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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이해하면서 신뢰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신부님’으로”

북한서 평화·화해·나눔 실천 박창일 신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싸우고 이해하면서 신뢰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신부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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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정권 목표는 고립으로부터의 탈피
  • ●남북관계 개선 못하면 외자유치도 못해
  • ●국정원 대북정보 ‘죽이는 칼’ 아닌 ‘요리하는 칼’ 돼야
  • ●朴정부 대북정책 방향 옳지만, 행동으로 신뢰 쌓아야
“싸우고 이해하면서 신뢰 쌓았더니 ‘바티칸 앞잡이’에서 ‘신부님’으로”

박창일 신부가 2013년 11월 12일 평양 경성유치원에서 북한 어린이 어깨를 감싸 안고 있다.

평양 장충성당이 설립 25주년을 맞은 2013년 11월 10일. 박창일 신부(예수성심전교수도회)가 25주년 감사미사를 집전했다. 북한에도 성당, 교회가 있다. 1988년 장충성당과 봉수교회, 1989년 칠곡교회가 평양에 건립됐다.

“돼지를 잡았습니다. 단고기도 잘 먹었고요. 북쪽 신자들과 술잔도 나눴어요.”

박 신부는 1996년 북한을 돕는 일에 투신했다. 2000년 1월 평양을 처음 방문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북한을 찾은 한국인은 그가 유일하다.

“수십 번 방북했는데, 횟수를 세어보진 않았어요. 14년 전과 비교하면 북한도 크게 변했습니다. 가톨릭 신부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고요.”

박 신부는 2003년 설립한 NGO(비정부기구) ‘평화3000’에서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평화3000은 2006년, 2007년에 각각 평양에 두유공장, 두부공장을 짓고 두부, 두유의 원료인 콩을 지원해왔다. 식량난 해소를 돕기 위한 농업 지원 사업, 평양시체육단 축구장 리모델링 사업, 북한 쇼트트랙 국가대표 경기복 지원 사업 등도 벌였다.

“평화3000에서 숫자 ‘3000’은 첫째로 뉴밀레니엄, 예수님 후 3000년기를 가리켜요. 2000년 동안 싸우며 살았으니 새 천년에는 ‘평화’롭게 지내자는 뜻입니다. 둘째로는 삼천리금수강산을 말해요. 남북이 ‘화해’하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상징적으로 하루에 100원씩 한 달에 3000원을 기부해 지구촌 이웃들과의 ‘나눔’을 실천하자는 의미고요. 즉 평화, 화해, 나눔이 3000의 의미입니다.”

“잡아넣어, 이 새끼들아!”

박 신부는 1996년 3월 21일 ‘동아일보’ 사회면에 실린 200자 원고지 2매 분량의 ‘北行 쌀화물선 태풍 침몰’ 제하 기사를 읽었다.

“가톨릭 구호단체 카리타스가 북한에 보낸 쌀을 실은 화물선이 타이완 근처에서 침몰해 선원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 식량난이 어렴풋하게만 전해질 때였습니다. 사정을 알고자 홍콩에 건너가 북한을 돕는 스위스인 여성을 만났습니다. 북한 동영상과 사진을 보여줬는데, 충격적이더군요. 한국에 돌아와 그녀에게 받은 자료를 신문사, 방송국에 넘겨줬어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어린이 모습을 TV에서 본 게 기억날 겁니다. 정부 허가를 받은 후 북측과 팩스로 소통하면서 지원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방북 초청도 여러 번 받았는데, 김영삼 정부가 승인해주지 않더군요.”

2000년 1월 평양은 을씨년스러웠다. 수은주가 영하 15도를 가리켰다. 고려호텔은 난방을 하지 못했다. 전기난로와 이불 2장으로 밤을 넘겨야 했다. 낮엔 전기를 공급하지 않았다. 밤에도 수시로 정전이 됐다. 아침에 세수하려고 물을 틀었더니 따뜻한 물이 나왔다. 옷을 벗고 샤워를 시작했다. 비누질하려 물을 잠갔다 다시 트니 온수가 더는 나오지 않았다.

“평양의 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신뢰는커녕 서로를 이해하기도 어려웠고요. 원로신부님이 탄 승용차에서 다툼이 벌어졌어요. 우리 쪽이 먼저인지, 보위부 쪽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여자 끼고 술 마시다 죽었다는 얘기가 나왔답니다. 원로신부님께서 권력자는 다 똑같다고 말씀했는데, 보위부 인사가 발끈해 ‘이 영감탱이가…’라면서 막나온 겁니다. 만찬 때 낮에 승용차에서 벌어진 일이 화제에 다시 올랐습니다. 언쟁이 또 벌어졌죠.”

한 북측 인사가 언쟁 도중 흥분해 “그딴 식으로 얘기하면 상을 엎어버리겠다”고 겁박했다. 박 신부도 북측의 태도에 화가 나 있었다. “엎어? 내가 엎어버릴게”라고 대꾸하면서 상을 들어다 놨다 하고는 말했다.

“잡아넣어, 이 새끼들아! 우리는 서울 가도 마누라도 없어. 자식새끼도 없고.”

결국 만찬은 깨졌다. 이튿날 오전 일정에 맞춰 호텔 로비에 내려갔더니 안내하던 사람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호텔방으로 올라가 기다렸다.

“로비로 내려오라는 전화가 걸려왔어요. 북측 사람들의 흰자위가 빨갛게 변해 있더군요. 다음번 방북했을 때 들은 얘기인데, 우리 일행 탓에 밤새 대책회의를 했답니다. 다음 날 나가는 화물비행기에 실어 추방하려 했다고 해요.”

북한의 조선어사전은 오랫동안 가톨릭 신부를 ‘바티칸의 앞잡이로서…’라고 정의했다. 북측 인사들은 그를 ‘박 신부 선생’이라고 호칭했다. 그는 이 호칭이 마뜩지 않았다.

“우리도 너희를 존중할 테니 너희도 우리를 존중해달라. 남쪽에서는 나를 박 신부 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님’자 붙이기 싫으면 그냥 박 신부라고 해라.”

북측 인사들은 이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첫 방문을 마치고 평양을 떠날 때 순안공항으로 배웅 나온 이는 이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박 신부 선생, 잘 가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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