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호

“성욕은 사람을 지탱하는 것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는 것”

발칙한 에로티시즘 화가 이혁발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입력2015-01-22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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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性)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많지만 이혁발(52)만큼 기발한 아이디어와 발칙한 상상력으로 에로티시즘을 구현해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자신이 직접 여장남자가 되는가 하면(‘섹시 미미’전), 정액을 그림 재료로 사용하는 등 20년 넘게 성에 천착해온 그가 말하는 에로티시즘 미학과 성의 즐거움.
    “성욕은 사람을 지탱하는 것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는 것”
    지난해 10월, 서울 이태원의 한 미술관에서 열린 ‘예술과 섹스’를 주제로 한 전시회에 들렀다가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이혁발. 1991년 첫 개인전 ‘싱싱한 다리를 한입 깨물고-진지함의 우스움’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성’에 천착해온 대표적인 에로티시즘 작가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아온 이혁발은 특히 2003년 여장(女裝)남자를 주제로 한 ‘섹시 미미’전(展)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미술평론가 오세권 대진대 교수는 “이혁발이 보여준 성에 대한 미술 표현의 담론은 국내 에로티시즘 미술사에 기록될 만한 근거들을 남기고 있다”고 평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의 그림들은 여전히 ‘수위’가 높아 정면에서 응시하기 민망할 정도였지만, 입체사진(렌티큘라)을 활용하는 등 “역시 이혁발!”이란 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농부 화가

    반가움과 궁금증을 안고 1월 초, 경북 안동으로 그를 찾아갔다. 2006년 이곳에 정착해 작품 활동도 하고, 집 앞에 600여 평의 작은 농원을 만들어 농사도 짓는다고 했다.



    “포도와 머루를 50그루 정도 키우는데, 그걸로 포도주를 만든다. 많을 땐 50병, 적을 땐 30병쯤 나온다. 1병에 3만~5만 원씩 받고 판다. 그런데 지난해엔 농사도 망치고 제조 과정에 문제가 생겨 한 병도 못 건졌다(웃음). 딸기도 키우는데, 수확하면 지인들을 불러 모아 딸기 파티를 연다.”

    이혁발은 1963년 경북 영양에서 농사꾼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가 셋, 그리고 형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올라온 그는 고생하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일찍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동대문상고에 입학했다.

    “고3 때 은행 입사 추천서를 받았다. 그런데 문득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재수해서 서울예전에 들어갔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다시 공부해 동국대 미술학과 86학번으로 입학했다.”

    ▼ 학교 다닐 때도 에로틱한 그림을 그렸나.

    “대학 2학년 때부터 여체(女體)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그렸다. 당연히 교수님들이 뭐라고 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는 추상 작업도 했는데, 졸업 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 어릴 때부터 성에 관심이 많았나.

    “중학교 1학년 때 자위를 알게 됐다. 그 후 바지 안주머니에 구멍을 뚫고 길을 가면서도 자위를 하곤 했다. 그렇다고 성 도착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웃음). 굳이 이유를 부여하자면…어릴 때 엄마 젖이 안 나와 젖을 못 먹고 자랐다고 한다. 또, 어린 시절 재봉틀 안에서 하루 종일 운 기억이 있는데, 어머니 말로는 밭일을 할 때 나를 데리고 가서 눕혀놓으면 도랑에 굴러떨어지곤 하니까 방 안에 재운 후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갔다고 한다. 자다 일어났을 때 아무도 없으니 놀랐던 것 같다. 애정이 결핍됐던 거다. 애정 결핍은 성에 대한 욕구 불만과 갈구로 이어진다.”

    ▼ 대학을 졸업하고 작품활동을 본격화한 1990년대 초엔 민중미술 영향이 강해 에로틱 미술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운동의 목적은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쟁취하는 것이다. 성만큼 인간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게 어디 있나. 성적인 작업을 하면 우선 내가 즐겁다. 대리만족도 느끼고, 애인이 없어도 그걸 보면서 자위를 할 수도 있고…. 시작은 그렇게, 내가 즐기기 위해서였다. 이왕 하는 예술, 즐길 수 있는 소재를 택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성욕에서 인간 본질을 보다

    그는 “내가 기본적으로 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연유한다. 나에 대해 알고 싶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냐에 대한 탐구의 출발이지, 성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는 주제는 성 말고도 많지 않나.

    “인간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성이다. 성적 욕망을 통해서 인간을 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욕망은 사람을 지탱하게 하고, 살아가게 하고,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섹스는 종족번식 기능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욕망이다. 남자가 돈을 많이 벌고 지위와 권력을 얻으려는 이유가 뭔가. 결국 좀 더 섹시한 여성과 섹스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성은 영원한 테마일 수밖에 없다. 인간을 알기 위해선 성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몸을 통해 느껴지는 욕망과 감각에 대한 연구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 여성의 알몸을 그리고, 성행위 광경을 그린다고 해서 모두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 진부한 질문이지만, 예술과 외설의 차이가 뭐라고 보나.

    “자신의 철학을 갖고 새로운 형식과 기법으로 사람들에게 정서적 자극을 줘서 그들의 아름다운 삶에 봉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의 성욕을 자극한다 해도 예술로 봐야 한다. 외설은 상업적 목적으로 철학도 없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정서적 자극을 주지 못하고 예술적 구성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만 지칭돼야 한다. 성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무조건 터부시하는 것은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증류수 같은 사회를 만들려는, 결벽증 걸린 사회다. 풍성한 삶을 위해 성적 자극이 되는 아름다운 예술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사회가 돼야 한다.”

    ▼ 그래도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고등학교 때만 해도 비디오에 여자 젖꼭지가 보이면 안 됐다. 잡지도 젖꼭지는 까맣게 칠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젖꼭지가 개방됐다. 여자 젖꼭지가 드러났다고 무슨 큰일이 벌어졌나. 마광수 교수가 ‘야한 여자’론을 처음 들고 나왔을 때 모두 그를 비난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많은 여성이 손톱 길게 기르고, 컬러 매니큐어 바르고, 하이힐 신고, 미니스커트 입고, 이른바 ‘술집여자’보다 더 섹시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그는 “내가 1990년대에도 주장했지만, 포르노를 허(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을 뒤져 힘들게 무료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사이트를 겨우 찾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청 경고 화면이 뜬다(웃음). 나, 참…. 그런 게 자꾸 반복되니까 황당하고 열 받더라. 그래서 만든 게 ‘욕망과 국가의 통제’라는 행위예술이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자의 다리를 핥는 퍼포먼스인데, 시늉만 할 뿐 진짜 핥지는 않는다.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보는 게 섹스의 느낌만 갖는 거지 진짜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상징한다. 그리고 우리의 자잘한 행복까지 국가에서 간섭하고 빼앗아가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성욕은 사람을 지탱하는 것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는 것”

    2013년 공연한 행위예술 ‘욕망과 국가의 통제’.

    하는 즐거움, 당하는 즐거움

    “성욕은 사람을 지탱하는 것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는 것”

    ‘섹시 미미-방문에 기댄 여인’ 2003년 작.

    이혁발을 이야기할 때 2003년 개인전 ‘섹시 미미’를 빼놓을 수 없다. “섹시 미미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자라면서 느낀 여성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모델, 성매매 여성, 가정부 등 여성성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성적 모습을 보여준다. 짙은 화장과 하이힐, 굵은 웨이브 머리카락, 볼록한 가슴과 가는 허리. 검은색 가터벨트로 몸을 조인 여자가 농염한 섹시미를 드러내며 유혹의 눈빛을 보낸다.

    그런데 전시된 사진들을 둘러보던 관객은 이내 경악한다. 섹시 미미의 치마가 들춰지며 남성 성기가 노출된 사진 때문이다. 모델이 여자인 줄만 알았던 관객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모델이 바로 이혁발인 걸 알고 또 한 번 놀란다.

    ▼ 직접 여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는데.

    “원래는 모델을 섭외하려 했는데 돈도 없었고, 하겠다는 모델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모델이 되고, 사진도 직접 찍었다. 결과적으로 훔쳐보는(관음) 것과 훔쳐보기 당하는(관음 대상), 이중적이고 복잡한 심리 상황이 잘 표현됐다. 욕망하거나 욕망의 대상이 되거나 둘 다 즐거운 일이다. ‘행복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 준비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5년 동안 준비했다. 옷값도 만만치 않아 경제적 어려움도 컸다. 남자인 내가 S라인 몸매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헬스클럽에 다니며 피나는 노력 끝에 31인치였던 허리를 27인치까지 줄였다.”

    ▼ 단순히 여장남자를 표현한 것은 아닌 듯하다.

    “언론을 통해 트랜스젠더를 알게 되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성형외과 광고를 보면 성형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 보여주지 않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드라마틱한 게 트랜스젠더였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바뀐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트랜스젠더와는 또 다른, 쉬메일(Shemale)이란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여성스러운 몸에 남자 성기가 달린 사람들이다.”

    ▼ 성 전환 수술을 하기 전 트랜스젠더를 말하는 건가.

    “꼭 그렇지는 않다. 가슴 성형수술은 했는데 남성 성기는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완벽한 여자가 되려 하기보다는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관계를 할 때 왕성하게 발기한다. 나는 그들을 ‘얌자’라고 명명했다. 그들의 심리와 상태가 궁금했고, 그걸 작품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페르소나, 아니마, 페티시

    그는 “섹시 미미는 일종의 가면놀이”라고 했다.

    “남성 속에 있는 여성성을 표현함으로써 ‘과연 당신은 당신의 존재,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관객에게, 내 안의 가면을 벗으면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persona)을 쓰고 살아간다. 사회적 기대나 요구에 맞춰 연기하는 것이다. 가령 한 가정의 가장은 아내나 자녀 등 가족 구성원의 기대와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 가면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려 하기도 하지만, 가면은 가면일 뿐 진정한 자기 본래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 문득 가면을 벗고 진정한 ‘나’를 찾고 싶어 할 때가 있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남성 안에 여성성, 즉 ‘아니마’가 있다고 했다. 이혁발은 그 내재된 여성성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일본 작가가 ‘모든 남자는 페티시(fetish) 취미를 갖고 있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느 남자에게나 여성의 물건을 통해 성적 쾌감을 느끼려는 심리가 있다. 여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여성의 물건을 사용하고 그걸 즐기는 것이다. 나도 여성 스타킹을 좋아하는데, 신으면 조여지는 데서 오는 성적 쾌감이 있다. 그래서 ‘스타킹 모뉴멘트’란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쉬메일(얌자)도 그런 페티시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 사회에서 쉬메일은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보다 더 이해받기 어려운 존재 같다.

    “60억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성적 지향이 있다. 그걸 획일화, 단순화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쉬메일에겐 남자와 여자, 게이, 트랜스젠더와는 또 다른 독특함이 있다. 보통 여자들이 갖지 못한 매력도 있다. 인간의 성을 연구하는 데 그만큼 재미있는 소재가 어디 있나.”

    2005년 연 ‘이혁발의 정액전-이 시대의 춘화도’도 그만의 기발함을 느낄 수 있는 개인전이었다.

    “남자들은 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다. 나도 자위를 할 때 야한 여자 사진을 펴놓고 했다. 사정으로 정액이 번진 사진을 보면서 ‘아 이걸 작품으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실제 생활이기도 해서 남자들의 현실을 보여준 거다. 페트병에 정액을 모아 프린팅한 사진에도 뿌리고, 드로잉한 그림 위에 뿌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정액은 번지는 효과가 생각보다별로였다. 오히려 물을 뿌린 게 효과가 더 좋았다.”

    “신은 왜 항문에 성감을?”

    “성욕은 사람을 지탱하는 것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는 것”

    정액을 이용한 작품. ‘너를 사랑하고도 외로운 나는’ 2005년 작.

    쉬메일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화제가 동성애로 옮겨갔다.

    “영화를 보면 이성애자이던 남자가 동성에게 강간당한 후 동성애자로 바뀐다는 설정이 종종 나온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한번 당했다고 해서 성 정체성이 바뀌지는 않는다. 강간당하면서 성적 쾌감을 느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성애자가 한순간에 남자 자체를 좋아할 순 없다.”

    그는 말이 나온 김에 항문 섹스에 대한 편견을 깨야 한다고 했다.

    “흔히 변태라고 생각하는데, 항문에도 분명 쾌감이 있다. 신은 왜 거기에도 쾌감을 줬을까. 섹스가 아이를 낳기 위한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신은 인간에게 쾌감이란 걸 줄 필요가 없었다. 섹스의 쾌감을 줬으니까 70살, 90살이 되어도 섹스를 하는 것이다. 성기와 똑같이 항문에서도 쾌감을 느낄 수 있고 윤활액도 나온다. 쾌감을 느끼니까 동성애자들이 항문 섹스를 하는 거다. 남자들은 사정을 하면 그걸로 오르가슴이 끝나지만 항문으로는 멀티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하더라. 그래서 부부 간에도 항문 섹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회음부를 애무해주는 게 좋다. 거기서 오는 쾌감이 있다.”

    ▼ 일반인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변태라는 소리 안 들어봤나.

    “곧 커밍아웃을 할 거란 소리도 들었고, 섹스만 밝히는 변태란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오해를 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 작업 주제를 바꿀 생각은 안 해봤나.

    “내가 하고 싶고,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작업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작업이기도 하다. 그걸 내가 하는 것일 뿐이다. 외설은 기본적으로 권력자나 도덕주의자들이 만든 틀이다.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은 차라리 괜찮다. 오히려 초기에 ‘튀려고 이런 걸 하느냐’ ‘유명해지려고 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말을 들을 때가 더 기분이 나빴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 내가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하는 걸 보고 오해를 풀었다고 할 때 진심이 통한 것 같아 뿌듯했다.”

    ▼ 좋아하는 여성상이 있다면.

    “마조히즘적인 취향이 있지 않나 싶다. 꿀벅지라고 하나, 허벅지가 튼실한 여자를 좋아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나 에어로빅 하는 여성에게 섹시함을 느꼈다. 내 작품 중에 양 허벅지 사이에 내 얼굴을 내민 게 있을 정도다. 그런데 좋아하는 스타일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육체적 매력은 금방 싫증을 느끼게 마련이다. 성적 쾌감에 한계가 있는 법이다. 결국 영혼이 서로 교감해야 한다. 거기서 오는 만족감이 여운이 길게 간다.”

    육체적 쾌감 통해 得道

    “성욕은 사람을 지탱하는 것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는 것”

    2014년 안동행위예술제에서 공연한 행위예술 ‘육감도-찰라’.

    그는 2006년 12월 서울 생활을 접고 이곳 안동으로 내려왔다.

    “서울에 30년 넘게 살았는데, 너무 오래 살았다 싶었다. 잔디밭이 있는 곳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었고, 포도주를 만들고 싶었다.”

    ▼ 서울에 있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포기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나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소외되는 부분이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서울에 있을 때는 강의도 나가고 여기저기 원고도 쓰고 해서 수입이 있었다. 여기 내려오니까 그런 게 없어졌다. 이런저런 인터뷰도 들어오곤 했는데 여기 내려오니까 그런 기회도 없어졌다. 기자들이 여기까지 내려오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나를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기는 미안하니까 아예 안 하는 거다. 그래도 잘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연과 살아야 한다. 여기 와서 성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 어떻게 바뀌었나.

    “전엔 성에 대해 ‘즐기면서 살자’는 표피적인 접근이었다면 지금은 보다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고 관조한다고 할까. 나이 먹으니까 늘어난 주름살만큼 생각도 달라졌다.”

    그의 말처럼 2008년 안동에서 열린 9번째 개인전 ‘안동(安東)에서 안녕(安寧)을 묻다-영혼의 안식(安息)’전은 성적인 것에 대한 발칙한 상상력은 여전하지만 생명과 영혼, 안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안동의 평화로운 마을과 자연 위에 성적 순간을 상징하는 에로틱한 이미지들이 둥둥 떠다니는 초현실주의 화풍이 눈길을 끈다.

    “내가 상상하는 이상향이라고 할까. 몰랑몰랑하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그리고 섹시하고 달콤한 이미지를 많이 담아냈다.”

    최근 그의 그림들은 ‘육감도’란 타이틀을 달고 있다. 육감도는 현실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이상적 공간, 지상 극락을 상징한다. 육체적 쾌감으로 득도(得道)의 경지에 가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양반 도시’의 누드 퍼포먼스

    “성욕은 사람을 지탱하는 것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는 것”

    ‘육감도-싱싱한 다리를 한입 깨물고’ 2012년 작.

    안동에 내려온 후 겪은 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크게 변화시켰다.

    “원래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인간으로서 겪는 죽음의 공포를 내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그런데 자연을 보면서, 사는 게 별것 아니라 평범하게 사는 게 위대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다 죽는 게 인생이란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내가 사는 것이라는 걸 전에는 미처 몰랐다.”

    하지만 결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공개구혼을 하기도 했지만 좀처럼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결혼을 포기하려는 순간,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런 게 인생인 모양이다.

    “7년 전에도 만났던 여성이다. 그땐 그냥 스쳐 지나갔는데 인연이 있어 다시 만나게 됐고, 서로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결혼할 사람도 성에 대한 생각이 같은지를 묻자 “보수적”이라며 웃었다.

    “내가 행위예술 공연을 할 때 누드 퍼포먼스를 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우리끼리 부부 10계명을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는 발가벗지 않는다’를 꼭 넣자고 하더라.”

    안동은 ‘양반의 도시’답게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 그의 그림은 이 지역에서 볼 때 사문난적(斯文亂賊)이었을 게다. 더욱이 그는 하영은 한국누드모델협회장과 함께 누드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소통 불소통-역지사지’란 작품이다. 둘은 서로 손짓 발짓하며 소통하려 하지만 소통이 되지 못한다. 둘이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소통을 하려 하지만 역시 되지 못한다. 둘은 서로 옷을 바꿔 입고 다시 대화를 시도하지만 역시 불통. 두 사람은 객석의 관객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소통하려 하지만 역시 불통한다는 내용이다.

    “성욕은 사람을 지탱하는 것 예술은 금기를 건드리는 것”
    “누드 퍼포먼스도, 이런 내용의 전시회도 안동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노인이 방명록에 ‘이건 작품이 아니라 쓰레기’라고 쓰고, 내게도 직접 그런 말을 하더라. 포스터에도 ‘미친놈’이라고 쓰고 찢으려고 하기에 포스터에 욕은 써도 좋은데 찢지만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런 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인 반응은 좋다. 지난해 12월 안동행위예술제를 열었는데 분위기가 좋았다. 내년에 또 할 거다.”



    “그림이 왜 안 팔리는지…”

    그는 살고 있는 집에 ‘육감도’란 명패를 내걸었다. 그림에서 표현한 지상극락의 세계를 이곳에 현실화하겠다는 의미다.

    “육감도를 확대하고 싶다. 에로틱 미술관도 만들고, 성적인 문제로 갈등하는 부부들을 위한 부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싶다.”

    ▼ 부부 프로그램?

    “육감으로 성을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공간이다. 맨발에 나체로 산책도 하고, 담요 하나 깔고 나체로 풍욕도 즐긴다. 눈을 가린 상태에서 춤을 추고, 서로를 만지게 하는 등 육감을 최대한 열고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의 발을 씻어주고 혀로 핥아주는 것도 좋다. 느껴지는 감각이 확실히 다를 것이다. 이렇게 온몸의 육감을 활짝 열게 한 후 부부가 결합하게 하면 성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성 트러블을 해소하기 위한 테크닉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오럴섹스 하나만 잘 알아도 부부관계가 좋아진다. 그런데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남자들은 대부분 그걸 원한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그 기술을 배우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래서 다른 곳에서 받게 되고, 바람을 피우게 되는 거다. 섹스는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 속궁합이 맞아야 한다. 속궁합이 맞는다는 것은 욕망의 강도, 오르가슴에 이르는 속도와 강도, 원하는 부분이 서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마시는 취향과 주량, 속도가 비슷한 사람이 잘 맞는 술친구인 것처럼. 다행히 결혼할 친구와는 속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웃음).”

    ▼ 또 다른 계획은.

    “책을 쓰고 싶다. 두 권 정도 구상하고 있다. 하나는 여체 탐미에 관한 것이다. 허리, 엉덩이, 가슴 등 여체의 각 부위를 화가의 시각에서 미학적,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2001년 ‘누가 그림 속의 즐거움을 훔쳤을까’를 펴냈는데, 성에 대한 그때 생각이 지금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육감도’란 제목으로 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그림은 잘 팔리느냐고 묻자 “다 알면서 왜 묻냐”며 웃었다,

    “내 그림이 집에 걸어놓기 민망한 모양이더라. 몇 년 전 기획전을 하는데 한 외국인이 내 그림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하더라.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올려 세계인을 대상으로 내 그림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그리는 사람이 전 세계에 나 하나니까.”

    ▼ 그래도 육감도 시리즈는 과거 작품들보다 많이 순화시킨 느낌이 든다.

    “그림을 팔아야 하니까(웃음). 이 정도면 걸어놔도 될 것 같은데, 왜 안 팔리는지 모르겠다.”

    그의 그림이 화랑이나 미술관이 아닌 공공장소에, 일반 가정집 거실에 아무렇지 않게 걸릴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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