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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항해’ 나선 한국에 백남준은 영감(靈感)의 등대

우리가 백남준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 이동식 | 언론인, 백남준문화재단 이사 lds@kbs.co.kr

‘창조의 항해’ 나선 한국에 백남준은 영감(靈感)의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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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백남준의 예술적 안목과 예지, 그리고 노력이 미디어가 범람하며 컴퓨터가 지배하는 현대라는 공간에서 전 세계인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줬다는 것이며, 그것이 문화 창조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을 국빈 방문해 이 전시를 둘러봤고, 그날 저녁 스미소니언에서 열린 한미동맹 60년 기념 행사를 주재했다. 이 행사는 백남준 예술이 지닌 창조적 역량을 한미 두 나라 젊은이들이 공유하고 더욱 발전시키자는 뜻에서 장소를 스미소니언으로 택했다. 행사가 열린 홀에는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도 진열됐다.

박 대통령의 첫 미국 국빈 방문 때 열린 중요 행사를 미 의회나 큰 호텔 등에서 하지 않고 스미소니언이라는 예술적인 공간에서 주최한 것은 문화적으로도 중요하고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시도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날 밤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일탈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 행사는 이슈에서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대통령이 몸으로 보여주려 한, 창조경제의 인계철선(引繼鐵線)으로서의 백남준의 역할은 더 이상 살아나지 못했다. 또한 이는 국내에서 백남준을 더욱 살려 그의 뒤를 이을 창조적인 인재를 찾아내고 기르자는 사업이 부진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불 꺼진 ‘다다익선’

‘창조의 항해’ 나선 한국에 백남준은 영감(靈感)의 등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다다익선’. 많은 모니터가 고장 나 최근 수리를 마쳤다.

1992년 백남준 회갑을 기념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그의 작품 ‘다다익선’이 화려한 불을 밝혔다. 나선형의 건물 공간에 절묘하게 1003대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세우고, 각각의 모니터에서 한국이나 세계의 각종 이미지가 섞여 나오는 작품이다. 백남준의 대표작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다다익선’은 그러나 최근 모니터의 절반 이상이 망가져서 전면 수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꼭 2년 전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이용하는 프레스센터 춘추관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 위쪽에 설치된 백남준의 조형 작품 ‘산조(散調)’가 흉물로 방치돼 있다고 한 신문이 지적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은 여전히 수리하지 못하고 있고, 청와대의 ‘산조’도 고쳐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 두 작품만 문제인 게 아니다. 현재 국내 주요 기관이나 건물에 세워진 백남준의 비디오 조형 작품은 상당 부분 모니터를 꺼놓고 있거나 고장 난 채 방치돼 있다. 이유는 모니터가 고장났다거나, 작품을 유지하는 데 전기료가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드웨어 문제는 백남준 비디오 작품의 주요 구성물인 브라운관 모니터가 더는 생산되지 않는 데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가 백남준에 대해 신경을 끄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다다익선’의 여분 모니터 확보율이 9.47%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는데, 이런 모니터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해 아무도 나서지 않아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된 2011년, 그냥 두면 잊힐 수 있으니 백남준을 기억하고 그의 창조정신을 한국인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자며 KBS와 문화관광체육부, 서울시교육청 등이 양해각서(MOU)를 교환했고 그 이듬해 백남준문화재단이 출범했다.

가야금 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황병기 선생을 이사장으로 한 재단에서는 백남준의 예술을 제대로 조명하는 첫 단계로 2013년 그의 작품 목록(catalogue raisonne)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듬해 정부 예산이 끊겼고, 각계의 후원도 이어지지 않아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백남준이 태어난 곳을 기념 장소로 만들거나 어린이들이 그의 창조정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는 몇 가지 시도도 예산이나 시민의식 문제로 답보 상태다.

교과서에 백남준을 싣는 일도 아직 지지부진하다(물론 미술교과서에는 나오지만 그 의미가 잘 살지 않는다). 교과서를 집필하거나 편찬하는 분들이 아직까지 백남준이나 그 예술의 중요성을 잘 모르거나, 알 기회가 없기 때문이리라.

상황이 이러한지라 글의 첫머리에 ‘백남준을 아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백남준이야말로 이 시대 창조의 아이콘임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싸이와 허스트의 공통분모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경기중·고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대로 유학을 떠났고, 독일에서 예술활동을 시작해 미국에서 성공했다. 음악에서 출발해 행위예술, 시각예술을 지나 TV 수상기를 예술의 재료 혹은 수단 삼아 그간 아무도 표현하지 못한 전자예술의 영역을 열었다. 비디오를 마구 쌓고 펼쳐 사람과 역사를 표현했고, 걸어 다니는 로봇도 만들었다. 전 세계 예술인들을 모아 세계 각지를 위성으로 연결해 공연하며 인류 문명의 미래를 진단했고, 기술이 인간에게 아름다운 욕망을 가져다주도록 예술론을 새롭게 펼쳐갔다. 또한 레이저로 시공예술을 추구했으며, 1974년에 전 세계 정보 고속도로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제시해 오늘날의 인터넷 시대를 예견했다. 그가 보여준 TV와 전자통신망의 미래는 21세기 들어 모두 실현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21세기를 내다본 예지자이자 예언가였다.

오늘날 한국이 필요로 하는 창조적 역량,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는 바로 이런 것 아닐까. IT와 과학기술을 중심에 두고 각 산업과 문화를 융합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도출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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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언론인, 백남준문화재단 이사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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