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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열정과 도전 - 송상현 회고록

어린 시절 이야기 1941~1963

염천에 악취 풍기던 시체… 전쟁이 나를 法으로 이끌어

  • | 송상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제2대 국제형사재판소장

어린 시절 이야기 1941~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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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배낭을 멘 채 집을 나와 식량을 구하러 창동으로 갔다. 애호박, 가지, 오이, 토마토, 감자 등을 얻을 수 있었다. 길에 널려 악취를 풍기는 시체를 참으로 많이 보았다. 커가면서 인간은 왜 꼭 전쟁을 해야만 하며 전쟁을 통해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에 빠지곤 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 1941~1963
<유명 인사들이 남긴 글 중에는 스스로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용기를 보여주는 참회의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니나 회고록은 어차피 자기합리화나 자랑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나는 1941년 12월 21일 경기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 281번지(서울 도봉구 창5동)에서 부친 원남(苑南) 송영수와 모친 송원(松苑) 김현수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생가는 1939년경 고하(古下) 송진우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가옥인데 당시의 경제 사정을 반영하듯 공사가 지지부진하고 건축 자금이 모자라 안채의 대청과 마루의 겉 분합문도 미처 달지 못한 채 신혼인 나의 부모님이 입주했다. 이 집 안방 뒤에 붙은 2칸의 골방 중 하나에서 내가 태어났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에 미달한 상태로 창동초교에 입학해 약 2년간 다니다가 창동을 떠나 사대문 안으로 들어간 후 돌아오지 못했으나 어릴 적 살던 명륜동 31의 9번지 전셋집이나 원서동 74번지 고하 할아버지 댁에서 미아리고개를 넘어 무네미(물넘어라는 명칭이 와전된 동네 이름인데 현재 수유동에 해당), 말미, 쌍감리(쌍문동), 벌리(번동)를 지나 창동까지 수없이 걸어 다닌 어린 시절을 회고하곤 했다. 그때마다 이 산자수명하고도 평화로운 농촌인 창동 마을이 서울로 편입된 뒤 어쩌면 그렇게도 평화롭던 농촌의 흔적이 깡그리 없어져 버렸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 아름다운 산이 원근으로 알맞게 병풍을 친 전형적 농촌 마을인 창동리가 비옥한 문전옥답을 끼고 형성됐는데 물이 늘상 풍부한 동네여서 가뭄을 모르는 곳이었다. 태극당 제과점이 있는 돈암동 전차 종점에서 시작되는 미아리고개가 높이를 낮추고 길을 넓혀 다니기가 좀 수월해진 것은 수십 년 뒤의 일이기에 내가 어릴 적에는 꽤나 높고 좁은 미아리고개를 힘들게 걸어 넘으면서 사대문 안에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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