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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매체 완전 개방하고 AM 주파수로 北에 뉴스 쏴야”

남북한 심리전 연구서 낸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북한 매체 완전 개방하고 AM 주파수로 北에 뉴스 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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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함흥서도 KBS 시청…전파 더 세게
  • ● 北 대남방송은 1980년대 ‘나꼼수’
  • ● 101연락소 3국, 네이버·다음 댓글 담당
  • ● 김정은, 해외정보 수집 해커부대 창설
  • ● 北 테러용 좀비 PC 40만 대 넘게 확보
“북한 매체 완전 개방하고 AM 주파수로 北에 뉴스 쏴야”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4월 11일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지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라디오 방송을 제작했다. 그가 운영한 열린북한방송은 하루 두 차례 북한으로 단파 방송을 송출했다. 북한 실상, 한국 소식, 국제 뉴스를 북한 주민에게 알렸다. 북한 거주 통신원에게서 취재한 북한 소식을 인터넷 신문을 통해 한국에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열린북한방송이 북한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좌파에서 우파로 노선을 전환했다.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으로 NL(민족해방) 계열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했다. 임수경 민주당 의원과는 서로 ‘태경아’ ‘수경아’라고 부르는 친구다. 1992년 박성희, 성용승 씨 밀입북에 관여해 옥살이를 했다. 북한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나섰을 즈음이다.

그는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이 식량난에 시달릴 때 중국 지린(吉林)대에서 국제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탈북자를 직접 만나 북한 실상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 6개월 동안 옌볜(延邊)에서 중국어를 익히면서 탈북자 수백 명을 인터뷰했고요.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가명으로 ‘신동아’에 기고한 적도 있습니다. 박사 공부하면서 주말마다 국경지역으로 달려갔습니다.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일부 486세대는 지금도 맹목적 반미, 종북(從北)을 진보라고 착각합니다. 독재 집단에 눈감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에요.”

7월 27일 정전 60주년을 맞았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어느덧 60년 세월이 지났다. 그는 “정전 후 남북 대립의 실체는 매체 간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남과 북이 다양한 매체를 내세워 말과 논리로 격렬한 전투를 지속해왔던 것이 정전 60년과 남북대립의 실질입니다.”

남북은 60년 동안 서로를 상대로 심리전을 벌여왔다. 군사학은 심리전을 “명백한 군사적 적대행위 없이 적군이나 상대국 국민에게 심리적 자극과 압력을 줘 정치, 외교, 군사 면에서 아국에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하 의원이 최근 남북이 치열하게 벌여온 심리전을 다룬 연구서를 펴냈다. ‘삐라에서 디도스까지 : 북한 사이버 테러의 현재와 미래.’ 1980~1990년대 운동권 시절의 실제 경험, 2005~2012년 열린북한방송을 운영하면서 얻은 정보와 취재 내용,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취득한 정보가 녹아들어가 있다.

“심리전과 관련한 책자가 전혀 없더군요. 2000년대 초 북한 공식 자료를 참조해 논문 쓰듯 정리한 내용에 개인적 경험, 열린북한방송을 운영하면서 획득한 정보, 국가정보원 및 통일부 등이 파악한 내용을 씨줄, 날줄로 엮어 책을 썼습니다.”

1980년대 북한은 한국에서 혁명을 유도하고자 ‘구국의 소리’를 비롯한 라디오 매체를 활용했다. 하 의원도 라디오 방송을 필사한 문서를 읽으면서 통일을 꿈꿨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북한 매체 완전 개방하고 AM 주파수로 北에 뉴스 쏴야”

미국 SNS 마이스페이스의 친북 계정에 게재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진.



“구국의 소리 주장대로라면 라디오 방송의 주체는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라는 한국 내 전위조직이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라는 말로 방송을 끝냈기에 남한에서 방송하는 지하방송이라고 믿는 이도 많았죠. 납북자, 월북자를 이용해 서울말로 방송했습니다. ‘통영의 딸’ 구출운동으로 유명해진 오길남 박사는 북한에 있을 때 ‘민영훈 교수’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진행했다더군요. 대남방송은 1980년대의 ‘나꼼수’였습니다. 나꼼수가 권력에 대한 조롱, 조소를 팟캐스트로 전달하면서 대중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대남방송은 국가권력을 비판하면서 행동 노선을 전파했죠. 당시 북한이 486세대 일부에게 전한 논리가 일종의 정서로 남아 있습니다. 1980년대의 추억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겁니다.”

북한의 대남방송은 ‘파쇼하에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 같은 구호를 내건 자생적 운동권 정파들의 과격함과 비교할 때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직선제로 개헌해야 한다’ ‘민주정부 수립하자’ 같은 슬로건은 정세에 매우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라디오 키즈(kids)들은 북한 방송에 환호했고요. 한국 뉴스에서 들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해줬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침투와 시장개방 압력을 비판하거나 지배계층의 비리, 부정축재를 고발했죠. 농어민, 노동자와 관련한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했습니다. 주체사상이 부지불식간에 학생들의 정신세계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거죠. 대남방송을 청취하고 그것을 지침으로 삼던 이들이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했습니다. 나중에는 재야운동권까지 접수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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