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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끌리는 것이 소설이 된다”

탈북자, 실직자, 기러기 아빠…한국 담은 단편소설로 英美 문학계 강타 크리스 리 연세대 교수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나도 모르게 끌리는 것이 소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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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끌리는 것이 소설이 된다”
올 가을학기부터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교편을 잡은 크리스 리(Krys Lee·언더우드국제학부) 교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재미교포 출신인 그는 2012년 단편소설집 ‘떠도는 집(Drifting House)’으로 영미 문학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신예 소설가이자, 최근 10여 년간 탈북자들을 도와온 북한인권운동가다. 총 9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첫 소설집의 표제작 ‘떠도는 집’은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하는 어린 삼남매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문학계에서는 장편소설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한 작가에게만 그전에 써놓은 단편소설들을 모아 펴내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관행이다. 장편소설이 단편소설보다 더 잘 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 리는 장편소설을 건너뛰고 바로 단편소설집으로 데뷔했고, 데뷔작으로 더 스토리 프라이즈, 푸시카트 프라이즈 등 미국 내 문학상을 휩쓸었다.

미국에 이어 영국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그의 책은 BBC 국제 단편소설 대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주노 디아스(Jonot Diaz)는 2012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그해 읽은 가장 좋았던 책 두 권 중 한 권으로 ‘떠도는 집’을 꼽았다. 아시아 이민자 가정 출신의, 무명 신예작가의 첫 책을 펴낸 미국 출판사는 한국 독자에게도 유명한 펭귄그룹이다.

9개 대형 출판사 경쟁

“나도 모르게 끌리는 것이 소설이 된다”
가을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기분 좋게 스며든 크리스 리의 백양로 연구실은 작고 아늑했다. 5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갔다는 그는 예상보다 우리말을 잘했다. 어떻게 첫 책을 펭귄에서 내게 됐느냐는 기자의 첫 질문에 그는 수줍은 듯 동그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며 “정말 드라마틱했어요” 했다. 건조한 듯 침착한 소설 문체와 달리 감성이 풍부한 여성이구나, 싶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영문학으로 학업을 마친 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기 시작한 그는 국내에서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번역과 잡지 제작, 이화여대 등에서 작문 강의 등을 하며 틈틈이 소설을 썼다. 앞날이 보장되지 않은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2010년, 아직 매듭짓지 않은 단편소설 한 편을 들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북 콘퍼런스에 참여했다. 작가 지망생들이 습작을 발표하고 기성 작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그는 미국의 유명한 출판 에이전트 수전 골롬브(Susan Golomb)의 눈에 띄었다.

골롬브를 통해 크리스 리의 습작을 접한 총 9군데의 출판사가 출간을 제안해왔다. 이 중에는 펭귄그룹을 비롯해 랜덤하우스, 리틀브라운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대형 출판사들도 포함됐다. 이틀간 경매가 열렸고, 계약금이 마구 올라갔다. 써놓은 장편은 없고, 한두 편의 단편만 갖고 있을 뿐인 그는 속으로 ‘이 사람들이 정신 나갔나…’ 하고 읊조렸다고 한다. 최종 낙찰을 받은 펭귄그룹과 그는 2권의 책을 내기로 계약했다. 미국 출판업계에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권 계약’ 사례가 거의 사라졌기에 더욱 의외의 ‘사건’이었던 셈이다. 그는 “과연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늘 주저했는데, 펭귄과의 계약 이후 자신감을 갖고 작품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숨이 턱 막히는 데뷔작이다. -라이브러리 저널(Library Journal)

그는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깊이 있고 모순된 감정을 단순하고도 명료한 스타일로 표현해냈다.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s)

소설집에 실린 두 편의 뛰어난 작품, ‘떠도는 집’과 ‘신자(The Believer)’는 단지 몇 페이지 만에 살인, 광기, 환영, 믿음의 상실, 그리고 그 이상에 대해 뛰어난 업적을 달성해냈다. -더 가디언(The Guardian)

소설집에 실린 9편의 작품은 모두 한국과 관련이 있다. 미국의 한인 이민자, 기러기 아빠, 실직한 대기업 직원, 탈북자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고 한미 간 문화적 충돌에 관해 다룬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모두 한국 이름이고, 엄마(Omma), 아빠(Appa), 오빠(Obba), 형(Hyeong) 등 한국어 호칭도 발음대로 썼다. 문장 속에서 대략 그 의미가 파악되지 않을까 해서 사용한 이 한국어에 대해 에이전트나 출판사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 서부에서 한국과는 지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분리된 채 자랐지만, 글을 쓰기로 했을 때는 결국 ‘뿌리’ 앞에 설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는 “한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 한국인들이 처한 현실에 관심이 갔고, 이해하고 싶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를 겪어내며 가장들이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갈라진 기러기 가족이 겪는 갈등과 외로움은 어떤 색채일까 하는.

“처음에는 LA 폭동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했어요. 하지만 소설이란 꼭 하고 싶은 이야기여야 오랜 시간 매달릴 수 있는 거더라고요. 소설의 소재란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어요. 다만 마음으로 다가오는 소재는 쓰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건강보험 없는 한인 가정

그는 다섯 살 때 교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한국에 대한 기억이라곤 강아지를 키운 것, 그리고 먼저 미국으로 건너간 아버지에게 보내려고 녹음기 앞에서 여동생과 노래 부르던 것, 그게 전부다.

이민 생활은 쉽지 않았다. 3년마다 거주지를 옮기는 아버지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녔고, 동양인이 드문 미국 서부에서 어딜 가든 눈에 띄었다. 그는 “어릴 땐 백인이 되고 싶었고, 스스로 백인인 줄 알았다. 한국엔 관심조차 없었다”고 했다.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건강보험도 없어서,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 떠난 뒤 병원비를 갚느라 집을 팔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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