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새 연재 | 최호열 기자의 호·모·에·로·티·쿠·스

“내가 변태? 性의 진실성 추구할 뿐”

‘성인연극 대부’ 강철웅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내가 변태? 性의 진실성 추구할 뿐”

1/5
  • 1990년대에 알몸연극 ‘마지막 시도’로 파문을 일으킨 강철웅 씨는 ‘성인연극의 대부’로 통한다. ‘여자의 알몸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매춘업자’라는 비난에도 여전히 성인연극을 고집하는 그는 ‘성 표현을 터부시하는 사회 관념과의 싸움’이라고 당당하게 맞선다. 그가 들려주는 섹슈얼리티 미학과 성인연극 뒷이야기.
“내가 변태? 性의 진실성 추구할 뿐”
연출가 강철웅(예술집단 ‘참’ 대표) 씨는 1993년 우리나라 최초의 알몸연극 ‘마지막 시도’를 무대에 올리며 성인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다. 1997년 ‘공연음란’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대학로를 떠났던 그는 2009년 ‘교수와 여제자’로 돌아와 또다시 성인연극 붐을 일으켰다. 이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교수와 여제자2’ ‘가자 장미여관으로’ ‘교수와 여제자3-나타샤의 귀환’ ‘먼로의 환생’ 등을 잇달아 흥행시키며 ‘성인연극 대부’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가 최근 청소년 뮤지컬 ‘위대한 슈퍼스타’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마치 ‘플레이보이’ 편집장이 청소년잡지 ‘틴잉크(Teen Ink)’를 만드는 것만큼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에 있는 소극장 비너스홀에서 그를 만나고 있는 동안 단체관람 문의와 예약이 끊이질 않았다. 청소년들 사이에선 꽤 입소문을 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벗은 배우가 몸이 안 되면…

▼ 이젠 성인연극은 안 하는 건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남과 똑같이 하는 건 싫다. 같은 걸 반복하는 것도 싫다. 늘 새로운 것, 나만의 독창적인 것을 보여주려 한다. 요즘 ‘먼로의 환생’에 출연했던 여배우 안나 먼로와 함께 후속 작품을 구상 중이다. 욕심은 올겨울 중에 무대에 올리는 건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 왜 안나 먼로인가.

“호주 멜버른대 빅토리안 주립예술대학에서 연극과 드라마를 전공한 재능 있는 친구다. 연기도 잘하고 열정도 있다. 이렇게 열정이 있는 배우는 이파니 이후 처음 봤다. 연기에 자신을 내던질 줄 아는 친구다.”

▼ 다른 여배우들은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는 뜻인가.

“다들 처음엔 열심히 한다. 그런데 연습을 마치고 무대에 올라가면 그때부터 나태해진다. 몸 관리도 안 한다. 벗는 여배우가 몸이 안 되면 관객들이 연극에 몰입이 안 된다. 그럼 연극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솔직히 여배우들의 그런 안이한 태도에 지쳐 이쯤에서 성인연극을 중단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알몸연극 연출가로서의 자긍심과 철학이 느껴졌다.

▼ 성인연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흔히 마광수 교수의 소설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고(故) 김기영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 김 감독의 영화 중엔 성불구 등 성을 소재로 하면서 컬트 요소를 결합한 작품이 많다. 난 거기서 컬트 요소만 뺐다. 나중에 생각하니 만약 컬트 요소를 넣었더라면 외설시비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사실성을 강조한 게 관객에겐 어필한 것 같다.”

김기영 감독은 ‘하녀’를 만든 거장. 강 대표는 그의 제자다. 필름 자르는 일부터 시작해 미술, 음악, 편집, 시나리오 작업까지 김 감독에게 모든 것을 배웠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입문 1년 만에 퍼스트 조감독으로 기용될 만큼 김 감독의 사랑을 받았다. ‘강철웅’이란 예명(본명 최성용)도 김 감독이 직접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

“그 무렵 정지영 감독과 박철수 감독이 우리 영화사에 들어와 나와 함께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입봉(감독 데뷔)을 준비하고 있었다. 곽지균 감독도 그때 영화판에서 조감독으로 만난 친구다. ‘청춘스케치’ 이규형 감독, ‘가문의 영광’ 정흥순 감독,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구인서 감독은 내 밑에서 조수로 일했다.”

▼ 감독 데뷔는 왜 못했나.

“입봉하려면 연출할 작품을 얻어야 하고, 제작비를 지원해줄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데, 난 그럴 성격이 못됐다. 대신 나 나름대로 일을 만들어서 했다. 패션쇼 연출도 하고, 아동극도 했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다. 다 잘됐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다보니 빨리 입봉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1986년부터 3년 동안 프랑스에 유학을 가기도 했다.”

“내가 변태? 性의 진실성 추구할 뿐”
1989년 돌아와 강시 영화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강시콩시팡팡시’란 아동극을 만들었다.

“진로도매센터 이벤트홀에서 공연을 했는데 하루 2000명씩 들어올 정도로 흥행 대박이었다. 공연 시간 동안 아이 엄마들이 도매센터에서 쇼핑을 하니까 그곳 매출도 덩달아 뛰었다. 진로 사장이 고맙다고 내게 금일봉을 줄 정도였다. 볼보를 타고 다녔다.”
1/5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내가 변태? 性의 진실성 추구할 뿐”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