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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 | ‘비핵화’ 동상4몽 |

신동아-미래연 연중기획 중·국·통 |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주한미군 미국에 ‘계륵’ 될 것”

  • | 이문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신동아-미래연 연중기획 중·국·통 |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 ● 평화체제 협상 시 주한미군 철수 논의 불가피
    ● 가난 탈출 의지의 강도가 비핵화 가를 것
    ● 평양 열리면 중국-한반도는 지경학적 운명 공동체
    ● 美, 中 견제 수단으로 북핵 이용해와
    ● 북한·한미동맹이 한중관계에 악영향
    ● 한반도 문제 해결 궁극적 열쇠는 경제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진징이(金景一·65) 베이징대 교수는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태어난 중국인이다. 한국인, 북한인과 정체성 일부를 공유한다. 부모 고향이 각각 함경북도 명천, 청진이다. 한국식 이름은 김경일. 중국인이면서 한국, 북한을 이해하는 학자다. 

신동아-미래전략연구원 연중기획 ‘중·국·통’이 한국의 중국통이 아닌 한국, 북한과 정체성 일부를 공유하는 그를 만난 것은 내부자 시선으로 중국의 대(對)한반도 관(觀)을 들여다보면서 평양의 오늘을 살피는 베이징의 시각을 소개하려는 의도다.


“핵 포기 동력은 가난 탈출 의지”

그는 옌볜대 중문학부를 졸업하고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 조선문화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한국에서도 연구했다. 일본 게이오대 지역연구소 객원교수를 지냈다. ‘중국의 한국전쟁참전기원’ ‘한반도 지정학 의의와 그것이 중국에 미치는 영향 연구’ 등의 저서와 눈문이 있다. 

그는 2001년 10월 조선문화연구소에 한반도문제포럼을 발족해 한국·북한·일본 대학 및 연구기관과 교류해왔다. 현재도 한반도문제포럼 주임을 맡고 있다. 17년 동안 한반도문제포럼을 거친 석·박사 연구생이 중국 대학, 연구·국책기관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룬다. 6월 23일, 7월 9일 그와 동북아 정세를 주제로 인터뷰 했다. 

북한 외무성이 7월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방북 직후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에 직면했다”면서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먼저 종전 선언을 하자는 주장이고 미국은 신고와 검증부터 하자고 강조합니다. 결국 서로가 협상에 앞서 기싸움을 벌이는 격입니다.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것 같지만 북·미 모두 협상 의지가 강하고 협상을 깨자는 의도는 없어요. 시작부터 동시 원칙이 적용돼야 할 겁니다. 한쪽이 성의를 보이면 다른 한쪽도 성의를 보여주는 주고받기식 동시 원칙으로 신뢰를 쌓아가며 협상해야 해요.”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도 한국에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옵니다.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꿰었다는 긍정적 견해와 확실한 담보 없이 미국이 양보만 했다는 부정적 의견으로 나뉩니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봅니까.

 
“전쟁 난다고 난리 아니었습니까. 두 정상이 한자리에 앉은 것만으로도 새 역사를 쓴 거죠. 왕이(王毅) 외교부장 말처럼 북·미 정상이 마주 앉아 평등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역사를 펼친 겁니다. 양국 정상이 서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신뢰를 증진했습니다. 그 같은 기초 위에 비핵화의 기본 틀을 마련한 게 성과입니다. 비핵화 의지가 절박하지 않고 상호 신뢰가 결핍되면 아무리 좋은 합의도 깨질 수 있습니다.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선언이 그 같은 예입니다. 성과를 거둔 것은 북·미가 타협하고, 양보한 덕분입니다. 어느 한쪽만 양보한 게 아니에요. 비핵화 시간표를 확정하는 문제와 CVID에서 V와 I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북한을 사실상 패전국처럼 다루는 것입니다. 중국은 북·미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을 높이 평가하며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봅니다.” 

CVID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를 뜻한다. 

“북핵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미국이 CVID를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북한은 동의한 적이 없어요. V, I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핵 과학자를 모조리 외국으로 이주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트럼프가 ‘김정은이 자신의 주민을 무척 사랑한다’고 말한 대목이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핵을 포기할 가장 큰 동력은 가난으로부터 주민을 벗어나게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트럼프가 이 대목에서 신뢰를 가진 것 같습니다.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와 관행이 때로는 눈과 귀를 가렸다’는 김정은 발언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북한의 과거를 부정한 거예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7월 6~7일 방북에 앞서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그는 “김정은은 김정일과 확실하게 다르다”고 봤다. 

“박정희 대통령도 국민을 가난에서 탈출시키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최빈국으로 남을지, 부강한 나라를 지향할지의 기로에서 김정은이 훌륭한 선택을 하고 있어요. 경제 발전 목표가 강할수록 비핵화 의지도 강화됩니다. 김정은이 경제 발전에 대한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일과 확실히 다른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중 접경 지역인 신의주의 방직공장을 시찰하는 모습을 전한 노동신문 7월 2일자 1면 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중 접경 지역인 신의주의 방직공장을 시찰하는 모습을 전한 노동신문 7월 2일자 1면 사진.

김정은 정권이 경제 발전을 우선하겠다는 의지를 연거푸 표명하면서 북한이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을 따르리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중국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한의 개혁·개방 초기 조건은 유리한 측면도 있고, 어려운 조건도 있습니다. 

“김정은이 북한판 덩샤오핑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경제가 붕괴 직전에 이르면서 개혁·개방하지 않으면 지구에서 적(籍)이 사라진다고 할 만큼 절박했습니다. 막대한 대가를 치른 문화대혁명이 역설적으로 개혁·개방 동력을 제공했어요. 경제가 엉망진창이던 터라 기득권 세력 반발을 무마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침통한 교훈이 개혁·개방을 성공으로 이끈 겁니다.” 

북한은 어떨까요. 

“중국이 변화할 때 북한도 개혁·개방을 시도했으나 1980년대 중반 경제가 절정을 누렸기에 평양은 베이징과 같은 절박감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달라요. 중국이 문화대혁명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면 북한은 30년 핵개발로 거대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 숱한 사람이 굶어 죽었습니다. 전대미문 제재를 받으면서 치른 대가도 크고요. 북한도 개혁·개방이 절실합니다. 핵 개발 30년이 있었기에 본격적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동력이 생겼다고 봅니다. 김정은이 김정일 시대를 사실상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성공 여부는 나라를 최빈국에서 탈출시키고 주민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의지에 달렸습니다. 김정은 집권 6년을 거치면서 이 같은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이 성공할지는 김정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에 달렸습니다.”


“통제 느슨해지고 도시에 활력 생겨”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는 “평양의 옷차림이 서울을 닮아가고 있다”고 했다. 4월 6일  평양 거리를 걷는 여성들을 촬영했다. [공동취재단]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는 “평양의 옷차림이 서울을 닮아가고 있다”고 했다. 4월 6일 평양 거리를 걷는 여성들을 촬영했다. [공동취재단]

평양을 자주 찾는 것으로 압니다. 북한 경제의 현재는 어떻습니까. 

“이게 제재받는 나라냐 싶더군요. 식당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습니다. 중국 자본과 합작해 세운 대형마트에 방문했는데 예전에는 둘 중 하나가 중국 상품이었는데 현재는 10개 중 8개가 북한 제품입니다. 또 놀란 게 소주 있지 않습니까? 한국에는 소주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는데 언제부턴가 북한 마트에 70~80개 종류의 소주가 진열돼 있습니다. 제조업이 일어서는 것입니다. 모든 걸 국산화하겠다고 해요. 질은 떨어지겠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더군요. 중국 상품을 어떻게 퇴출했느냐고 물으니 인민들이 국산을 더 선호한다고 답하대요. 도시 분위기도 바뀌었어요. 김정일 시대와 비교하면 사람들이 해방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개방적이다? 

“아뇨. 해방된 느낌. 통제가 느슨해졌어요. 예전에는 말을 조심조심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습니다. 큰 변화가 일어난 거죠. 도시에 활력이 생겼습니다. 걸음걸이가 바뀌었어요. 굉장히 기운찹니다. 주민들의 옷 색깔도 서울을 닮아갑니다. 2004년, 2005년 평양에 한 달씩 거주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요. 당시는 도시 전체가 굉장히 우울했어요.”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 때 중국 고위층 전용기를 이용해 싱가포르로 향했습니다. 


“그것도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지켜봐야겠지만 한반도에 행운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서면 한·중이 협력할 일이 많습니다. 

“북한이 문만 열면 자의든 타의든 중국과 남·북한은 지경학(地經學·geoeconomics)적으로 운명의 경제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중국과 한국이 북한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협력보다 경쟁을 우선시할 수 있습니다. 갈등의 소지가 있는 것이죠. 중·한은 경쟁이 아닌 협력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특히 개혁·개방 주체는 북한 주민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개혁과 변화가 주민에 의해 주도되고 진행돼야 합니다. 한국이 북한을 변화시켜 개혁·개방을 주도하겠다는 생각은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이 주체가 돼 변화가 이뤄져야 해요. 중·한 협력의 역할은 개혁·개방에 이로운 조건과 환경을 북한에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연합훈련 중단은 美가 진정성 표명한 것”

한국에서는 북한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북한이 2000년대 들어와 외부 투자를 받아들일 때 중국도 이런저런 교류에 나섰습니다. 중국으로서 대북 투자 선점의 좋은 기회였는데 날린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서면 중국이 이제는 단독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한국, 일본, 러시아 등과 경쟁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동북 3성은 대북 경제 교류에 달뜬 모습이더군요. 

“북한이 개혁·개방하면 가장 득을 보는 곳은 중국의 동북지역입니다. 한때는 경제 견인차로 불리던 곳인데 지금은 가장 뒤처졌습니다. 중국에서 발달한 지역은 바다 등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곳입니다. 동북은 뻗어나갈 데가 없잖아요. 철도가 한반도로 연결되면 동북에서 건설 붐이 일어날 겁니다. 북한의 상황도 똑같을 것이고요.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무궁무진한 자원이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 러시아 극동지역, 북한이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중심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남·북한과 동북지역이 하나의 경제 블록을 이루면 미국과 일본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미국·일본 자본도 들어간다? 

“다수 경제 전문가들이 북한이 문을 열면 돈벼락 맞는다고 합니다. 평양이 기대하는 게 일본 자금입니다. 북·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식민지 배상금이 들어가면 동북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 한국에서 논란을 일으킵니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줄기차게 반대해왔습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은 해마다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키고 위기를 불러오는 중요한 원인이었고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말함으로써 미국이 가진 북핵 해결 의지와 진정성을 강력하게 표명한 것입니다. 훈련이야 중지했다가도 언제든 재개할 수 있으나 의지와 진정성을 표명한 게 중요해요. 북한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요.”


“평화체제와 주한미군 철수 연동될 것”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로 나아가는 신호탄이란 우려가 한국에서 나옵니다. 

“주한미군 주둔이 전제인 동북아 역학 구도가 있습니다. 미군이 빠져나가면 역학 구도가 어디로 튈지 몰라요. 주한미군이 빠져나간 틈에 일본이 들어오는 것은 중국도 원하지 않습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문제는 별개라고 봅니다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거론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53년 맺은 정전협정에는 3개월 내 고위급 정치회의를 열어 모든 외국 군대가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문제를 논의한다고 돼 있습니다.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이동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주한미군 최종 철수는 한반도 평화체제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체제와 연동돼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한미군 철수로 야기되는 공백이 또 다른 지각 변동을 일으켜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주한미군은 6·25전쟁과 냉전의 산물입니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주한미군은 미국에도 계륵이 될 수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단순히 한반도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질서 형성을 의미합니다. 중국과 미일동맹의 대립이라는 커다란 구조와도 연동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넘어 ‘동아시아 평화체제’라는 시각에서 미국과 중국이 큰 그림의 합의를 만들어낼지가 관건입니다. 중국이 그리려는 큰 그림은 뭡니까. 

“한반도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평화가 정착된 적이 없습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동북아 질서를 좌우하는 지각변동의 발원지였습니다. 강대국의 전략이 지정학적 갈등과 충돌을 빚으면서 한반도를 무대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동북아 평화도 구축될 수 없습니다. 동북아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이렇다 할 협력체조차 꾸리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이 동북아 역학 구도에 지각변동을 일으켜 중·미 갈등이 지역 내 주요 모순으로 떠올랐습니다. 중국이 계속 발전하면 중·미 관계는 앞으로도 대립과 협력이라는 이원 구도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중·미가 함께 큰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운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중·미 관계는 동북아의 다른 국제관계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북한의 협력, 중·일·한 협력, 아세안과 동아시아 나라들의 협력이 연동해 중·미 협력을 추동해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중국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동북아, 나아가 동아시아에 고차원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 ‘동아시아 경제 블록화’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동북아 패러독스

평화체제 논의 과정에서 중국이 바라는 그림은 구체적으로 뭡니까. 

“한반도 평화체제는 기존에 동북아에 없던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겁니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평화체제는 평화를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겁니다. 동북아 다자안보체제와 지역경제 블록화를 통한 경제협력체가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게 평화체제 형성입니다. 문제는 ‘실질적 평화’예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충분조건이 있느냐고 물으면 실질적 평화라고 답하겠습니다. 실질적 평화가 이뤄지면 ‘정전협정’은 자연히 무력화하고 ‘평화협정’의 실천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 말한 것은 하나의 가설이고 이상이라고 하겠습니다만 ‘협정’에 의한 제도적 장치보다 ‘평화 의지’에 의한 상호신뢰, 상호협력, 상호의존이야말로 항구적 평화의 원동력이 될 겁니다.” 

‘동북아 패러독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한·중·일 3국은 경제적 의존성이 높은데도 안보·정치 분야 협력은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다자안보체제와 경제 블록화는 유럽연합(EU) 모델을 좇는 겁니다. 한·중 사이에도 경제적 상호 의존은 커지는데 안보 협력은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입니다. 

“동북아에서 큰 전쟁이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지정학적 충돌의 근원지가 한반도였고요. 강대국들이 한반도 주변을 맴돌면서 서로 충돌하고 다퉜습니다. 이제는 그 같은 패턴에서 벗어나봅시다. 남북이 손잡고 경제협력을 하면 누가 막겠습니까. 한반도 문제를 컨트롤하려는 강대국의 전략에 휘둘리지 말아야 해요. 개인 의견이지만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북핵 문제를 충분히 이용했습니다.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데도 북한을 활용했고요. 어렵겠지만 남북이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적 운명 공동체를 구성하면 강대국의 전략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정학적 요소를 약화시키고 지경학적 요소를 강화해야 합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글로벌화, 지역경제 블록화의 흐름을 타도록 하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문제를 푸는 궁극적 열쇠는 경제에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강 기적 이룬 韓-급부상한 中 ‘강 대 강’으로 만나”

진징이 교수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정학적 요소를 약화시키고 지경학적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도균 기자]

진징이 교수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정학적 요소를 약화시키고 지경학적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도균 기자]

지정학적 차원이 아닌 지경학적 차원에서 새 판을 짜보자? 한국의 한반도 신경제구상,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 어울릴 수 있을까요. 

“철도 인프라부터 깔아야 해요. 원산에 가봤는데 김정은이 그곳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다녀온 중국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그 나라가 개혁·개방하면 발전 속도가 중국보다도 빠르리라는 겁니다. 북한은 교육열이 굉장히 높습니다. 지하자원도 풍부하고요. 중국과 비교해 도시가 매우 깨끗합니다. 엄청나게 높은 자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중국에서는 일대일로와 한국의 신경제구상, 북한이 마련한 자체 로드맵이 하나로 연동되는 협력체를 구성하면 엄청난 화력을 가지리라고 얘기합니다. 앞서 말했듯 중국과 한국이 북한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경쟁해 서로의 힘을 약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사드 문제 등으로 중·한 간 신뢰가 크게 약화돼 있지 않습니까. 한중관계가 좀 더 돈독해져야 북한과 협력이 더 잘 이뤄질 거예요.”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얽힌 탓에 한·중 양국 국민은 물론이고 전문가들마저 서로를 잘 안다는 허구적 믿음을 갖고 있어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한·중 양국이 가진 상호 인식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아주 정확하면서도 중요한 얘기를 했습니다. 잘 아는 거 같으면서도 잘 몰라요. 특히 중국인은 한국에 한 번 왔다 가면 아는 체하지만 멋도 모릅니다. 한·중 관계의 문제점이 바로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중 관계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사실상 비정상적 관계였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을사늑약으로 시작해 한국이 일본 식민지를 거치면서 두 나라가 단절됐어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6·25전쟁과 냉전이 이어졌고요. 식민지 시대와 냉전 시기 한·중은 적대 관계였습니다. 거의 100년 동안 단절됐다가 다시 연결된 지 26년이 됐을 뿐입니다. 중·한 수교 26년이라는 시간은 그 같은 벽을 넘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중·한 역학 관계 변화로 진통 겪어”

벽을 넘을 수 있을까요. 

“한국은 강국이나 다름없죠. 아시아의 ‘작은 용’ 아닙니까. 중국은 G2로 불리고요. 중국과 한국이 ‘강 대 강’으로 만났으니 인식을 조절할 게 많습니다. 중국은 19세기 아편전쟁 때부터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오랫동안 형편없었죠. 중·한 수교 이후 중국에 다녀온 한국인은 어두운 면을 좀 더 많이 봤습니다. 한국인 처지에서 보면 자고 일어나 보니 중국이 강대국이 돼버린 거고요. 중국에서는 중국대로 한국을 방금 말한 것과 비슷하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돈 좀 있다고 다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어요. 시대 상황에 따라 상대를 복합적으로 인식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과 ‘급부상하는 중국’으로 만났다는 점입니다. 수천 년 교류사에 없던 ‘강 대 강’으로 만난 겁니다. 특히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역학 관계에 변화가 생겼으며 중·한 관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 그에 따른 진통이 뒤따릅니다. 역사적 기억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미래를 지향하면서 역사를 뛰어넘는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소통을 강화해야 합니다. 두 나라가 공유한 역사 기억 중 갈등·충돌·전쟁 같은 기억보다 화해·교류·우호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개방성과 민주성을 바탕으로 시민의 정치 참여가 활발합니다. 중국은 그 같은 점이 부족합니다. 최근 중국 특색의 정치 체제는 권위주의와 공산당의 통제가 강화되는 모습입니다. 한국과 중국이 정치체제에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양상인데요. 이 같은 흐름이 한중 협력을 제약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지금껏 한중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제3자였을 겁니다. 북한과 한미동맹이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아요. 한국 정치제도는 그것대로 장점, 약점이 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역발상하면 양국 관계에 긍정적 측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중 관계와 관련해 한국의 식자(識者)층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한국 언론에 중국에 대한 긍정적 평가보다 부정적 평가가 굉장히 많아요. 한국 언론은 개방된 반면 중국 체제에서는 언론이 한국을 폄하하지 못합니다. SNS에서는 한국을 깎아내리긴 하지만요. 한국 언론이 중국 언론보다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큽니다. 중국인이 북한 관련 정보를 주로 어디서 얻는 줄 압니까? 한국 언론을 보고 북한을 인식합니다.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기에 중국 언론은 북한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중국 학자들이 농담처럼 하는 얘기가 한국 언론 탓에 중국, 한국의 북한 인식이 똑같아진다는 겁니다. 한국 언론의 북한 보도는 오보도 있고, 상황을 오도하는 게 많아요. 그것이 중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 언론이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로 북한을 다뤘으면 합니다.”


“북·미 협상에 어깃장 놓는 일 없을 것”

북핵·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차이나 패싱’이라는 낱말도 등장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봅니까. 

“북·미 관계를 중심으로 상황이 돌아가기에 중국이 좀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겠으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중국은 북핵 문제를 북·미가 해결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북·미 협상에 중국이 어깃장을 놓는 일은 없을 겁니다. 차이나 패싱은 중국 정부에서 우려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 전문가들이 별소리를 다 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일 뿐이에요.” 

그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닭은 알을 깔 수 있지만 돌은 알을 못 깐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닭과 돌의 내적 요소가 달라서인데, 내적 요소가 같아도 외적 요소가 다르면 알에서 병아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따듯하게 품으면 병아리가 나오지만 얼음장 위에 놓으면 그러지 못하죠. 내적 요소뿐 아니라 외적 요소도 중요한 게 남북 관계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요소겠지요. 일단 알을 까야 하니까요. 외적 요소가 강압적으로 식민지를 운영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내적 요소가 외적 요소를 어떻게 리드하고 컨트롤하느냐가 한반도 운명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남북이 먼저 손잡으니 지금 같은 상황이 온 것 아닙니까. 한반도 역사는 남북이 외적 요소를 변화시키면서 만들어가는 겁니다.”


신동아 2018년 8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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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미래연 연중기획 중·국·통 |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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