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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스토리

“나는 오늘도 도전을 갈망한다”

美 IT벤처 신화 이수동 STG그룹 회장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나는 오늘도 도전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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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직원 1700명, 연 매출 3억 달러…美 IT업계 76위
  • ● 국무부 등 26개 연방정부기관 IT 프로그램 운영
  • ● 국가 기여 이민자 대상 ‘엘리스 아일랜드상’ 수상
  • ● “직원처럼 일하지 말고 오너처럼 생각하라”
“나는 오늘도 도전을 갈망한다”
STG그룹은 미국 연방정부의 정보기술(IT) 서비스와 컴퓨터 시스템 보안 분야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IT 솔루션 기업이다. 이 회사를 이끄는 이수동(64·미국명 사이먼 리) 회장은 30세 때 미국으로 이민, 식당 경리에서 시작해 굴지의 IT 벤처기업을 일궈낸 입지전적 인물로 손꼽힌다.

그가 5월 2일 고려대에서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는 “투철한 기업가 정신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미국 사회 내에서 각종 기업인상을 받는 등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자 21세기 인류 사회에 큰 기여를 한 공로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각종 강연과 행사 초청으로 한국에서의 일정을 바쁘게 소화하고 있는 그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식당 경리에서 그룹 회장으로

“올해는 제가 고려대를 졸업한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모교로부터 명예박사라는 과분한 선물을 받아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강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앞으로 경영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달라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학위에 보답하기 위해 차세대 글로벌 리더 육성에 지속적으로 관심 가질 계획입니다. 또한 새롭게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STG그룹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직원 1700명, 연 매출은 3억 달러 정도 됩니다. 지난해 미국 전체 IT 기업 중에서 76위를 차지했습니다. 5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1위는 록히드마틴, 2위는 보잉, 3위가 IBM이었습니다.”

▼ 주로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요.

“주요 사업 분야는 미국 비자 시스템, 전산망 관리, 통합 IT 솔루션, 재무·재정관리 등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입니다. 미 국무부, 국방부, 외무부, 정보부 등 26개 연방정부 기관이 우리 회사 주요 고객입니다. 이들 기관은 미국 내에서도 최고 보안을 요구하는 곳이라 사이버보안 관리도 주요 업무입니다. 비자 시스템과 관련해서는 미국 50개 주는 물론 전 세계 250여 개 미 대사관 및 영사관에서 우리 직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1949년 경북 구미 선산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이듬해 터진 6·25전쟁 중에 아버지와 두 형님, 누님을 잃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어렵게 공부한 끝에 고려대를 졸업, 1975년 당시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런데 1979년 서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나와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모험을 단행한다.

“그전에 처남 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거기서 자리를 잡자 장인, 장모와 형제들을 다 초청한 거예요. 한국에 아내만 남는 상황이 되자 ‘우리도 미국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제가 안 된다고 했으면 아내는 밤마다 눈물로 지새웠을 거예요(웃음). 아내의 요구도 있었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더 큰 세상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한국에서 베이직 프로그램을 다룬 경험을 활용해 식당 경리로 취직, 전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을 인정받아 부지배인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취직한 지 1년도 안 돼 식당이 망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이민 오기 전에도 비자가 금세 나올 줄 알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가 비자 발급이 늦어져 1년 넘게 놀았어요. 정말 힘들었죠. 그때 인생이 뭔지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두 번째 실업자가 됐을 때는 빨리 대응할 수 있었죠.”

컴퓨터 프로그래머 보조로 취직했다. 하지만 어깨너머로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언제까지 조수로 살 순 없다는 생각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보조로 일하면서 밤에는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주니어 프로그래머로 취업해 경력을 쌓은 그는 미국 3대 통신사인 MCI에 수석 프로그래머로 스카우트됐다. 이곳에서도 그는 4년 연속 최우수 사원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다른 직원들은 하루 종일 일할 분량을 그는 4시간 만에 해치웠다. 입사 5년 만에 연봉 8만 달러의 기술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언제나 열정을 갖고 일했어요. 늘 목표를 상향해서 달성하려는 욕심이 강했죠. 그 결과 인정받는 직원이 됐지만, 그럴수록 제 능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커져갔어요. ‘내 사업’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린 거죠.”

역발상이 일으킨 기적

마침 회사에서 데이터 처리를 맡길 하도급 업체를 구하고 있었다. 독립을 결심하고, 1986년 집 차고에 책상 하나를 두고 1인 기업 STG를 창업했다. 낮에는 MCI에서 일하고, 밤에는 STG에서 일했다.

“MCI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어 회사는 안정적으로 성장해갔어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하도급 업체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잖아요. 변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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