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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소리로 사람들 마음 들었다 놨다 할래요”

최고의 ‘소리꾼 부녀’ 왕기철·왕윤정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소리로 사람들 마음 들었다 놨다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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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역대 대통령상 수상 명창들 경연 ‘광대전’ 우승
  • ● 딸 왕윤정, 신세대 판소리꾼 경연대회 우승
  • ● 동생 왕기석도 전주대사습 장원…형제명창
  • ● 스승 조상현 명창과의 악연
“소리로 사람들 마음 들었다 놨다 할래요”
역대 최고의 한국 영화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게 ‘서편제’다. 딸 송화(오정해 분)를 통해 ‘한(恨)의 소리’를 완성시키려는 유봉(김명곤 분)의 집념과 숙명처럼 이를 받아들인 송화의 비극적 삶은 지금 봐도 깊은 감동을 준다. 국악계에 유봉과 송화처럼 대를 이어 ‘소리’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지만, 왕기철(51)·왕윤정(27) 씨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소리꾼 부녀’라 할 수 있다. 아버지 왕기철 명창이 현역 최고의 소리꾼이라면, 딸 왕윤정 씨는 신세대 소리꾼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다.

왕 명창은 2001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장원(대통령상)을 수상한 데 이어, 최고의 가수들이 모여 경연을 펼친 ‘나는 가수다’처럼 전주MBC가 국악계 최고 소리꾼(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역대 장원) 10명을 모아 소리 경연을 펼친 2012년 제1회 ‘광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말 그대로 현역 최고 명창임을 인정받은 셈이다.

왕윤정 씨 역시 지난해 말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한 젊은 국악 명창 발굴 서바이벌 프로그램 ‘소리의 신’에서 우승했다. 2007년 국립창극단 차세대명창 선정, 2011년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악방송이 공동 주최한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 금상을 수상하는 등 최고의 젊은 소리꾼으로 손꼽힌다.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

벚꽃 잎이 봄 햇살에 스러지던 4월 초, 남산 국립극장 앞에서 왕기철 명창 부녀를 만났다. 두 사람은 4월 1일부터 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창극 ‘장화홍련’에 함께 출연 중이었다. 왕 명창은 도창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 창극 ‘장화홍련’은 어떤 작품인가요?

“국립창극단(이하 창극단) 사상 최초로 시도된 스릴러 창극입니다. 고전 ‘장화홍련’을 모티프로 해서 현대인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그린 작품으로, 고전을 재연하던 기존 창극과는 완연히 다른 파격적인 실험극이라 할 수 있어요. 2012년 초연 당시 논란도 많았지만 관객 반응이 무척 뜨거웠고, 이번에도 전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 도창을 맡았는데, 도창이 뭔가요?

“원래는 창이나 아니리로 극과 극을 이어주거나 흥을 돋우는 역할입니다. 때론 관객이 극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자 노릇을 하기도 하고요. 이 작품에선 기존의 도창 역할에서 더 나아가 극에 적극 개입합니다. 소리로 음산한 기운을 깔아주기도 하고, 장화 홍련을 살해하는 장수의 내면을 표현하기도 하고, 살인을 부추기기도 하죠.”

윤정 씨에게 배역을 묻자 “이웃집 주부 역이다. 실제 옆집에서 살인이 일어나도 모른 척하고 외면하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귀신으로도 나온다. 아직은 연수단원이라서 배역이 작다”며 수줍게 웃었다.

왕 명창이 한마디 거든다.

“제가 강의 때문에 리허설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 대신 도창 노릇을 했어요. 후배들이 제게 ‘윤정이가 있으니 형님은 안 오셔도 된다’고 농담할 정도로 잘 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별명도 ‘왕기철 미니어처’로 불리더군요.”

윤정 씨에게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서는 느낌이 어떠냐”고 묻자 “어릴 때는 아버지가 너무 큰 존재였는데, 함께 무대에 선 지금은 거꾸로 아버지가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든다. 내가 처음 무대에 오를 때 아버지 마음이 어떠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신세대다운 당찬 대답이었다.

‘비운의 소리꾼’ 왕기창

왕 명창의 집안은 그의 딸뿐 아니라 형과 동생도 소리꾼인 그야말로 판소리 명문이다. 아홉 살 위인 형(왕기창)이 처음 소리를 시작했다. 박초월 선생의 제자로, 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한 그는 4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안타깝죠. 일찍 작고한 이유가 있어요. 창극단 있을 때 조상현 선생이 당시 극장장과 갈등하면서 조 선생 편에 섰던 단원들이 집단 탈퇴를 했어요. 그때 형님도 의리를 지키려 행동을 같이했는데, 막상 나오니 먹고살 길이 막막해 노동판을 전전하면서 힘들게 살았어요. 다시 창극단에 돌아온긴 했지만 그때 좌절감을 술에 의지하면서 건강이 악화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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