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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운석은 대한민국 브랜드”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 운석 수집가 천영덕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운석은 대한민국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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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주 운석’ 진정한 가치는 가격 아닌 희소성
  • ● 사하라 사막에서 남극까지 운석 찾아 종횡무진
  • ● 30여 년간 200여 개국…운석, 화석, 보석 원석 2만 점 모아
  • ● 사설 박물관까지 건립한 유별난 수집벽
“운석은 대한민국 브랜드”

천영덕 씨가 사하라 사막에서 발굴한 64kg짜리 대형 운석.

‘진주 운석(隕石)’이 연일 화제다. 3월 9일 전국적으로 유성 낙하 현상이 목격된 직후, 이튿날 경남 진주시 대곡면의 파프리카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운석으로 추정되는 암석이 처음 발견된 이래 진주에선 같은 달 17일까지 모두 4개가 잇따라 발견돼 속속 석질(石質)운석 파편임이 최종 판명됐다. 특히 네 번째 운석 파편의 질량은 20.9㎏으로, 앞서 발견된 3개 중 가장 큰 파편(9.36㎏)의 두 배가 넘어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서 운석이 발견된 사례가 워낙 희귀한 데다, 진주 운석의 추산 가격이 1g당 5~10달러에 달한다는 언론보도까지 이어지면서 한때 진주엔 국제적인 운석사냥꾼까지 출현하는 등 때아닌 ‘하늘의 로또’ 찾기 열풍마저 번졌다. 운석을 향한 세간의 관심 과열에 문화재청이 해외 무단 반출을 대비해 천연기념물 지정 등을 통한 적극적 보호조치에 착수하기로 하는 등 제동을 걸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운석은 그야말로 ‘귀하신 몸’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발견된 운석이라곤 이른바 ‘두원 운석’이 유일하다. 두원 운석은 1943년 11월 23일 전남 고흥군 두원면에서 발견된 질량 2.117kg의 석질운석. 당시 이 운석은 두원공립보통학교 교장(일본인)이 갖고 있다 광복 이후 자국으로 반출해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에 보관됐다.

그러다 이민성 전 서울대 교수(지구과학)가 1994년 두원 운석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그 존재가 국내에 제대로 알려졌고, 1998년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 측에 반환을 공식 요청해 56년 만인 이듬해에 영구임대 형식으로 들여와 현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대전) 지질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영국 대영박물관이 1985년 발간한 ‘운석연감(Catalogue of Meteorites)’에 따르면, 한반도에 낙하한 운석으로 기록된 건 두원 운석을 포함해 1924년 9월 전남 운곡에 떨어진 석질운석과 1930년 3월 경북 옥계에 떨어진 석질운석, 1938년 함경남도 소백에 낙하한 철질(鐵質)운석까지 총 4개. 하지만 현재까지 실체가 확인된 건 두원 운석 하나뿐이다.

“운석은 대한민국 브랜드”
따라서 두원 운석 이후 71년 만에 직접 낙하가 목격된 후 발견된 진주 운석은 그 가치를 한낱 산술적 가격 추산으로만 따져선 안 될 ‘경사(慶事)’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사상 초유의 국내 소유 운석이다.

이 때문에 일약 ‘운석 도시’로 떠오른 진주시는 4월 9일 아예 운석을 관광자원화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한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내놨다. 도시 브랜드 및 이미지를 ‘한국의 로스웰’로 확장시키겠다는 것. 로스웰은 원래 미국 뉴멕시코 주의 작은 시골마을이었지만, 1947년 미확인비행물체(UFO) 잔해 발견 논란을 타고 세계적 관광지가 된 곳이다.

진주시는 이미 운석 발견 지점 4곳에 훼손을 막는 보존조치를 취했고, 운석 보관 및 전시를 위해 문화재청 검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운석 소유자와 임차, 매입, 기증 등 다각적인 방안을 협의할 방침이다.

박 대통령에게 편지

지금껏 지구상에서 수집된 운석은 4만6000여 개. 운석은 태양계의 기원과 생성, 변천과정 등 기초적인 우주과학 연구에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 학술적 의의가 매우 깊다. 또한 희소성을 지녀 어디서 발견되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런 운석에 단단히 ‘미친’ 이가 있다. 천영덕(63) 씨. 30여 년간 세계 각지를 돌며 발굴하고 수집한 운석과 화석, 보석 원석 등 광물 2만2000여 점을 모아 한때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원강우주지구박물관이란 명칭의 사설 박물관까지 운영했던 주인공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원강(元江)’은 그의 호다.

천씨는 ‘신동아’ 인터뷰 요청에 선뜻 응하면서도 취재 당일인 3월 27일에야 비로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기자에게 알려줬다. 그간의 연락은 그의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이 되는 일반 전화번호로만 해야 했다. 그 전화번호의 지역번호도 그가 현재 거주하는 지역과는 전혀 달랐다. 길 찾기를 위한 내비게이션 검색용 주소 역시 가르쳐주지 않았다. 대신 약속시간에 맞춰 혼자 승합차를 몰고 사전에 지정한 장소로 직접 마중을 나왔다. 그는 다소 겸연쩍어하면서도 “보안 때문에”라고 잘라 말했다.

충남 천안시 인근(천씨는 자신이 사는 곳의 구체적 위치가 노출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에 자리한 천씨의 집 또한 그 못지않게 별났다. 2층짜리 별채를 갖춘 3층 건물. 주위에 여기저기 세워둔 외제 승용차, 야마하 상표의 제트보트와 제트스키 등 갖가지 탈것들. 3층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쫙 널브러진 채 시선을 확 잡아채는 임팔라(아프리카에 분포하는 소과의 포유류) 가죽, 한쪽 벽면을 완전히 점령하다시피 한 3대의 커다란 감시카메라용 모니터, 소파 옆에 놓인 알록달록하면서 크고 작은 지구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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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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