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호

“우리가 햇볕정책 아류? 거북하되 적절한 표현”

통일·외교·안보通 길정우의 ‘내가 본 박근혜와 북한’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입력2013-05-23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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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햇볕정책 아류? 거북하되 적절한 표현”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캠프 통일외교안보팀에서 활약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 한기범 국가정보원 1차장, 백승주 국방부 차관, 홍영표 대통령통일비서관이 이 팀에 속했다. 최대석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이 좌장 혹은 간사 격이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틀을 짰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4·11 총선 때 길 의원을 두고 “통일·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다. 꽉 막힌 남북 문제와 핵 문제를 풀려면 길 후보 같은 인물이 국회에 들어가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길 의원은 남북관계를 들여다보는 박 대통령의 시각,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인사 중 하나다. 국회의원 신분인 터라 장관, 차관을 맡은 이들보다 발언도 자유롭다. 5월 6일과 11일 길 의원을 만나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관(觀), 남북관계 현안 및 해법,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조와 방향 등에 대해 들었다.

    길 의원은 “박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소명의식을 가진 현실주의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박 대통령 본인의 비전”이라면서 “새로운 한반도 건설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같은 것으로 박 대통령이 가슴 벅차게 이루고 싶어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의 선(先) 핵 포기를 전제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어떤 전제를 남북관계의 조건으로 삼아선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덧붙였다.

    “시나리오別로 연습했던 것”

    그는 또 “박 대통령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게 통일·안보 분야”라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차이는 남북관계의 장래에 대해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느냐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 강경 대(對) 강경 상황은 후보 시절부터 시나리오별(別)로 연습이 돼 있던 사안이다. 대화 국면에서 이니셔티브를 쥐는 방안과 관련해서도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햇볕정책의 아류’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거북하지만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명박 정부 식으로 북한을 몰아세워 굴복하게끔 하는 정책은 지금 상황에서는 위험한 데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가 북한에 가 남북관계와 관련한 대통령의 비전을 설명해줘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대화 채널이 없는 비정상적 상황이 이어지면 박 대통령의 비전, 구상이 바깥의 힘에 의해 휘둘릴 소지가 커진다”고 우려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월 7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과 오찬회담을 열고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평양에 보냈습니다. 북한도 두 정상이 내놓을 메시지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텐데요. 유화책을 기대하던 평양이 실망했을 것도 같습니다.

    “북한이 예상했던 수준이 아니었나 싶어요. 평양이 한미 양국의 자세에서 큰 전환을 기대했다면 그건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꾸준히 위협 수위를 높여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이 만나 유화책으로 돌아선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일이죠. 평양은 ‘한미가 얼마나 강경한 어조로 나올까?’를 들여다봤겠죠. 보기 나름인데요. 언론은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고 보도했지만, 이제껏 말해왔던 것처럼 ‘도발엔 강력히 대응하겠다. 다만, 대화의 기회는 항상 열려 있다’는 거였잖아요. 평양이 한미가 압박 수준을 더 높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지 않았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북한으로서도 크게 실망할 게 없는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남측 인원을 철수시키는 ‘중대 조치’를 내놓은 것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박 대통령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물론 제가 참모였다면 그렇게 권하진 않았겠지만요. 잘못된 결정은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의 버릇을 고쳐준다든지 이런 의도에서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성 대통령이라고 해서 나약한 지도자로 봐서는 안 된다는 시그널을 북한에 전해준 부분도 있고요. 북한도 중대 조치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메시지를 알아차렸을 거예요. 전기를 끊는다거나 물을 끊는다거나 하는 것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개성공단 문제를 어떻게든 일단락을 지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그래야만 정상회담 때 나오는 메시지의 단호함이 살아나거든요. 실무자들이 그러한 계산도 했을 거라고 봐요. 또한 중대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갑자기 위기가 고조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도 했겠죠.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는 본때를 보여주는 수단이면서도 리스크는 작은 것이었고요.”

    ▼ 개성공단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중대조치를 앞두고 북한이 내놓은 성명을 보면 대화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도 그간 위협을 고조시키면서 내놓은 성명보다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흥미롭더군요.

    “북한이 이따금 그럴 때가 있어요. 좀 유치한 거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거 같아요. 언론도 ‘북한이 위협 수준을 낮추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의 표현 아니냐’는 식으로 기사를 썼던데요. 평양 처지에서 보면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고 끝난 정상회담이 아니었나 싶어요.”

    “판가리 대전? 北, 무리수 둔 것”

    ▼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의 새 정부 길들이기 혹은 ‘판가리 대전’(‘판가리’는 ‘판가름’의 북한식 표현)을 벌인 것이라고 분석합니다만….

    “북한이 진정으로 판가리를 기대했다면 위협 수준을 그런 식으로 무작정 올려서는 안 되는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이 부드러워지면 위협에 대한 굴복이 되는 겁니다. 북한이 그런 것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무리죠.”

    ▼ 북한이 왜 그렇게 설쳐댔다고 봅니까.

    “북한으로서도 상당한 무리수를 둔 거예요.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는 매년 이뤄지는 것인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강경한 위협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가진 군사적, 경제적 자원을 엄청나게 소비 혹은 소모했거든요.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아직도 본인이 기대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은 게 아닌가, 그렇게밖에는 해석이 안 돼요. 본인의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둔 것 같습니다.”

    ▼ 박 대통령이 대북 정책 골간을 짤 때 지금과 같은 상황도 상정했는지 궁금합니다.

    “강경 대 강경으로 가는 상황은 엑서사이즈(exercise·기량을 닦기 위한 연습)를 많이 해본 거거든요.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검토했습니다. 북한이 독특한 체제이기는 하지만 준비 안 된 3세대 지도자가 짧은 시간 안에 당과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봤습니다. 위기에 대응한 뒤 대화의 국면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어떻게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풀어가면서 이니셔티브를 잡느냐를 두고도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先 핵 포기 요구하지 않는 정책

    ▼ 대화 국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북한을 다룰지도 구상이 마련돼 있고요?

    “우리가 원하는 상승 국면으로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우리의 제일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일종의 비전입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많은 이가 답을 잘 못하더라고요.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그렇고요. 명쾌하게 설명하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지도자의 비전입니다. 한반도의 장래와 관련한 박 대통령 본인의 비전을 가리키는 거예요. ‘남북 간 신뢰가 최저 수준에 있는데 이 상태로 놔둬선 우리가 원하는 남북관계의 장을 만들 수 없다. 그러려면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언론에서는 신뢰에만 주목하는데, 신뢰를 쌓아가는 것은 프로세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신뢰 프로세스는 생물(生物)과도 같은 거예요. 그러한 과정을 거쳐 신뢰를 축적해야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신뢰를 구축해가면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꾸준히 진전시키는 게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입니다.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거대한 비전인 거예요.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트고 그것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고 남북 간 협력을 통해 상생의 기조로 간다는 것이죠.”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선(先) 핵 포기, 후(後) 대화’를 강조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다른 겁니까.

    “남북관계 개선과 핵 문제 해결을 병행하겠다는 겁니다. 핵 문제 해결을 우선한다는 게 허망하다는 것을 20년의 노력을 통해 확인했잖아요. ‘비핵화 과정, 남북관계 개선 과정이 함께 간다. 안보 문제와 경제 관계를 병행해서 풀어간다’는 겁니다. 그 밑바닥에는 (쌀, 비료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통해 물꼬를 튼다는 게 있고요. 저는 명확하게 앞으로의 방향이 그려집니다.”

    ▼ 박 대통령도 그렇게 인식하는 거고요?

    “늘 병행한다, 어떤 전제를 조건으로 삼은 남북관계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 이명박 정부는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을 들었는데요.

    “개인적으로 남북관계에 있어 과거 지도자를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래도 그 나름의 철학을 갖고 이끌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명박 정부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박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차이는 남북관계 장래에 대해 고민, 다시 말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에 있다고 봅니다. 철학이라고 할까요. 박 대통령은 철학이 받쳐주는 덕분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잔잔하지만 꾸준히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엮어 동북아 판 짜야”

    ▼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 당국자로 일한 한 인사는 사석에서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안보라인을 ‘약체’ ‘햇볕정책 아류’라고 평가하던데요.

    “그분이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요. ‘햇볕정책의 아류’라는 표현도 적절하다고 봅니다.”

    ▼ 적절하다고요?

    “저 같은 사람이 햇볕정책 아류죠.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팀이 2년여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어서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조금 더 보수적인 분도 있고 반대인 분도 있지만 토론을 거치면서 비슷비슷해졌습니다. 그분들의 생각을 햇볕정책 아류라고 한 것은 거북한 용어지만, 햇볕정책이라는 게 ‘인게이지먼트 폴리시(engagement policy)’잖아요. 포용정책, 관여정책으로 번역되지만 두 표현이 적확하지는 않습니다. 포용이나 관여와 engagement는 뉘앙스가 달라요. engagement는 접촉의 면을 넓혀가는 겁니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게 아니라 엮어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engagement 정책을 햇볕정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햇볕정책의 아류죠.”

    “우리가 햇볕정책 아류? 거북하되 적절한 표현”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이던 지난해 7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육군 부대를 방문해 망원경으로 북측을 살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 후 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 북한을 몰아세워 굴복하게끔 한 후 따라오게 하는 것도 유효한 정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그랬는데요. 그 논리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먹힐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꾸준히 갈 수 있으면 성과는 비슷하리라고 봐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과거와 다르게 위험하다는 거죠. 예컨대 2000년대 초 2차 핵 위기가 일어났을 때 그렇게 쭉 밀어붙였으면 성과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서 비롯한 2차 핵 위기는 2005년 6자회담 9·19 합의로 일시적으로 봉합됐다.

    “북한이 갖고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 수준이 지금에 훨씬 못 미치던 노무현 정부 때 이명박 정부처럼 강경 일변도 정책을 취했다면 먹힐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하기에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보면 ‘강공으로 밀어붙일 거면 계속 뚝심 있게 밀어붙여라, 왜 밀어붙일 듯하다가 머뭇머뭇하느냐’는 식으로 여길 것 같아요.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명박 정부 스타일의 정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미국이나 중국도 한국이 그런 식의 강경 일변도로 가는 것을 좌시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I have a dream’의 단호함

    북한은 개혁·개방이라는 낱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대신 ‘개건’ ‘개선’이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 박 대통령이 개혁·개방이라는 단어를 안 쓰던데,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 건가요.

    “개혁·개방이 우리가 상대에게 강요해서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박 대통령께서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죠.”

    ▼ 그래서 ‘올바른 길’ ‘올바른 선택’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변화하면’ 같은 표현을 쓰는 거군요.

    “그렇죠. 편안한 용어, 보통의 형용사를 많이 사용하니 모호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러한 표현이 남북관계에서 해석의 여지를 넓게 가져갈 수 있거든요.”

    ▼ 그러한 수사(修辭)도 모두 의도된 것이네요.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부분이에요. 전문가들과의 소통, 상호작용에 의한 훈련을 굉장히 많이 한 분이에요. 적절한 용어를 그간의 과정을 거쳐 찾아낸 겁니다. 알맞은 표현을 사용해 이런저런 해석의 여지를 남기면서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 언젠가 해봤던 것처럼 굉장히 익숙해 보이지 않습니까? 박 대통령이 내놓은 어젠다 중 제일 편안하게 여기는 이슈가 안보 문제예요. 남북 문제와 대외관계가 본인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입니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보면 이 분야 토론 때 가장 말씀을 많이 합니다. 가장 자신 있다고 여기는 분야거든요.”

    ▼ 식견은 어떻습니까.

    “박 대통령이 유럽의 다자안보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 프로세스(동북아평화협력구상)는 사실 헬싱키 프로세스에서 따온 말이에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그렇고요. 트러스트폴리틱(Trustpolitik·신뢰외교)을 말씀하실 때 ‘아 이게, 현실정치에서?’싶었어요. 그런데 박 대통령 스타일을 알기에 이해가 되더라고요.”

    박 대통령은 2011년 8월 23일 미국의 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새로운 한반도를 향하여(A New Kind of Korea)’를 통해 통일외교안보정책 구상을 제시했다. 기고문의 뼈대를 이루는 키워드가 신뢰외교(Trustpolitik)와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이다. 두 키워드는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신뢰와도 일맥상통한다.

    “기고문에서 중요한 대목이 트러스트폴리틱과 새로운 한반도의 건설, 그러니까 A new kind of Korea예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뭐냐고 물어보는데, 한마디로 새로운 한반도를 건설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꿈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것을 동북아 지역으로 확산하는 게 서울 프로세스고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남북 간 상생과 공생의 분위기를 만든 다음 그것을 동북아 지역으로 확대하는 겁니다.”

    ▼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느껴지는데요.

    “아니요. 굉장히 리얼리스트죠.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다)’을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겁니다. I have a dream이라는 게 상당히 단호한 거거든요. 새로운 한반도 건설은, 가슴 벅차게 이루고 싶은 사안이라는 거예요. 그러한 생각이 상당히 강한 분이에요.”

    “우리가 햇볕정책 아류? 거북하되 적절한 표현”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5월 14일 김정일을 만나 6·25전쟁 때 행방불명된 국군과 민간인의 생사확인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계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매우 의도적인 人事

    ▼ 사명 비슷한….

    “소명이죠. 연상이 되잖아요. 아버지 시절부터, 이 시대의 나의 사명, 내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 그런 거예요. 새로운 한반도 건설에 대해 어떤 소명의식을 갖고 있어요.”

    ▼ 박 대통령이 그 정도로 남북관계에서 뭔가를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전문가들과 브레인스토밍할 때 헬싱키 프로세스를 비롯해 유럽 얘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6자회담에 유럽연합(EU)이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도 했고요. 1차 북핵 위기로 인한 제네바 합의 결과물인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이사회에 EU가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향후 남북관계에서 유럽의 역할에 대한 구상도 머릿속에 들어 있더군요. 북한과 대화를 트고 경제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때 유럽 국가를 활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도 했고요. 유럽엔 북한과 수교를 맺은 국가가 많아요. 이례적으로 유럽통인 주철기 전 대사가 외교안보수석에 발탁된 데도 그런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 남북 문제와 관련해 군 출신 인사(남재준 국정원장, 김장수 안보실장)에게 힘이 쏠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안보 위기 상황에서 적절하다는 긍정적 평가,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약할 수도 있다는 부정적 평가가 혼재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러한 인사도 굉장히 의도적인 면이 있지 않을까요? 박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 계산을 했을 거라고 봐요. 안보와 관련해 단호함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말로는 보여주기 힘들잖아요. 단호한 이미지를 가진 군 장성을 주변에 배치하면 그것 자체로 북한에 주는 메시지가 있잖아요. 보수가 실질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주변에 군 장성을 두고 있지만 대화와 관련해 유연하게 치고 나가는 것은 내가 한다, 그게 나의 리더십이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얘기가 나온 것처럼 ‘햇볕정책 아류’니 ‘약체’만 주변에 배치해놨으면 거꾸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강경밖에 없는 거죠.”

    ▼ 박 대통령을 포함한 통일·외교라인 인사들이 의원께서 지금껏 말씀한 부분과 관련해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고 봐도 되나요.

    “공감대가 상당히 이뤄져 있고요. 하나 걱정되는 게, 류길재 장관이 너무 경직돼 있어요. 아마도 자기 실력의 30%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거예요. 자신감을 갖고 일해야 하는데…. 민간 출신이어서 위축될 수 있어요. 4성 장군이 아무나 되는 게 아니잖아요. 류 장관이 나이도 젊고요(1959년생). 회의 같은 거 할 때 군 출신 인사들과 동급이라고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 않겠어요? 그런 부분은 조금 안타깝습니다. 박 대통령이 힘을 실어줘야 할 것 같아요.”

    ▼ 박근혜 캠프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 한기범 국정원 1차장, 백승주 국방부 차관, 홍영표 대통령통일비서관, 최대석 전 인수위원은 한 팀이었지만, 남재준 국정원장, 김장수 안보실장은 팀이 달랐는데요.

    “팀은 달랐지만, 합동회의를 두세 번 했습니다.”

    ▼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로서 남북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까.

    “한미 정상회담이 마무리됐고,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면 우리가 ‘우리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한미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은 우리의 길을 가고자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거든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건,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 때 제안한 서울 프로세스건 미국이나 중국 정상이 정색하고 문제 삼을 내용이 아닙니다. 앞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중요합니다. 핵심이 남북 간의 링크(고리)를 연결시키는 겁니다.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 북한을 엮어들어가면서 주도적으로 동북아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거군요.

    “우리가 남북 간 링크를 연결시키지 않으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허망해집니다. 알맹이 없이 큰 그림만 있는 게 될 수 있어요. 실무대화든, 고위급 대화든, 공식창구든, 비공식창구든, 정부든, 민간이든, 대화 창구를 열어야 해요.”

    “면대면(面對面) 대화 시급”

    ▼ 대화 창구가 전혀 없는 것은 비정상적 상황이긴 하죠.

    “그럼요. 비정상적이죠. 전쟁 중에도 대화를 한다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비정상적 상황이면 박 대통령의 비전, 구상이 바깥의 힘에 의해서 휘둘릴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집니다. 특사든, 메신저든 표현을 어떻게 하던 간에 제3국에서 만나든, 평양에서 만나든 대화의 창구를 열어야 한다는 거죠.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해서도 대화가 필요해요. 1962년 쿠바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과 네 사람만 아는 비밀대화를 1년 동안 했습니다. 지난해 300여 통의 서신이 비밀해제됐습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그 서신을 일일이 살펴보고 해석을 덧붙여 6월에 책을 냅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화 채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예요.”

    ▼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대화에 나서는 것을 두고 저자세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습니다.

    “협상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할 말을 못하면 저자세라고 지적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대화의 통로를 열자는 게 왜 저자세인가요?”

    ▼ 핵 개발, 미사일 발사 등과 관련한 제재는 강하게 하고 대화 채널도 열어야 한다, 그런 뜻인가요.

    “유엔 안보리 제재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결의가 이뤄지면 회원국 모두가 준수해야 해요. 그걸 충실히 이행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독자적으로 더 가혹하게 제재를 가할 이유가 없어요. 대화의 창이 열려 있다고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대화를 시도하라는 게 저의 주장입니다. 대화를 시도했다고 해서 미국이 우리를 비난하겠어요, 중국이 우리를 비난하겠어요. 오히려 미국, 중국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남북 간 대화가 없는 것을 두고 ‘위험하다, 비정상이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 통일부-통일전선부건, 특사 혹은 메신저건, 낮은 수준이든, 높은 수준이든 대화를 시작하는 게 급선무라는 거군요.

    “고위 인사가 됐든, 낮은 수준에서 비즈니스맨을 보내든 오고 가는 게 있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면대면(面對面) 대화가 있어야 해요.”

    ▼ 북한에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하루빨리 전해야 한다….

    “메신저, 특사를 강조한 것은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대통령의 철학을 공유한 사람이 북쪽에 가서 대통령이 생각하는 남북관계 미래구상에 대해 설명을 해주라는 겁니다. 한반도 프로세스의 직접적인 상대에게 우리 대통령의 철학, 비전을 설명하라는 거죠.”

    “美, 대화 강요 전략 쓸 듯”

    ▼ 미국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흐를 것 같습니까.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재고한다는 식으로 말했지 않습니까.”

    케리 장관은 4월 17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2014 회계연도 예산안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미국의 대북 정책은 전략적 인내가 아니라 전략적 비인내(strategic impatience)”라고 말했다.

    “저는 그것을 강요된 대화(enforced dialogue)로 해석했어요. 시간은 우리에게 있다면서 마냥 기다리는 게 전략적 인내예요. 그런데 결과가 지금 이 모양이 됐죠.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강요하겠다, 그런 의미라고 봐요. 미국의 또 하나의 메시지는 이제 한국이 운전석에 앉으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주도적으로 해서 가져와봐라, 그러면 함께 논의하고 지원하겠다’는 겁니다. 이번 정상회담 때도 미국이 준비한 어젠다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이 만들어온 것을 미국이 충분히 잘 들어준 정상회담이라고 봐요.”

    ▼ 남북관계를 풀려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중국을 우리가 설득할 대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중국은 자기네 전략에 따라 그림을 그려가고 있어요. 지금 중국 지도부가 북한의 그간 행태에 굉장히 짜증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중국 역시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있으니 유엔의 대북제재 밖에서 놀 수는 없어요. 중국이 볼 때 북한은 한 번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아야 할 대상일 수 있어요. 북한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중국이 가장 꺼리는 부분, 그러니까 미국의 군사력이 동북아 지역에서 증가하게 됩니다. 일본도 재무장, 보수화로 가게 되고요.

    미국 항공모함이 서해에 들어오고 B2 폭격기, F22 전투기가 한반도에 나타났는데도 베이징은 과거와 다르게 관련국의 차분한 대응과 자제만을 요구했습니다. 중국이 미국의 힘을 빌려 북한을 조금 손봐야 하겠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이 이러니 중국이 더 나서줘야 한다’ 식의 얘기는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중국이 알아서 할 일이거든요.”

    ▼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합니다.

    “중국이 베이징보다 워싱턴에 먼저 가는 것은 이해를 해요. ‘이해한다.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중국을 찾아주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이미 와 있었거든요. 원래는 8월 말이나 9월 초에 갈 계획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앞당기는 것 아닙니까. 표현이 조금 그렇습니다만, 중국에 대한 엄청난 배려죠. 중국에 무게를 굉장히 두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중국에서 박 대통령이 환대를 받을 겁니다. 국민이 ‘우리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때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구나’라고 느낄 만큼 중국이 신경을 쓸 거라고 봅니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을 주창했고,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추구합니다. 일본은 우경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

    “그 대목이 아주 중요합니다. 남북 간 링크를 엮어 우리 힘으로 그림을 그려가야 해요. 남북관계를 통해 서울 프로세스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외교적 카드예요. 민족적 과제이기도 하고요”

    ▼ 박 대통령이 그러한 일을 잘 할 거라고 봅니까.

    “잘 할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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