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암 줄기세포 잡아야 암 고친다”

‘면역요법’으로 암 치료하는 구라모치 쓰네오 박사

  • 도쿄=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입력2013-11-20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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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 몸의 면역세포를 증식해 스스로 암을 이길 수 있도록 돕는다는 ‘면역요법’.
    • 이 치료법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일본 센신 병원의 구라모치 박사다.
    • 그는 이 치료법으로 많은 환자에게 새 삶을 줬다. 구라모치 박사는 최근 도쿄에서 열린 특별 강연회에서 “암에도 줄기세포가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 암 줄기세포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서는 암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암 줄기세포 잡아야 암 고친다”

    면역세포 배양실에서 연구 중인 구라모치 박사와 그의 저서.

    암은 인류에게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새로운 치료법이 속속 개발되면서 완치율은 올라가고 있지만, 아직도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제1원인이면서 치료 과정도 까다로운 질병이다.

    암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은 표준치료. 외과요법(수술), 화학요법(항암치료), 방사선요법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치료법은 오랜 기간 발전을 거듭하며 상당한 성과를 내왔다. 조기에 발견할 경우 완치에 가까운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여 년간 암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비율이 20% 이상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특히 발병해도 증세가 뚜렷하지 않고 치료가 어렵기로 소문난 폐암, 췌장암 등의 발병률과 치사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암 치료법이 나올 때마다 큰 관심을 쏟는다.

    최근 암 치료 분야에서 주목받는 대표적인 치료법이 ‘면역세포 치료요법’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이 치료법은 암 환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면역력을 극대화해 환자 스스로 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우리 몸속의 여러 가지 면역세포가 서로 관계하면서 ‘자기’와 ‘비(非)자기’(異物·항원)를 분별한 뒤 ‘비자기’만을 공격해 제거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이 치료법을 ‘자가면역세포 치료요법’이라고도 한다.

    일본 구마모토 현 센신 병원의 구라모치 쓰네오(66) 박사는 바로 이 면역세포치료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 인물이다. 세계 최초로 면역세포치료법을 개발해 상용화했고,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특허를 받았다. 올해 8월 우리나라에서 받은 특허는 ‘암 면역치료용 세포의 제조방법’이다. 구라모치 박사는 도쿄대 의과학연구소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시피 의대와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 의대에서 내과학과 면역학을 연구했으며 일본 성마리안나 의대 면역학과장을 지냈다. 면역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히는 그는 이미 오래전에 혈액에서 면역세포가 모여 있는 림프구를 15분 만에 분리해내는 기술을 확립하는 등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5가지 면역세포 활성화

    구라모치 박사의 암 치료법을 간단히 정리하면 사람의 몸속에 있는 5가지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다시 환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치료법은 ‘5종복합 면역세포 치료법’으로 일컬어진다. 5개 면역세포란 △‘자연살해세포’로 불리는 NK세포 △항원을 찾아내 다른 면역세포에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수지상세포 △암세포를 공격하는 기능을 맡는 감마·델타-T세포 △가장 강력한 암 종양 공격 세포인 킬러-T세포 △면역세포의 작용을 총괄하는 NKT세포를 말한다.

    구라모치 박사는 2006년경부터 이 치료법으로 암 환자들을 치료해왔고, 지난 수년간 의미 있는 임상 결과를 도출했다. 그가 원장을 맡고 있는 센신 병원의 임상 결과에 따르면 구라모치 박사는 15년 동안 35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는데, 2009년부터 올해 1월까지 면역치료법을 적용한 암환자 189명(남 89명, 여 100명) 중 23%인 43명에게서 암덩어리가 완전히, 혹은 일부가 사라지고 종양 수치가 떨어져 삶의 질이 개선됐다. 치료법의 유효성이 확인된 환자는 61%에 달했다. 그에게서 치료를 받은 환자의 92%(174명)가 이미 암덩어리가 다른 인접 장기로 전이된 3~4기 암환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구라모치 박사 외에도 면역요법으로 암을 치료하는 의사와 의료기관은 많다. 그러나 구라모치 박사의 연구는 이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기존의 면역요법은 여러 면역세포 중 1~2개만을 증식해 활용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모든 면역세포를 한 번에 활용하는 면역치료법을 상용화한 것은 구라모치 박사가 처음이다.

    구라모치 박사는 최근 ‘5종복합 면역세포 치료법’을 보다 발전시킨 ‘신(新)수지상세포획득 면역백신요법’(일명 수지상세포치료)도 병용해 치료율을 높이고 있다. 이 치료법은 암 항원을 발견해 치료세포인 T-세포에 전달하는 수지상세포가 보다 정확하게 암 항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 치료효과를 높이도록 한 방법이다. 기존의 치료법이 면역세포의 자연적인 기능에 의존했다면, 새로운 치료법은 면역 능력을 인위적으로 높인 방법이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구라모치 박사의 암 치료법은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를 활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인위적인 장치 없이 자기면역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이라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등과 병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병행할 때 면역치료 효과가 더 커진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구라모치 박사는 “그래서 우리 병원에서는 면역치료와 함께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같이 하도록 환자들에게 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암 줄기세포 잡아야 암 고친다”


    “암 줄기세포 잡아야 암 고친다”

    11월 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구라모치 박사의 강연회.

    암 줄기세포 완전 제거

    ‘5종복합 면역세포 치료법’의 연구·개발 과정은 복잡했다. 그러나 환자들이 겪어야 할 치료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수술하고 입원하는 등의 번거로움이 없다. 먼저 환자의 혈액을 채취한 뒤 혈액 내에서 면역세포들이 들어 있는 림프구를 분리한다. 그리고 이것을 3주간 배양한다. 이 과정에서 1000만 개 정도에 불과하던 5가지 면역세포가 적게는 20억 개, 많게는 50억 개 이상으로 증식된다. 이렇게 증식된 면역세포들을 환자의 몸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병원에서 링거액을 맞듯이 1시간 정도만 맞으면 치료가 끝난다. 이렇게 주입된 5가지 면역세포는 환자의 몸속에서 서로 협력하고 활성화하면서 암세포를 죽이는 등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한다.

    현재 센신 병원은 일본에 31개, 한국에도 10여 개의 제휴 병원을 두고 있으며 이들 병원으로부터 암 치료를 위한 세포배양을 의뢰받아 최적의 상태로 면역세포를 활성·증식하는 방법으로 암치료 배양액을 제공한다. UAE 두바이 왕립의료원과 인도네시아 국립의료원이 최근 센신 병원과 제휴하기를 희망하고 나서 조만간 기술이전 계약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구라모치 박사는 새로운 차원의 암 치료법 개발에 도전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암 줄기세포 특이항원 백신요법(DC-AIVac/CSC)’이 그것이다. 암이 발생하고 재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암 줄기세포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 세계 최초의 치료법이다. 구라모치 박사는 11월 6일 도쿄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이 치료법을 처음 공개했다. 강연회에는 암환자 가족, 암치료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구라모치 박사는 강연회에서 “2011년부터 삿포로 의대와 암 줄기세포가 발현하는 특이 항원에 관한 공동 연구를 해왔고, 최근 특이 항원을 찾아내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라모치 박사에 따르면 암세포 중에도 줄기세포가 있다. 전체 암세포 중 불과 몇 %에 불과하지만, 이 줄기세포는 암이 전이되거나 재발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구라모치 박사는 암 줄기세포를 없애지 않고는 암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다고 판단, 암 줄기세포를 제거하는 면역치료법을 연구해왔다. 그는 암 줄기세포 치료법으로 암 치료율을 기존의 면역요법보다 20% 이상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에도 줄기세포가 있다는 사실은 1997년 캐나다의 한 연구팀에 의해 확인된 바 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휴면 상태에 있다가 특정한 조건이 되면 활성화해 암세포를 만들어내는 세포가 확인된 것. 암 줄기세포는 급성골수성백혈병, 유방암, 뇌종양, 전립선암, 대장암, 췌장암 등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구라모치 박사의 부연 설명을 들어보자.

    “암 줄기세포는 종양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고, 자기복제 능력을 갖고 있으며, 다분화 능력도 있는 세포군이다. 이렇게 줄기세포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은 수라도 암 줄기세포를 면역이 없는 동물에 이식하면 새로운 암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암 줄기세포는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 같은, 지금까지 주로 사용된 암 치료법에 대해 강한 저항성을 갖고 있어 기존의 치료법으로는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휴면 상태에 있는 암 줄기세포에 반응하는 항원세포를 통해 암 줄기세포가 깨어나도록 만들고, 암 줄기세포가 여러 형태의 암세포를 만들어내면 이를 항암제 등을 통해 한 번에 제거할 수 있다. 휴면 상태에 있는 암 줄기세포는 항암제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해 개발해낸 치료법이다.”

    ‘암환자라서 행복하다’

    구라모치 박사는 최근 그동안의 연구 실적과 치료 현장에서의 경험을 모아 ‘당신은 암환자라서 행복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했다. 식도암에 걸려 1년 넘게 병원 치료를 받았고, 현재는 자신이 개발한 면역세포 치료법의 도움을 받고 있는 구라모치 박사 본인의 치료 과정도 그대로 담았다. 그는 책의 서문에 “희망은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희망을 버리는 것입니다”라고 썼다.

    “나 자신이 암에 걸린 뒤 암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입 안에서 인두암이 발견된 후 정밀 검사에서 식도암이 발견됐고, 목 부위의 임파선까지 전이된 걸 알게 됐다. 수술을 받고, 항암제를 복용하고, 방사선치료도 받고, 내가 개발한 5종복합 면역요법과 신수지상세포획득면역백신요법도 사용했다. 치료를 받으면서 ‘당신은 암환자라서 행복하다’고 했던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구라모치 박사는 암환자가 행복한 이유를 2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암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뇌경색이나 심장발작,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과는 달리 암환자는 설사 ‘여명 1개월’이란 진단을 받았다 해도 그만큼 뒤를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구라모치 박사는 “의사로부터 ‘앞으로 3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암환자들은 누구나 ‘겨우 3개월?’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3개월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을 맞는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라고 반문한다.

    암환자가 행복한 두 번째 이유는 암이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은 암을 고혈압이나 대사증후군 같은 생활습관병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구라모치 박사는 이 점을 강조한다. 그는 틈만 나면 환자들에게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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