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검찰 픽션에 놀아난 내가 안 미친 게 용하다”

‘저축은행 비리’ 무죄판결 이철규 前 경기경찰청장 6시간 격정토로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3-11-19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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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동천 배임 혐의는 사실상 아들 대신 형사책임 지는 것”
    • 유동천 구치소서 토로 “고향 후배에 누명 씌워 죽고 싶다”
    • “검찰의 기소독점 견제 위해 경찰 수사권 독립 절실”
    • “나는 아직 치안정감…내 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
    “검찰 픽션에 놀아난 내가 안  미친 게 용하다”
    11월 7일 저녁 약속 장소인 서울 강남의 작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푸석푸석한 빵을 뜯어 먹고 있었다. 아담한 체구에 평상복을 입은 이철규(56)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의 첫인상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경찰 최고위급 간부보다 시골에서 막 올라온 농부에 가까웠다. 윤기 잃은 빵처럼 얼굴이 초췌했다.

    테이블 한쪽에는 지난 20개월 동안 그를 괴롭힌 법정싸움의 흔적이 한 무더기의 서류 속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는 “며칠 전 내 얘기를 가지고 쓴 ‘동아일보’ 사설을 봤다.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며 “사설 제목처럼 누가 내 20개월을 보상해줄 건가”라고 반문했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 남자는 답을 찾았을까.

    지난해 2월 29일,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하던 대검찰청 산하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은 그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했다. 영어(囹圄)의 몸이 된 그는 보름여 뒤 기소됐다. 공소사실은 ‘민원 해결이나 수사 무마를 대가로 강원 동해시 북평중·고등학교 선배인 유 회장에게서 네 차례에 걸쳐 모두 3000만 원, 박종기 전 태백시장과 박영헌 재경태백시민회장에게서 각각 1000만 원을 받았다’는 것. 이 전 청장은 이를 모두 완강히 부인하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검찰은 그를 끝내 법정에 세웠다.

    “증거 부족이 아니라 누명”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지난 10월 31일 1, 2심 판결대로 무죄로 종결됐다. 대법원은 이날 ‘검찰의 공소사실을 진실하다고 확신할 만한 정황증거나 물증이 없으므로 이 전 청장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과 이를 그대로 유지한 항소심 판결은 법리상 정당하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 전 청장은 1, 2심 판결문을 내밀며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검찰이 내게 좋은 감정이 아니란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날 옭아맬 줄은 몰랐다. 피의자의 허위진술과 검찰의 석연찮은 수사로 실체 없는 사건에 휘말려 내 직위는 해제됐고, 명예에 흠집이 났다. 5개월 동안 수감되기도 했다. 그간의 억울한 심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인데 아직도 날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돈은 받았는데 증거가 부족해서 무죄가 된 걸로 말이다. 단언컨대 난 있지도 않은 일로 누명을 썼다. 티끌만큼의 혐의점도 없어서 1 ,2, 3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1, 2심 재판부는 유 회장이 돈을 언제 어디서 왜 줬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거나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꾼 점 등을 근거로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사건을 임의로 재구성해 피고인에게 돈을 준 것이 확실한 것처럼 객관적 증거에 꿰 맞춘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도 달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회장과 제일저축은행 전무로 비자금 관리를 담당한 장모 씨, 또 다른 전무 유모 씨, 행장 이모 씨 등 4명은 그 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대검찰청 대기실이나 빈 조사실에서 여러 차례 상의했다”고 진술했다.

    이 전 청장은 “검찰이 입을 맞춰보라고 직접 대놓고 지시하진 않았겠지만, 피의자와 증인들이 공모할 수 있도록 조장하고 방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유 회장이 구치소에서 ‘고향 후배에게 주지도 않은 돈을 줬다고 진술해서 후배가 구속돼 죽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구치소 재소자에게서 직접 전해 들었다. 그가 허위진술을 한 것은 아들의 죄를 덮으려 했기 때문”이라며 검찰이 2012년 10월 법원에 제출한 사건 의견서를 내밀었다.

    사건 의견서에는 ‘유동천은 1200억 원 상당의 배임, 300억 원 상당의 횡령 등으로 기소됐고 현재 징역 9년의 중형이 구형됐다. 유동천의 배임 혐의는 사실상 아들 대신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전 청장은 “형사책임에는 대위(代位) 책임이란 게 없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유 회장의 아들은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거나 기소된 적이 없다. 유 회장은 다른 혐의로도 처벌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결국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아들의 죄를 떠안고 검찰이 바라는 대로 진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동천과 제일저축은행 임원들은 은행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한 혐의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서 ‘비자금 규모를 축소하거나 내역을 은폐하기 위해, 또는 수사상 편의를 제공받고자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피의자 박영헌 씨도 같은 지적을 받았다. 재판부는 스스로 종전 진술을 임의 변경하는 박영헌의 태도로 볼 때, ‘자신의 진술에 따른 이해관계를 예측해 피고인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 자체를 꾸며내 진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 전 청장이 박 전 시장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피의자와 증인의 진술이 엇갈리거나 일관되지 않고 범행 장소와 일시 등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점, 진술내용이 객관적 상황에 맞지 않는 점 등을 볼 때 신빙성이 없다’고 무죄 판결 이유를 밝혔다.

    원주 별장 사건 헛소문

    ▼ 지난 20개월 동안 어떤 심정이었나.

    “한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올봄에 있었던 원주 별장 사건과 관련해 날 두고 헛소문을 퍼뜨린 진원이 어디인가. 기자들이 내게 소문의 진위를 물어왔는데 경찰청이 아닌 검찰청 출입기자들이었다. 검사가 기자실에 가서 ‘강원도에 유명한 이 아무개도 접대받았다는데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하면, 말이 질문이지 소문 퍼뜨리라는 것 아닌가. 인터넷 유포자를 상대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고소했다. 경찰에서 신원 추적이 가능한 유포자들을 조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3개월이 넘도록 기소를 안 한다. 1300만 도민의 치안을 책임지던 사람이 양아치 같은 업자에게 성 접대를 받았고 동영상에 찍혔다는 소문을 낸 것은 치명적인 명예훼손이 아닌가. 내가 미치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용하다.”

    ▼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

    “사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재판 결과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있지도 않은 일로 구속돼 시달리다 나오고, 법정에 피고인 신분으로 가서…아, 누구한테 심판을 받는다는 게, 더욱이 검찰의 손에 그런 처분을 받는다는 게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법원에 대한 신뢰는 있다. 검찰이 만들어놓은 시나리오는 거리낄 게 없어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근데 무죄가 확정된 날 너무 비참했다. 내가 20개월 동안 무엇을 위해 고통을 겪으면서 지내왔나, 내게 남은 게 뭔가 싶더라. 지인들이 축하해주며 ‘기쁘지 않으냐?’고 하더라. 이런 픽션에 놀아났는데 뭐가 기쁜가. 참으로 참담할 뿐이었다.”

    ▼ 법정에서 보인 눈물이 참담함의 발로였나.

    “1심 선고공판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간 1분 30초 동안은 머리카락이 곤두섰는데, 반전이 있었다. 검찰의 공소사실이 왜 신빙성이 없는지 조목조목 지적해주는데, 정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짚어가면서 재판을 심도 있게 하더라.”

    그가 누명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 안산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때에도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돼 2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이하 안산 사건). 안산 사건은 1998년 그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찰 수사권 독립을 위해 힘쓴 게 발단이 됐다고 알려졌다.

    이번 사건으로 그가 구속 기소됐을 때 경찰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검찰의 표적수사라는 말이 돌았다.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 그가 전면에서 큰목소리를 낸 게 화근이었다는 얘기였다. 그때 경찰 측 핵심인사로 활약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자 그는 “경찰 핵심간부로서 소명을 다했을 뿐”이라며 모처럼 미간을 활짝 폈다.

    아내의 원망

    ▼ 검찰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수사를 하면서 악을 척결하겠다는 의욕이 강하다보면 무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기소권을 가진 검사가 경찰 수사를 지휘해왔다. 그런데 일부는 스타 검사를 꿈꾼다. 기소권과 수사권, 수사지휘권을 다 갖고 있으니까 가능하다. 기소권과 수사권 결합이 낳은 폐해다. 하지만 수사하는 사람과 공소하는 사람이 다르면 더러운 거래를 할 수 없다. 검찰이 제일저축은행 부실의 사실상 주범인 유 회장 아들을 기소하거나 수사하지 않은 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쥐고 있기에 가능했다. 이런 폐단을 막으려고 공소권, 수사권, 재판권을 각각 분리한 나라가 많다. 그래야 억울한 피해자가 안 생긴다.”

    ▼ 사건 피의자인 유 회장과 박종기 전 시장, 박영헌 씨와 어떤 관계인가.

    “유 회장과는 30년을 알고 지냈지만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아니다. 예식장, 행사장 같은 데서 잠깐 보거나 경찰병원에 업무 보러 갈 때 한 번씩 들르는 정도였다. 5~6년 사이에 만난 게 모두 10번이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만날 돈 주고받고 하나. 박영헌이라는 사람은 5~6년 전 처음 봤고 개인적으로 만나는 관계도 아니다. 박종기 전 시장은 중학교 7~8년 선배라서 부지기수로 봤다. 내게 화환 보낸 증거, 모임 같은 데서 함께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는데도 법정에선 날 모른다고 하더라. 나와 친한 데도 직접 말하지 않고, 굳이 나와 일면식이 없던 김모 부시장과 박영헌을 보내 자신에 대한 수사 무마를 청탁하고 돈을 줬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으니까 거짓말을 할 수밖에.”

    ▼ 가족은 뭐라던가.

    “아이들은 다 커서 그런지 날 위로해주더라. 괜찮다, 힘내라고. 하지만 아내에게선 원망을 부지기수로 들었다. ‘경찰이 당신 아니면 안되나, 수사권이 뭔데 미쳐서 잠도 못 자고 난리치나, 예전에도 그것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나, 내 말을 안 듣더니 결국 봐라….’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 건으로) 내가 집에서까지 수사권 확보하겠다고 의원들에게 전화해 설득했으니까 아내 눈에는 정상으로 안 보였을 거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이, 지난해 4월 경찰청 지휘부 회의에서 (조현오) 청장이, 날 두고 한 얘기는 아니겠지만, ‘양아치 같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문제를 일으키고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보고 아내가 펑펑 울었다. ‘당신이 그 청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실언 건을 수습해보겠다고 밤잠을 설쳤는데, 그걸 다 봐온 사람이 이럴 수 있느냐’면서. 나도 (기사를) 봤는데 (마음이) 몹시 아팠다.”

    ▼ 조 전 청장과는 지금도 연락하나.

    “지난주 면회했다. 힘 내시라는 얘기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더라. 그분도 열심히 했다. 경찰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한 건 존중해야 한다.”

    “거짓말한 사람들 책임져야”

    “검찰 픽션에 놀아난 내가 안  미친 게 용하다”

    이철규 전 총장이 검찰의 석연찮은 조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전 청장은 이번 사건으로 지난해 8월 3일까지 5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그것도 말동무 하나 없고 팔을 옆으로 뻗으면 벽이 닿는 독방에서. 그는 “수감생활 자체는 자유를 속박당해서 그렇지, 교정행정이 엄청나게 발전해 사람 사는 곳 같았다”고 구치소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그는 “비좁은 공간에서 독거하니 혼자라는 게 몸서리치게 외롭고 힘들었다. 의자가 없어 늘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생활했더니 몸이 망가지더라. 지금도 허리와 엉덩이뼈가 자주 쑤신다. 계속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중 그는 자세가 불편한지 자꾸 엉덩이를 들썩이고 손으로 어깨를 주물렀다. 독방생활 후유증이라고 했다.

    “팔을 양옆으로 벌릴 수가 없어서 운동도 팔다리를 위아래로 뻗는 정도의 스트레칭밖에 할 수 없었다. 대신 책을 100권은 읽었을 거다. 사건 관련 자료도 대여섯 번씩 읽고.”

    ▼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는 억울하게 누명 쓴 주인공이 결국 탈출해 자유를 찾는다. 유죄판결이 났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

    “이번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 재판이 얼마나 걸릴까만 생각했지. 안산 사건 때는 상고를 안 하려고 했다. 서울대병원이 법원에 제출한 피의자(뇌물공여자) 진료기록을 보면 정신과 치료 과정에서 검찰로부터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도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하기에 상고를 포기하고 신문에 광고를 내려고 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그때 젊은 변호사가 찾아와 ‘정말 억울하더라도 2년만 더 버텨라. 지금 상고를 안 하면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를 기록으로 남겨놔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데 변호사가 ‘나는 인지대만 받을 테니 나를 납득시켜 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검사가 조사하는 것보다 더 심도 있게 날 취조했다. ‘별 놈 다 보겠네’ 싶었는데 상고 이유서를 100쪽 가까이 써 왔더라. 그걸 읽으면서 가슴이 뚫렸다. 대법원 판결문이 그 변론을 다 채택했다. 상고심에서 파기될 확률이 1000분의 1도 안 되는데 그 구멍을 뚫고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번에도 모두 그 변호사가 변론했다.”

    ▼ 억울한 일을 겪었는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는 안 하나.

    “고위공직자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 내가 공직을 관두면 모를까. 하지만 위증을 한 당사자들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사람을 거짓말로 매도하고 위증한 책임을 져야 한다.”

    ▼ 왜 경찰이 됐나.

    “어린 시절에는 내가 살던 시골 읍내가 세상에서 가장 넓은 줄 알았다. 읍내에 나가면 우체국과 지서, 읍사무소밖에 없었다. 그러다 의경으로 군에 입대했는데 해볼 만한 직업 같았다. 경찰은 아랫사람들이 강하고 위가 약하다. 소신껏 당당하게 하면 누가 막겠나. 경찰로서 열심히 살아왔다.”

    “죽이려고 할 만하다”

    ▼ 경찰 수사권 독립을 외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스물아홉 살에 경감으로 승진해 속초경찰서 설악파출소장으로 갔다. 지방엘 가니 검사가 황제더라. 검사와 아는 것만으로도 동네에서 큰 권력이었다. 설악산 인근에서 나이트클럽을 하는 업주가 속초지청장과 동향이었다. 신고가 들어와 우리 직원이 미성년자 단속을 하러 갔는데 업주가 ‘감히 너희들이 여기에 왔느냐’며 난리법석을 쳤다.

    단속에 걸렸으니 불법영업으로 처리했는데 며칠 뒤 속초지청에서 소방관, 경찰관 등 공무원들이 숙소로 쓰는 아파트를 죄다 압수수색했다. 이사 갔을 때부터 베란다에 분재가 있었는데 이걸 압수해서 설악산 주목을 불법으로 가져온 게 아니냐며 조사했다. 그때는 경찰 수사과장이 검사의 밥이었다. 50대 후반의 수사과장이 젊은 검사에게 ‘영감님, 영감님’ 했다.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책임만 질 뿐. 잘못되면 경찰에게 책임을 묻고 잘되면 생색은 자기들이 내고.

    서울에 와서 정보과장으로 서를 운영하다보니 참새는 지나가고 나비와 잠자리만 거미줄에 걸리는 거다. 그래선 안 되잖나. 오히려 큰 놈은 걸리고 작은 놈은 빠져나가는 그물이 돼야 하는데. 검찰에 대한 인식이 더 안 좋아지더라. 1997년 대선 때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가 경찰에 수사권을 보장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DJ가 정권을 잡은 후 국정과제에 이것을 넣는 과정에서 내가 검찰과 부딪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관 문제 때문에 부딪치고 (수사권 보장을) 지켜내느라고 부딪치고. 그게 끝나자마자 나를 손보지 않았나. 그게 안산 사건이다.

    2005년에도 수사권 가지고 대판 붙을 때 경찰이 좌절했다.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과 하위직 직원들만 목소리를 높였지 허리에서 받쳐줄 힘이 없었다. 2011년 내가 경찰청 정보국장으로 일할 땐 조현오 청장이 깃발을 들었다. 정보국에서 나서서 표 대결까지 갔다. 국회에서 입법할 때 175대 10으로 이겼다. 그걸 마무리했으니 (나를) 죽이려고 안 했겠나.”

    ▼ 검찰과 경찰은 어떤 관계가 바람직할까.

    “지금은 경찰이 수사를 독자적으로 개시하고 진행할 수 있지만 사실상 지휘는 검사가 한다. 검사의 수사 지휘는 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경찰의 수사를 간섭하고 통제하고 검찰권을 행사하기 위한 지휘가 아니라, 경찰이 수사하면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 그걸 견제하는 것. 검찰과 경찰이 건전한 방향으로 논쟁하다보면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혼란이다, 갈등이다 하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의 부당한 수사와 기소로 억울하게 누명 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재발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짓 진술이 나올 수 없는, 거짓 진술을 만들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거짓 진술을 왜 할까. 참고인이나 피의자가 그냥 진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증거를 들이대면 진술을 하지. 예를 들면 비자금이 조성돼 사용처를 추적해가면서 ‘어디다 썼느냐’고 물으면 돈 쓴 곳이 나온다. 그 진술에 부합하는 정황이 있다. 그런데 지금 수사는 거꾸로다. 주소록 가져오고, 통화기록 가져오고, 관계자 있으면 대라고 찌르잖나. 그러니 진실이 왜곡되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 예단한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거다. 나는 똑똑하니까, 나는 법률 전문가니까, 내가 생각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니까 오만에 빠지는 것이다. 지금 제도로는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는 검사의 기소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미국의 대배심제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20여 명의 시민 배심원이 사형에 처해질 범죄나 중범죄 피의자를 대상으로 기소 여부를 심의한다. 일본에는 검찰심사회가 있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형사소송법상 기소편의주의에 입각해 사건에 대한 불기소처분을 검사 재량에 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소한 사람이 이에 불복할 경우 민간인으로 이뤄진 검찰심사회에 불기소 처분이 타당한지에 대한 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 민의를 이용해 기소독점주의를 견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엔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음에도 이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불합리한 경찰 직급체제

    ▼ 경찰 수사권 독립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검찰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권을 검찰이 아닌 법원이나 다른 쪽에서 통제하는 걸로 바꿔 경찰이 검찰과 대등한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다. 왜냐. 권력이 분산되니까. 정치권력이 검찰 하나는 통제하기 쉽다. 검찰을 통해 경찰을 통제하면 되니까. 그런데 경찰이 검찰과 대등한 기관이 돼서 검찰을 견제하면 경찰을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경찰은 숫자가 무진장 많고 개방된 조직이라 정치권력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현재 경찰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고 묻자 그는 불합리한 직급체계를 꼽으며 “가정이 편해야 가장이 밖에 나가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데, 경찰 직급구조를 보면 희망이 없고 좌절하게 한다”고 말했다.

    “나는 치안정감까지 왔다. 운이 좋았다. 근데 지금은 경찰대학을 나와도 서장까지 가는 사람이 3분의 1도 안 된다. 간부후보생을 거쳐도 총경을 다는 경우는 4분의 1도 안 된다. 일반직 공무원은 말단으로 들어가도 4급까지는 다 간다. 일반직은 평범한 현장 근무자가 4급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경찰은 경찰서장이 4급이다. 일례로 내가 서울송파서장을 할 때 직원이 의경까지 1300명 정도 됐다. 주민 69만 명의 치안을 책임지는 자리고.

    근데 성동구치소에서 면회와 접견을 담당하던 과장도 4급이었다. 공안직이라 서장보다 봉급이 30만 원 정도 더 많았다. 그러면 송파서장의 업무와 성동구치소 과장의 직무 중 어느 게 더 비중 있고 어려운 직무인가. 철창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건 단순 업무다. 이런 제도하에서 경찰에 몸담은 사람들이 의욕이 있겠나. 일을 열심히 한다고 진급되는 게 아니라는 걸 어느 날 깨닫게 되는 거다. 그게 점점 심해진다. 이 직급체계를 개선하지 않고는 소신껏 일하기 힘든 여건이다. 근데 경찰 직급을 왜 이렇게 가혹하게 만들어놨을까. 경찰력이 강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 왜 그런 건가.

    “경찰이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만만한 조직으로 남아 있어야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에 가면 1급이 5년을 하지만 경찰 경무관은 5, 6년씩 못 한다. 전문성이고 뭐고 없다. ‘어어’ 하다가 집에 간다. 그러니 조직이 약하다. 이걸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찰의 중추세력이 총경급, 경무관급이다. 이런 사람들이 40, 50대에 아이들은 학교 다니는데 승진 못하면 집에 가야 한다. 계급정년 때문에. 승진 못하면 나가야 하는데, 더 일할 수도 없고 명예도 없는데, 이 사람들에게 ‘소신껏 일해라’라는 말이 통하겠나. 어떻게든 눈치 보고 승진하려고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때가 되면 내 발로 나간다”

    경찰의 직급은 모두 11단계(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경정-총경-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다. 계급정년은 경찰 조직의 허리인 경정부터 치안감까지 적용된다. 이에 따라 경정은 14년, 총경은 11년, 경무관은 6년, 치안감은 4년까지 할 수 있다. 이 전 청장의 직급인 치안정감은 계급정년이 없다.

    ▼ 향후 거취에 대해 생각해봤나.

    “상식에 입각해 적절한 조치가 있을 거라 본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나. 분명한 건 자의로 나가는 일은 없으리라는 거다. 때가 되면 상식과 순리가 지배하는 통상의 절차에 따라 용퇴할 거다. 지금은 아니다.”

    ▼ 복귀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뭔가.

    “해야 할 일을 주저하지 않고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 하는 경찰을 만들고 싶다. 지방청장을 하면서 이미 그렇게 했다. 직원들의 공감을 얻는 일. 이제 공직은 내게 덤이다. 현업에 복귀해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개인의 욕심에 연연하지 않고 후배들로부터 정말 멋있게 일하다 나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국민에게 득이 되는 일을 명예롭게 하고 싶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시작한 인터뷰는 저녁도 거른 채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났다. 새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의 인생에도 새로운 장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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