때는 그림이 되는 거면 뭐든 배우가 욕심을 부려야 됐어요. 하혈을 해도 응급조치 같은 건 바랄 수도 없었고.”

“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애마부인’으로 1980년대 섹시 아이콘이 된 안소영.

▼ 팔당호에는 어쩌다 빠졌나요.

“길이 울퉁불퉁했어요. 동료배우 하재영 씨가 뒷자리에서 기아 넣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길을 지나던 남학생을 보고 핸들을 확 돌려버렸어요. 차가 팔당호로 미끄러졌는데, 앞 유리가 깨지지 않았다면 저도 하재영 씨도 살아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호수에 여자 옷이 둥둥 떠다녀서 스태프들은 제가 죽은 줄 알았대요.”

그거야 우발적인 사고지만, 한겨울에 비를 뿌려 여배우가 기절한 것은 인재(人災)였다. 물을 뿌리자마자 얼어붙는 영하 20도였고 그는 란제리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었다. 하도 추워서 제작진조차 촬영을 꺼렸지만 정인엽 감독은 강행했다. 안소영은 “제작비 문제와 여러 사정으로 촬영팀이 철수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건 알았지만, 물줄기가 나무에 닿는 순간 고드름이 되는 날씨라 몸에 비처럼 물을 뿌릴 때마다 살이 쫙쫙 갈라졌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날이 워낙 추우니 살이 찢어져도 아픈 줄을 몰랐어요. 밤새 촬영하면서 한 컷 찍고 까무러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어요. 알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영화가 대박 안 났으면 감독님과는 정말 원수가 됐을 거예요.”

‘애마부인’은 1982년 31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흥행 1위에 올랐다. 필름 영사기를 쓰던 시절이라 서울극장 한 곳에서 개봉해 얻은 성과였다. 영화의 인기는 신드롬에 가까웠다. 지금처럼 수백 곳에서 동시 개봉했다면 1000만 고지도 돌파할 기세였다. 안소영은 “그 작품이 개봉한 1982년에 통행금지가 풀려 심야에도 관객이 끊이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실제론 야한 영화 아닌데…”

▼ ‘애마부인’이 에로영화라는 건 사전에 알았나요.

“그때는 외국 영화에나 그런 장르가 있었지, 우리나라에서는 ‘에로’라는 말도 잘 안 쓰던 시절이었어요. ‘에로’는 에로 비디오가 나오면서 생겨난 말이죠.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어! 색다르다, 재밌겠다’ 싶었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에로물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원작도 페미니스트를 겨낭한 작품이고요. ‘애마부인’은 실제로 보면 안 야해요. 감독이 ‘엠마뉴엘 부인’에 필적할 만한 작품으로 선전하면서 ‘에로티시즘’을 갖다 붙여 야한 영화의 대명사가 된 거예요.”

▼ 정사신이 있잖아요.

“나오긴 하지만 에로라고 표현할 만큼 노골적이진 않아요. 가장 야한 장면이 아무것도 안 걸치고 안장 없는 말을 타는 정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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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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