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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인증 받은 성지농장 대표 이범호

  • 글·김지은 기자, 사진·김형우 기자

‘동물복지’ 인증 받은 성지농장 대표 이범호

‘동물복지’ 인증 받은 성지농장 대표 이범호
“동물도 행복하게 살다 갈 권리가 있다.”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성지농장에서 사육하는 돼지 2500여 마리는 폭신한 톱밥이 깔린 돈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방목장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자란다. 사료는 독일에서 수입한 첨단 급여 시설을 통해 각 개체의 건강 상태와 크기 등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한다. 새끼를 낳은 후 20여 일간의 예민한 시기를 제외하면 새끼와 어미가 격리되거나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일도 없다. 2012년 돈사 전체를 동물복지시설 기준에 맞게 재정비하면서 사육두수를 약 30% 낮춰 사육밀도도 1.5배가량 낮아졌다.

현재 국내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 농가는 65개소. 이 가운데 돼지사육농장은 단 3개로, 그나마 하나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립축산과학원이다. 2012년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 도입 이후 단 2개 돼지농장만이 인증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기준이 까다로운 탓도 있지만 시설물을 전면 교체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동물복지가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6월 동물복지 인증을 획득한 성지농장의 이범호(63)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농가 중심 주식회사 도드람을 설립했다. 지금은 성지농장을 포함한 10여 개 축산농가가 함께하는 축산식품전문기업 돈마루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 대표가 동물복지에 눈뜬 계기는 24년 전 농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회사의 모델을 찾으려 미국과 유럽 등지의 축산 농가들을 방문한 것. 네덜란드에 ‘웰페어 팜(welfare farm·동물복지농장)’이 도입됐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꿈꾸던 농장의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한다.

“돈사에 깔짚이 두둑이 깔렸고, 그 위로 돼지들이 맘대로 돌아다니더라. 거기서 새끼도 낳고, 밥도 먹더라. 하지만 그때는 그런 모델이 국내에서 실현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돼지를 기르려면 농장을 아예 새로 짓고 시스템도 다시 구축해야 하는데, 그걸 마련하는 동안에 기존 돼지들은 갈 곳이 없어지니까. 지금도 그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농장이 많다.”

동물복지의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막연히 동경만 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2011년 구제역 사태로 사육 중이던 돼지를 전량 살(殺)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텅 빈 돈사를 바라보며 실의에 빠진 그는 ‘지금이야말로 동물복지농장을 시도할 절호의 기회’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려움도 많았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일이다보니 마땅히 물어볼 곳도, 참고할 만한 사례도 없었다. 유럽 자료는 국내 현실과 맞지 않는 면이 많았다. 사람도 문제였다. 동물복지 개념이 없는 직원들에게는 기존 사육 방식을 버리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동물복지에 대한 기업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인적자원까지 갖추고 나서야 본격적인 운영이 가능했다.

“시설을 아무리 잘 갖춰놓아도 동물을 발로 차고 때려서 다스리는 것은 동물복지와 거리가 멀다. 힘들고 더디게 가더라도 사명감을 갖고 참된 동물복지를 실현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사명감’이라는 말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식용 가축을 기르는 농장에서 동물의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 대표의 대답은 명쾌했다. 가축을 식용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지만, 가축의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삶까지 억압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길러진 가축을 식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는 앞으로 동물복지에 관심이 있는 농가들을 대상으로 컨설팅과 지원 사업을 할 생각이다.

“채소에 된장을 찍어 먹는 것만이 웰빙은 아니다. 항생제 없이, 좋은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자란 우리 고기를 섭취하는 것 또한 웰빙이다.”

‘동물복지’ 인증 받은 성지농장 대표 이범호

신동아 2015년 9월 호

글·김지은 기자, 사진·김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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