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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중앙은행장들의 총명한 스승

스탠리 피셔 미 연준 부의장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총명한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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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융계에서 두각

학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쌓은 피셔 부의장은 1988년 1월 세계은행(WB)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되어 국제 금융계에 본격 데뷔한다. 그는 2년 반의 임기를 마친 후 잠시 MIT 교수로 복귀했다. 1994년 9월 IMF에 입문한 피셔는 7년간 IMF에서 활동하며 ‘금융 전도사’ ‘개발도상국 문제의 해결사’라는 칭호를 얻는다.

당시 그가 주도한 IMF 구제금융의 혜택을 본 나라는 십수 개국에 달한다. 1995년 페소화 가치 폭락으로 ‘테킬라 파동’을 겪은 멕시코를 비롯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이다. 1998년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을 겪은 러시아와 1999년 헤알화 가치 폭락으로 부도 직전에 몰린 브라질의 구제금융도 주도했다. 2001년에는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맞은 아르헨티나의 뒷수습에 나섰다.

당시 피셔 부의장의 성과가 특히 빛난 이유는 IMF의 최대 자금 분담국인 미국과 친미(親美) 인사가 대부분인 IMF 고위 집행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흥국에 대규모 자금 지원을 이끌어낸 데 있다. 물론 IMF가 고집한 고금리 정책으로 한때 한국의 금리가 20%에 육박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지원국에 상당히 가혹한 조건의 구제금융이었다는 지적은 있다. 하지만 그의 뚝심이 주요 개발도상국 경제의 파국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피셔 부의장은 IMF 내부나 조지 부시 행정부의 관료들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대규모 금융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IMF는 회원국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는 곳이다.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는 없다. 특히 해당 국가가 자금 지원을 받는 대신 강력한 경제개혁을 약속했는데 이를 저버린다는 것은 도의상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자금지원을 밀어붙였다. 이미 국가 부도를 맞은 아르헨티나에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한 80억 달러(약 9조 원)를 수혈한 것도 피셔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금융 지원을 논의하는 IMF 회의에서 피셔 부의장의 첫 마디는 언제나 “우리가 이 나라에 최대 얼마를 지원할 수 있는가”였다.



피셔 부의장은 2001년 말 7년간의 IMF 생활을 정리했다. ‘IMF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 이후 IMF 및 세계은행의 총재를 뽑아야 할 때마다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리긴 했으나 부시 정권과의 껄끄러운 관계, 다소 많은 나이 등이 늘 그의 발목을 잡았다. 대신 그는 당시 부동의 세계 1위 금융회사였던 씨티그룹의 부회장으로 변신했다. 학계와 관계 경험까지 쌓은 그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업계 경험’이라는 방점까지 찍은 셈이다.

사상 첫 외국인 중앙은행 총재

2005년 1월 초 피셔 부의장은 다시 한 번 국제적 주목을 받는다. 미국 국적의 그가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총재 취임 직후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한 그는 현재까지 미국과 이스라엘 복수 국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국인 신분이었기에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1694년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인 영국 중앙은행이 설립된 이후 세계 중앙은행 중 외국인 총재를 뽑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혈통은 유대계라 해도 미국인인 그가 이스라엘 중앙은행 수장이 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앞서 언급했듯 그를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데 크게 공헌한 사람은 베냐민 네타냐후 당시 이스라엘 재무장관이다. 그는 강도 높은 신(新)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이스라엘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야심에 불탔다. 강성 노조를 손보고 세금 제도를 개편하려는 네타냐후의 눈에 든 사람이 바로 작은 정부, 시장 개방, 경쟁력 촉진을 강조하던 유대계 미국인 경제학자 피셔였다. 네타냐후의 제안을 받은 피셔는 씨티그룹의 거액 연봉을 포기하고 즉각 이스라엘로 귀환했다. 미국에서 경제학자, 경제관료, 금융회사 최고 임원으로 존경받던 피셔가 국제금융계의 변방에 불과한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을 두고 놀랍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피셔가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음에도 고국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얼음장이었다. 상당수 이스라엘인은 군 의무 복무, 주변 이슬람 국가와의 거듭된 전쟁, 끊이지 않는 테러 공포 등을 겪지 않은 채 미국에서 안온한 삶을 살다온 피셔가 이스라엘을 얼마나 잘 이해하겠느냐고 반발했다. 이스라엘 유력지 ‘하레츠’의 칼럼니스트인 아리 샤비트는 “피셔가 얼마나 능력 있고 대단한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외국인 중앙은행 총재는 안 될 말”이라고 비난했다. 피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복수 국적도 문제 삼으며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단일 국적만 지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스라엘이 2000년간 나라 없이 지내던 세계 각국의 유대인 이민자가 1948년 만든 나라라는 점, 이스라엘에서 장기 거주한 경험은 거의 없지만 피셔가 유창한 헤브루어를 구사한다는 점, 그가 MIT 교수 시절 여러 차례 이스라엘 경제성장을 위한 고문으로 활약해 이스라엘 사정에 밝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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