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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가 만난 작가 Ⅱ

“나를 벼랑 끝에 내몰고 쓴다”

‘28’로 독서계 소설 돌풍 정유정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나를 벼랑 끝에 내몰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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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방화범, 사이코패스, 경계성 인격장애…광기에 관심
  • ● 공간-인물 세팅, 취재-보완까지 2년 넘게 걸려
  • ● 어두운 20대, 무명 시절 패배감이 내 글 자양분
  • ● 요절한 외삼촌의 천금 같은 문학수업…“멋내지 마라”
  • ● 남동생 친구였던 연하 남편, 무명시절 지극정성 외조
“나를 벼랑 끝에 내몰고 쓴다”
참으로 오랜 만에 소설 열풍이 불고 있다. ‘정글만리’ ‘인페르노’ ‘28’ 등 국내외 신작 7권이 벌써 두 달째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정유정(47) 작가의 ‘28’(은행나무)은 출간 한 달 만에 10만 부가 팔리며 소설 붐에 불을 붙였다. 30만 부가 팔린 정 작가의 전작 ‘7년의 밤’도 ‘28’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었다.

‘28’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번진 서울 인근의 가상도시에서 28일 동안 벌어지는 사건의 기록이다. 무장병력이 봉쇄해 탈출이 불가능한 도시 ‘화양’. 사람이든 개든 눈동자가 시뻘게지면 사흘 안에 죽고 마는 전염병의 공포.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몸부림과 생명의 존엄함을 ‘링고’라는 개와 다섯 사람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한 치밀한 얼개와 오감을 자극하는 리얼리티로 읽는 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흡인력 있는 글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성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성을 절제하고 서사적으로 풀어간 점도, 흔치 않은 다중 주인공 시점을 쓴 점도 호기심을 키웠다. 더구나 그는 간호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거주지는 전라도 광주. 7월 25일, 광주에서 KTX를 타고 올라온 그를 만났다. 소설의 배경인 화양이 불볕(火陽)이라는 의미여서일까. 이날은 불볕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렸다.

시원한 커트머리에 청바지 차림으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그의 첫인상은 ‘28’을 보며 떠올리던 억센 중년 여걸이 아니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하자 수줍게 웃는 모습이 천진한 아이 같았다. 수많은 사람과 개를 무참하게 죽이는 과정 묘사를 어떻게 해냈을까. 하지만 입을 떼자 ‘본색’이 나온다.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술술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청신경을 곤두세우는 힘이 있었다.

6년차 ‘캣맘’의 인간 탐구

▼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최고라고들 하던데, 비결이 있나.

“어릴 때부터 사람을 관찰하고, 좋아하는 면을 따라 해보고 하는 걸 좋아했다. 원래 호기심이 많다. 하다못해 우리 집 강아지가 어떤 때 어떻게 짖는지 습성까지 관찰했을 정도다. 그런 습관이 몸에 뱄다. 소설에 나오는 개의 습성은 따로 공부를 해서 근거를 가지고 쓴 거다.”

▼ 인간의 악마성과 개의 생명 존엄성을 극적으로 그렸는데, 왜 하필 개를 소재로 했나.

“인간은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고 개의 생명은 순전히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개는 반려동물이라고 해서 가족처럼 키우니까 개가 없어지면 상실감이 크다고 하더라. 하지만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어떨까. 개와 사람에게 모두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사람이 개를 그만치 따뜻하게 대할까? ‘28’은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개인적으론 유기 고양이 두 마리를 집에 데려다 키우고 있다. 버려진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Cat Mom)’ 노릇을 6년간 했다. 처음에 고양이를 주운 지점과 동네 산기슭 무덤가에 밥을 놔준 게 계기가 됐다. 자기 밭을 망친다거나 쓰레기가 쌓인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농약을 놓아 고양이를 죽이더라. 배추나 무보다 이 생명이 더 가치가 없는 건가, 이렇게 죽여도 되는 건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런데 (고양이보다) 개가 더 대중성이 있지 않나.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100만이 넘었다고 들었다. 한 집에서 많게는 7~8마리도 키우더라. 그래서 개를 선택했다. 가장 대중적이고 인간 친화적인 동물이니까.”

▼ ‘7년의 밤’도, ‘28’도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끄집어냈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나.

“아주 좋아하고 관심 많다. 심리학뿐 아니라 정신질환, 사이코패스, 방화광, 반사회적 성격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이런 데도…. 사람의 성격이 인생을 결정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 선택을 할 때 성격대로 가치관대로 선택해서 얻은 결과물이 우리 삶이지 않나. 그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 그쪽 공부를 많이 한다. 대학(광주기독간호대) 시절부터 정신과 간호사가 돼야지 했더랬다. 그쪽 공부를 좋아했는데 그 호기심이 오래가더라.”

▼ 책을 보면 인간을 혐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데.

“혐오감을 갖고 있진 않다. 희망을 갖고 있다.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근데 뉴스에서 인간이 못된 짓을 저지른 걸 보거나 죽은 사람에게까지 악성 댓글을 다는 걸 보면 인간의 본성은 과연 뭘까 싶다. 나는 성선설도 성악설도 지지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다 있다고 본다. 내 마음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악마 같은 면도 있고, 착한 면도 있고,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고, 굉장히 잘 정리된 부분도 있다. 다른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인간의 악한 모습은 어떤 때 최대치를 발현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며, 인간의 선한 의지는 어떤 때 발휘돼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관심이 많다.”

▼ 아주 선한 사람이 악해질 수도 있나.

“그런 것 같더라. 본바탕이 악해서 악행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주변 상황 때문에 극도로 악랄해지기도 한다. 광기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 그런 데 흥미가 있다.”

▼ 그런 사람은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봐야 하지 않나.

“현대인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지옥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 자기만의 지옥이 열리느냐는 사람마다 다른데, 그게 열리기까지의 과정을 소설에 담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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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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