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新 한국의 명장

인연의 실타래도 아름다운 매듭으로

매듭장 김은영

  • 글·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사진·박해윤 기자

인연의 실타래도 아름다운 매듭으로

2/4
골동품을 사랑한 아버지와 시아버지

인연의 실타래도 아름다운 매듭으로

주머니 끈도 매듭을 곁들이면 멋이 난다.

아버지가 시인이어서 그의 집에는 시인과 화가가 자주 찾아왔다. 그의 기억에는 없지만 시인 이상과도 교유가 있었다 하고, 김기림과 화가 김환기, 최재덕도 아버지와 친구 사이였다. 그러면 간송 전형필도 일찍이 만났던 걸까?

“두 분이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서로 존재는 아셨겠지요. 간송 선생님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저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어요. 두 분 모두 겸재의 작품을 좋아하신 공통점도 있고요.”

간송이 우리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예가이자 우리나라 서화 작품에 관한 기록 ‘근역서화징’의 저자인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김광균 시인도 위창 선생에게 받은 서예 작품으로 만든 병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김은영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보존회의 교육전시장이 돈화문으로 옮겨왔는데, 마침 그 맞은편이 위창 선생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인연은 이렇듯 깊이 연결돼 있다.

김은영 자신은 간송이 세상을 뜬 뒤 시집갔는데, 우연히도 생전에 간송과 두세 번 마주친 적이 있다고 한다.



“저의 집이 종로 경운동에 있었는데, 한동네에 시댁과 친한 의사 댁이 있었어요. 시아버님이 자주 들르셨다고 하는데, 제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서 있다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지나가는 모습을 뵈었지요.”

그가 간송을 알아본 것은 그 이틀 전 한국미술오천년전을 미국 시애틀에서 연다는 신문기사에서 간송의 사진을 본 덕택이었다. 그는 간송을 알아보고 속으로 ‘신문에서 뵌 분 아닌가?’ 하고 신기하게 생각했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몇 번 바람결로 스쳐간 분이 미래의 시아버지가 되리라곤 그 자신도 몰랐다.

김은영이 간송의 둘째 아들이자 일찍 세상을 뜬 형 대신 맏이로 산 화가 전성우를 만난 것 역시 미술 전람회에서였다.

“고모님이 국전에 같이 가자고 해서 모시고 갔다가 시어머니와 함께 나온 남편을 소개받았습니다. 우연처럼 만났지만 나중에 보니 이대원 화백께서 중매를 서신 거더군요.”

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하면서 주목받는 신인 화가로 화랑의 전속작가까지 되었던 전성우 씨는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미국 활동을 접고 귀국해 오늘날까지 간송미술관을 지키고 있다. 남편의 첫인상은 보통 사람은 소화하기 힘든 올리브그린색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

“남편은 10년 뒤 살이 부해져서 시아버지와 꼭 닮게 됐지만, 처음 만났을 땐 마른 몸매에 코트가 잘 어울려서 나중에 제가 남편에게 그 코트 덕분에 결혼하게 됐다고 말했지요.”

그러면 남편은 장인이 마음에 들어 결혼했다고 대답한단다. 시인이었지만 사업을 했던 장인과 화가지만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야 했던 사위 사이에는 무언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다고 김은영은 짐작한다. 그러나 이 부부의 공통점이 더 눈에 띈다. 둘 다 미대를 졸업하고 전통 예술을 지켜가는 일을 평생 해왔으니, 과연 두 집안과 두 사람의 인연은 깊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김은영은 몇 달 만에 약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학 꿈이 물거품이 되는 대신 매듭 인생이 열렸으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약혼 시절, 매듭이 떠오르더군요. 제 공부를 못하게 되었으니 대신 무언가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약혼자에게 매듭을 배울 스승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지요.”

전성우 씨가 미술사학자인 최순우 선생에게 자문을 구해 소개받은 이가 바로 매듭장 김희진 선생이다. 김광균 시인과 함께 개성 출신인 최순우 선생은 김광균의 시에도 등장할 만큼 두 집안과 잘 알고 지냈으니 인연의 실타래는 오묘한 데가 있다.

김희진 선생의 첫 제자

중요무형문화재인 김희진 선생은 매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매듭의 맥이 끊어지던 1960년대 초, 김희진은 문화재를 연구하던 예용해 선생의 권유로 매듭장인 정연수 선생에게 매듭을 배웠는데, 정연수 선생은 조선시대 매듭장인들이 모여 살던 시구문(광희문) 부근에 살던 전통 장인이었지만 매듭끈은 기계로 짠 끈을 쓰고 있었다. 김희진은 남원까지 내려가 박용학 노인에게서 끈 짜는 법을 배우고 약수동의 김입비 할머니를 찾아가 매듭의 술 만드는 법을 배우는 등 매듭 기술을 온전히 복원해냈다. 또한 옛 유물을 수집하고 최순우 선생과 함께 문헌을 찾으면서 우리 매듭의 원형과 역사를 추적하고 정리했으며, 일본까지 찾아가서 일본 장인들이 짜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잃어버린 넓은 끈 짜는 법까지 재현해냈다.

“김 선생님은 우리 매듭의 기틀을 마련하신 공로자시죠. 또 굵은 끈을 짤 수 있는 다회틀(끈틀)도 직접 고안해내셨고요.”

김은영이 김희진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66년으로 김희진 선생이 한창 매듭 연구를 해나가던 무렵이다. 그는 명실 공히 김희진 선생의 첫 제자로 스승의 매듭 연구를 함께 해왔다.

2/4
글·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사진·박해윤 기자
목록 닫기

인연의 실타래도 아름다운 매듭으로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