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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朴 정부 국민대통합 돕는 게 DJ 뜻 계승하는 일”

한광옥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 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朴 정부 국민대통합 돕는 게 DJ 뜻 계승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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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朴의 통일과 국민통합 철학, DJ와 같아
  • ● 갈등지수 OECD 2위, 사회적 갈등 비용 연 246조 원
  • ● 대통합 위해 역지사지(易地思之), 구동존이(求同存異) 필요
  • ● 국민대통합은 남북통일 인프라 닦는 일
“朴 정부 국민대통합 돕는 게 DJ 뜻 계승하는 일”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정책 가운데 하나가 ‘국민대통합’이다. 어쩌면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그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 동안 대립과 갈등이 증폭, 심화돼왔다. 비단 영호남 지역 갈등만이 아니다. 이념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고, 소지역주의도 거세지고 있다. 국민 갈등이 너무 다양하게 표출되다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7월 출범한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다.

중재와 설득의 달인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이끄는 한광옥(72) 위원장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파격적 변신을 한 인물이다. 대표적인 ‘DJ맨’으로 30년 가까이 민주당을 이끌어왔던 그가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 여기서 더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정책이라 할 ‘국민대통합’ 실현을 진두지휘한다.

그의 변신에 대해 일부에서 말이 있었지만 그는 “국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국민대통합 정책을 돕는 게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눈빛에서 ‘사심(私心)’보다는 ‘진심’이 느껴졌다.

한 위원장은 70대의 나이에도 혈색이나 피부가 무척 좋아 보였다.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도 옛날 그대로였다. “건강해 보인다”고 하자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신체 나이가 50대 중반으로 나왔다”며 웃었다.

▼ 특별한 건강 비결이 있다면요.

“새벽 4시30분쯤 일어나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합니다. 헬스장을 가거나 하는 건 아니고, 집에 작은 뜰이 있어서 거기서 해요.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해요. 당 사무총장, 대변인을 할 때였는데, 거의 매일 밤 기자들을 상대하다보니 체력적으로 버티기가 힘들더군요.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거죠. 게다가 2010년 집사람이 폐암 3기에서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어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집사람이 내게 ‘당신이 수간호사’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병간호를 했어요. 암환자는 특히 식이요법이 중요해서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저도 집사람 식단에 맞춰 2년 반 동안 음식을 먹다보니까 저절로 건강해지더군요.”

▼ 부인의 병세는 어떤가요.

“암은 완치란 게 없는 병이라 늘 조심하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이젠 혼자 움직일 만큼 많이 호전됐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나와서 일할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열일 제쳐두고 옆에서 간호해야죠. 그 무엇보다도 집사람 건강이 우선이니까요.”

남다른 부부 금실을 자랑하는 한 위원장 부부는 대표적인 영호남 커플이다. 한 위원장은 전북 전주, 부인은 경남 진주가 고향이다. 또한 한 위원장은 1998년 제1기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노사문제를 풀어갔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초대 상임의장도 지냈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내는 동력이 된 ‘DJP연합’을 성사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협상과 타협, 중재와 설득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이끌어갈 적임자란 평가를 듣는 이유다.

30년 만의 두 번째 선택

▼ 정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서울대 문리대 60학번입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4·19를 맞았죠. 그 후 군정연장 반대시위를 하다 감옥에 가기도 하고, 3선 개헌 반대투쟁 등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1981년 11대 총선에 출마하게 됐죠.”

1982년 10월 그는 대정부 질의를 통해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김대중 석방’ ‘대통령 직선제’ ‘전두환 대통령의 민정당 총재직 사퇴’ ‘언론자유 보장’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주장한다. 하나같이 금기 사안이었다. 신문에서 내용을 쓰지도 못 하고 ‘한광옥 의원이 정치 현안에 대해 질의했다’고 한 줄로 짤막하게 보도했을 정도다. 그만큼 그의 대정부 질의는 정치생명을 걸어야 할 만큼 큰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DJ와 인연을 맺었다. 1985년 DJ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하자 대변인을 맡았다. 그 과정에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이란 죄명으로 감옥에 가기도 했다. 이후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등 줄곧 DJ와 함께 했다. 총재 비서실장, 사무총장, 부총재, 최고위원을 거쳐 대통령비서실장으로 DJ를 보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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