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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이론 접목 ‘신개념 야구’로 ‘재벌 야구’에 무한도전

‘한국판 머니볼’ 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 김동훈 │한겨레신문 스포츠 기자, 야구해설가 cano@hani.co.kr

투자이론 접목 ‘신개념 야구’로 ‘재벌 야구’에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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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균 연봉 꼴찌 구단의 4강 안착
  • ●미국계 경영자문사 ADL 30대 부사장 출신
  • ●박병호 트레이드, 염경엽 감독 선임은 ‘신의 한 手’
  • ●선수 이름값보다 OPS(출루율+장타율)에 주목
  • ●선수 기록·장단점 꿰고 있는 구단주
투자이론 접목 ‘신개념 야구’로 ‘재벌 야구’에 무한도전
1990년대,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선수 연봉 총액이 4000만 달러로 뉴욕 양키스(1억2600만 달러)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빈약한 재정 탓에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를 못 벗어났다. ‘가난한 구단’ ‘오합지졸 구단’이란 소리를 듣던 오클랜드는 2000년부터 빌리 빈 단장의 파격적인 ‘머니볼’ 이론에 힘입어 완전히 다른 팀으로 탈바꿈했다. 아메리칸리그에서 4번(2000, 2002, 2003, 2006)이나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등 포스트시즌에 5번 진출했다.

오클랜드는 철저한 경기 데이터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저평가된 선수들을 끌어들여 최저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뒀다. 2002년엔 아메리칸리그 사상 최초로 20연승이라는 감동의 역전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연승 기록은 1935년 시카고 컵스의 21연승이고, 무승부를 포함하면 1916년 뉴욕 자이언츠의 26연승이다. 두 팀 모두 내셔널리그 소속이다.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빌리 빈은 2007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선정 ‘미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파워엘리트 30인’에 올랐고, 10년간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우수한 단장 10인에 꼽히기도 했다. 빈의 이야기는 2003년 유명 작가 마이클 루이스가 ‘머니볼’이라는 책으로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됐고, 2011년에는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새로운 스포츠구단 모델

뉴욕 양키스의 최대 라이벌이자 메이저리그 부자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0년대 초, ‘밤비노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빈에게 거액(연봉 125억 원)을 제시하며 스카우트를 제의했지만 빈은 여전히 오클랜드 단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은 어떤가. 대부분 모기업으로부터 든든한 후원금을 받는 덕분에 수익 창출보다는 기업 홍보에 치중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머니볼 스토리’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한국판 머니볼’의 주인공은 이장석 (주)서울히어로즈 대표이사다. 흔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로 알려져 있지만 넥센은 구단의 메인스폰서 이름이고, 정식 법인명은 (주)서울히어로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새로운 유형의 프로스포츠구단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개척자다.

넥센 히어로즈(이하 넥센) 선수의 평균 연봉은 8144만 원에 불과하다. 신생팀 NC 다이노스보다도 적어 프로야구 9개 팀 중 꼴찌다. 평균 연봉 1위 삼성의 1억8865만 원의 절반도 안 된다. 하지만 넥센은 올 시즌 3, 4위를 달리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가장 먼저 20승에 올랐고, 5~6월에는 ‘부자 구단’ 삼성과 1, 2위를 다투기도 했다. 이장석 대표는 영화 ‘머니볼’의 실제 모델인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에 빗대 ‘빌리장석’으로 불린다.

이 대표는 1966년생으로 만 47세의 젊은 CEO다. 용산고와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나왔다. 그의 고교 친구들은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으로 공부를 곧잘 했다”고 기억한다. 영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다. 그의 아버지는 1960~70년대 IMF(국제통화기금) 은행에서 일했고, 누나들은 미국 시민권자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서 생활할 때 그는 한국에서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누나들이 영어로 얘기할 때 소외감을 느끼자 영어 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경영 수업은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INSEAD)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후 미국계 경영자문사 아서 디 리틀(ADL)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경영 컨설팅에 눈을 떴다. 32세이던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에서 대기업 빅딜(사업 맞교환)을 유도하는 ADL 평가단의 핵심 구성원이었고, 30대 후반에 ADL 부사장까지 지냈다. 

잘나가던 그가 느닷없이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은 결코 즉흥적 판단이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광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고교야구와 실업야구에 빠졌고, 고 1 때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곧장 마니아가 됐다. 그즈음 라디오로 미국 프로풋볼 경기 중계방송을 들었고, 메이저리그에도 심취했다. 홍콩 투자은행에서 일할 때는 유명 스포츠클럽의 지분을 가져보겠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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