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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盧, ‘AAK 리스트(American Ass Kisser)’ 만들어 親美 관료들 몰아냈다”

리처드 롤리스 미국 국방장관 고문역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親盧, ‘AAK 리스트(American Ass Kisser)’ 만들어 親美 관료들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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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AK’가 무슨 뜻인가.

“‘American Ass Kisser’(미국인의 엉덩이에 키스하는 자들)의 약자다. 노무현 정부 이전에 청와대, 외교부, 국방부에서 미국과 긴밀히 업무 공조를 해온 관료들이 거기에 해당됐다. ‘No’는 일련번호인데 15번까지 있었다.”

▼ 그들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가.

“전혀. 유능한 공무원들일 뿐인데 미국 정부와 친하다는 이유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청와대가 AAK 파일을 만들어 당사자들에게 모욕을 준 것도 놀라운데, 이들을 결국 인도로, 이집트로 보내더라. 노무현 정부가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반미적인 정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美 스파이 사건 재조사해야”



2006년 10월 당시 여당(현 민주당)은 국회에서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등이 국가정보를 수집해 롤리스에게 제공했다’는 이른바 미국 스파이 사건을 터뜨렸다. 수년에 걸친 재판 결과, 이 의혹을 집중 보도한 특정 매체 뉴스들은 ‘삭제’ 판결을 받았다. 롤리스는 “노무현 정권이 미국을 싫어하는 정도가 지나쳐 스파이 사건을 조작했다. 특히 국방부의 나를 가장 큰 방해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모 기업의 배모 회장은 롤리스에게 보고됐다는 ‘D-47’이라는 번역문서의 작성자로 지목됐다. 배 회장은 “이 문서는 사학법 파동을 언급하면서 ‘사학(私學)’을 ‘Historian line’으로 번역하는 등 비상식적 오역 투성이다. 이런 무식한 스파이가 어디 있나. 번역 아르바이트생을 시켜 급히 조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롤리스는 “당시 검찰은 노무현 정권과 한 몸이 돼 있었기 때문에 수사를 덮었다고 본다. 이제라도 재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노무현 정부와 접촉할수록 ‘한미관계 재설정’ 결심을 더욱 굳혀갔다고 한다. 롤리스에 따르면 2003년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에서 노 정부의 실무급 인사가 ‘지휘권 체계’에 대해 처음 언급했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논의를 반대했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내부적으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親盧, ‘AAK 리스트(American Ass Kisser)’ 만들어 親美 관료들 몰아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

2005년 10월 장관급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공동발표문은 예정보다 일주일이 늦어졌다고 한다. 노 정부가 “북핵 관련 내용은 북한을 자극하니 빼자”고 주장했고 미국 측은 “넣어야 한다”고 맞서 결국 넣게 됐다고 한다. 이때 미 국방부는 거의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롤리스의 말로는, 윤광웅 국방장관이 럼스펠드 장관에게 전작권 환수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자 럼스펠드는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위해 이미 열어둔 문을 열어젖히고 계십니다(You are a man who is pushing against the door we have already opened for you)”라고 말했다.

이어진 노 대통령과 럼스펠드의 면담에서 노 대통령은 럼스펠드 장관에게 “우리는 전작권을 환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럼스펠드는 노 대통령에게 “저희를 보십시오. 저희가 용산기지 이전과 전작권 반환 협상을 하러 와 있지 않습니까”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롤리스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럼스펠드가 즉석에서 전작권 반환을 수용하자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고 한다.

盧 정부의 북한 감싸기

나중에 노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에 대해 기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노 정부가 전작권을 천천히 가져오겠다고 하고 미 국방부가 빨리 가져가라고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롤리스에 따르면 2006년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럼스펠드 장관은 “2009년 연말까지 갖고 가라”고 했고 윤광웅 국방장관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2011년 연말까지 늦춰달라”고 했다. 이어지는 롤리스와의 대화 내용이다.

▼ 전작권 환수 시점을 두고 양측 의견이 엇갈렸는데.

“2007년 2월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미팅에서 내가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 측에 ‘한국 요구대로 반환 시점을 2011년 연말까지로 해줄 테니 대신 전작권 반환과 관련된 사안인 전략적 이행계획(STP)을 지금 바로 짜자’고 역제안했다.”

▼ 김 장관의 반응은 어땠나.

“김 장관이 ‘청와대에서 STP를 2009년부터 하자고 한다’고 해 내가 ‘그건 곤란하다’고 했다.”

▼ 왜 청와대가 2009년을 언급했다고 보나.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2008년 2월까지니까. 노 정부는 전작권 반환의 정치적 과실(果實)만 취하고 반환에 따르는 모든 문제는 다음 정부로 떠넘기려 했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김 장관이 2주 뒤 워싱턴 국방부에서 게이츠 장관을 만났다. 나도 배석했다. 거기서 게이츠 장관은 김 장관에게 ‘반환 시점을 2012년 4월로 더 늦춰주겠다. 단, STP를 2007년 7월부터 당장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반환 시점을 자기들 요구 시점보다 더 늦춰준 것이니 김 장관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대신 노 정부가 STP를 맡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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