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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기자의 혜민 스님 취재기

“인연의 문이 닫히면 새 인연의 문이 열리죠”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인연의 문이 닫히면 새 인연의 문이 열리죠”

  • 4월 7일 경북 예천군문화회관에서 특강하는 혜민 스님을 만났다.
  • 스님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그를 인터뷰한 지 6년 만이다.
  • 그사이, 국민적 ‘힐링 멘토’ 혜민 스님의 손은 ‘약손’이 됐다.
  • 그의 신작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은 10주 넘게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린다.
“인연의 문이 닫히면 새 인연의 문이 열리죠”

[사진제공 ·예천군청]

2010년 5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만난 혜민 스님은 똑똑하면서도 선해 보였다. 불교의 ㅂ자도 모르는 기자에게, 승려들이 여름·겨울 한곳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하는 하안거·동안거에 대해 한참 설명해주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 같다는 핑계로 나란히 서서 기념 촬영도 했고, 진심을 꾹꾹 담아 “좋은 인연이 되자”는 대화도 나눴다.  


인연이라 부를 만한 만남이 얼마나 될까 싶냐마는 혹 그러한 인연이 찾아온다. ‘젊은 날의 깨달음’(클리어마인드 刊)을 쓴 이와의 만남이 그랬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분과 나의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실은, 실타래처럼 이어지는 인연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좋은 이를 벗으로 삼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그분의 책을 읽으며 인연을 기다렸다. 되새기고 싶은 구절을 찾으면 밑줄도 그었다.

-‘주간동아’ 2010년 6월 7일자 혜민 스님 인터뷰 중에서



“타인에게 관심 가져보세요”

당시 스님은 무명(無名)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그의 인터뷰 기사는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데다 시의성을 다투지 않는 탓에 취재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매체에 실렸다. 기사 게재가 미뤄졌다는 소식을 e메일로 한두 번 알리다 멋쩍어서 그 후로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곤 끝이었다. 정중하게 사과했어야 했는데…. 취재원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느낄 때 숨어버리는 건 나의 나쁜 버릇이다.

하지만 스님이 마음이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전하려 한 ‘특효 처방전’은 잊지 않았다.


보살님들이 자꾸 내 문제를 어떻게 풀까 하면서 자신의 마음만 살피는데, 그걸 놔야 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둘 때 내 문제도 해결되는 거예요. 좀 전에도 어떤 보살님께 문을 살짝 잡아드렸더니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요. 작은 것이라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고민을 풀어줄까, 생각하다 보면 자연히 나도 좋아져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보세요.

-‘주간동아’ 2010년 6월 7일자 혜민 스님 인터뷰 중에서


새겨들었지만, 오지랖 평수만 넓혔을 뿐 그 조언을 실천하지 못했다. 그냥 살아내기에도 바빴다(는 핑계를 댄다).

그사이 혜민 스님은 유명 인사가 됐다. 왜 아니겠나. 하버드대 비종교학 석사, 프린스턴대 종교학 박사,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스님의 프로필만 봐도 호감을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게다. 게다가 미남이고 목소리마저 좋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이 떠나고 마음 둘 곳 찾지 못하던 불자들, 따뜻한 위안이 필요한 많은 이가 스님을 좋아하게 됐을 것이다.

혜민 스님은 온라인 소통의 ‘쓴맛’(악플)도 톡톡히 겪었지만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올 2월에 낸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의 책날개는 ‘혜민 스님은 훈계가 아닌 공감을 통해 삶의 문제에 다가가고, 추상적 의미를 구체적이고도 쉽게 전달하는 화법으로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250만 명 넘는 팔로어와 소통하고 있다’고 전한다. 신문에, 잡지에, 방송에 스님 얘기가 나오면 같은 이름을 가진 나도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혜민 스님이 최근 몇 달째 화제다. 2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펴낸 지 4년 만에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내놨는데 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발간 후 13주 넘게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5월 4일 현재).



‘중환자실’

“인연의 문이 닫히면 새 인연의 문이 열리죠”

혜민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예천군문화회관을 가득 메운 청중. [사진제공 ·예천군청]

책 발간 즈음에 용기를 내 스님에게 연락을 넣어봤다. 출판사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e메일을 달라길래 보내고 나서 일주일을 기다렸다. 또 통화를 하고 한 달여를 기다렸을까. 관계자가 “스님이 메일은 읽어보셨는데, 너무 바빠 인터뷰는 못 하신다고 했다”고 전해왔다.

이번에는 마음치유학교(www.mau mschool.org)의 문을 두드렸다. 혜민 스님이 서울 인사동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주제별 소규모 치유 모임이 마련돼 있다.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서로 위로하고 치유해주자는 취지’로 지난해 3월 시작했는데, 스님과 뜻을 함께하는 다양한 전문가(고미숙, 박미라 등)들이 만들어간다. 홈페이지에는 ‘성적 트라우마를 위로하고 돌보는 미술 치유’ ‘직무스트레스로 힘든 분들을 위해’ ‘만성통증 감소를 위한 몸사용법’ ‘나의 자존감 향상을 돕는 주말 그룹상담’ ‘아픔으로부터 성장을 위한 소규모 그룹상담’ ‘내 미래를 바꾸는 강점 계발 프로그램’ ‘자녀를 독립시키는 부모들의 마음’ 같은 유·무료 프로그램이 소개돼 있다.

여긴 되겠지, 학교를 홍보할 필요도 있을 테니까. 하아,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마음치유학교 관계자의 메일과 통화 내용을 종합하면 “학교가 소개될 만큼 성장하지 않았고, 개인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치유하는 곳이라 공개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혜민 스님이 2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털어놓은 얘기가 진짜 고민인지도 몰랐다. 그때 스님이 그랬다. “서울에서 마음치유학교라는 걸 만들었어요. 사람들을 잘 이끌어가야 하는데 제 마음처럼 안 돼 고민이에요.”

그래도 스님 얼굴 한번 보고 인터뷰를 제안하면 성사되지 않을까. 뉴욕 불광사 부주지이기도 한 스님은 보름간 한국을 비웠다는데 어디로 가야 하지? 인터넷 검색을 하다 경북 예천군문화회관에서 4월 7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혜민스님 마음치유콘서트’를 발견했다.  



내 몸에게 “고맙다” 말해보라

4월 7일 ‘신문의 날’은 기자들의 휴일. 늦잠을 포기하고 새벽 6시에 일어나 택시를 잡아탔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예천 가는 버스를 탔다. 승객은 딱 3명. 2시간 반을 달린 끝에 예천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5분쯤 걷자 예천군문화회관이 보였다. 뜻밖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았다. 처음에는 객석이 비어 군인 한 중대가 자리를 채웠지만 어느새 통로까지 청중으로 빼곡했다. 10시 정각. 혜민 스님이 등장했다. 스님은 “스님이 병실에 있으면 거기가 어딘 줄 아느냐? 중환자실이다”라는 우스갯소리로 강연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행복하세요? 많은 분이 ‘지금은 아직이요’라고 하세요. 준비한 뭔가를 달성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면, 남편이 술·담배를 끊으면, 직장 상관이 하루 빨리 퇴사하면, 시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면 좋을 텐데 하면서 지금 당장은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해요. 그런데요 여러분, 그러면 영영 행복해질 수 없어요. 행복의 열쇠를 남에게 주지 말고, 내가 갖고 있어야 해요. 아셨죠? 목표지향적으로 저거만 하면, 저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여기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행복은 가까이에 있답니다.”

스님은 “관계가 행복할 때 진짜 행복할 수 있다”면서 “행복을 주변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 속에서 찾아보자”고 했다. 강의 내용이 ‘관계’라니. 스님이 나를 내치시진 않을 것 같았다. 그의 강의(상자기사 참조)는 ‘약손’이었다. 듣고 나니 뱃속이 따뜻해지는 기분. “스스로에게 ‘나를 위해 버텨준 내 몸, 그간 막 대했던 내 몸에게 고맙다’고 말해보라”는 대목에서는 눈물도 찔끔 나왔다.

90분간 이어진 강의는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에 끝났다. ‘열성 팬’들이 없어선지, 강연 후 단상 근처에 가서 스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드디어 인터뷰 섭외가 이뤄지는 순간! 강의를 들으며 명함에 안부 인사를 적은 나는 스님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스님은 ‘아이돌’처럼, ‘사생팬’ 같아 보이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휙 지나쳤다. 팔을 길게 뻗어 명함만이라도 받아달라고 하자 그것만 가져갔다. 아, 이건 뭐지? 알은체 정도는 하실 줄 알았는데….

터덜터덜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벚꽃이 저렇게 예쁘게 폈는데…. 그때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렸다. 혹시 스님이?…. 전화 목소리의 주인공은 군인이었다. 자기 후임 병사가 내 지갑을 주웠다며 갖다 주겠단다. 3분쯤 지났을까. 군인 2명이 나타났다. 얼마 전 특전사 요원들을 취재하며 반(半)군인이 된 나는 주책없이 동지애가 느껴졌다. 아 그래, 이달에 ‘태양의 후예’들 만난 게 어디야.

4월 11일 혜민 스님 페이스북 계정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무리 좋은 사람과의 인연도 시간이 지나면 상황에 의해서 변하고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친한 친구가 이사 갈 수도 있고, 가족이 아파서 저세상으로 먼저 갈 수도 있고, 어쩌다 연락이 뜸해지는 지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의 인연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인연의 문이 놀랍게도 또 열립니다.  


혜민 스님의 강의 노트◈ “세 번 베풀었는데 무반응? 그럼 그만두세요”
# 1 많이 베푼다

베푸는 것만큼 관계에 좋은 게 없다. 나도 누가 밥값을 내주면 그 사람이 좋아진다. 인덕 있는 사람들은 평소 잘 베푼다. 그렇다고 막 베풀지는 말자. 세 번 정도 베풀었는데 아무 반응도 없다면 선을 긋는 게 낫다. 관계란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만들어지는 거다.

# 2 서운하다면 서운하다고 ‘착하게’ 말한다

서운하다는 감정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말하자니 속 좁아 보인다. 그저 상대가 알아서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일부러 친구들을 서운하게 하려는 사람은 없다. 서운하다면 좋은 말로 말해보자. 상대방이 아닌 내 감정만 묘사한다. 이때는 ‘말꼬리 올리기’가 핵심이다.

# 3 몸으로 많이 논다

우리가 우울한 이유는 못 놀아서 그렇다. 어릴 적에는 몸을 써가면서 놀았는데 어른이 된 뒤로는 체면치레하느라 못 논다. 어릴 때처럼 즐겁게 신나게 놀아보자. 몸을 써가면서 상대와 연결감을 느낄 때 사람은 행복해진다.

# 4 숨을 편안하게 쉰다

마음이 불편하면 숨이 가빠진다.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숨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다.  다행히 숨하고 마음 상태는 딱 붙어 있다. 살면서 마음이 불편해지면 숨을 편안하게 쉬어보자. 숨을 편안하게 쉬다보면 마음도 저절로 편안해진다.

# 5 내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을 들여다보자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자꾸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진짜 많다. 하지만 강아지가 아파서 짖을 수 있는 것처럼, 그 사람도 아파서 그럴 수 있다. 관심 갖고 들여다보자.

# 6 장점이 단점이고 단점이 장점이다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다. 그 사람의 장점이 곧 단점이고, 단점이 곧 장점이다. 특히나 부부들이 서로를 문제라고 여긴다. 많은 분이 내게 부부관계를 상담한다. 잘은 모르지만 서로를 아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된다.



예천군민들과 혜민 스님의 문답

“아들이 과묵해요” “문제라 하시면 문제가 됩니다”
예천군민 1  “저는 아들이 셋 있어요. 그런데 셋째가 너무 과묵한데 어쩌죠?”

혜민 스님  “그걸 문제라 하시면 문제가 됩니다. 정서적인 언어장애, 발달장애가 있나요? 그게 아니라면 자꾸만 말을 시키려고 노력하지 말고, 함께 좋은 경험을 많이 하세요. 같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가면 할 이야기가 많아질 겁니다.”

군민 2  “다음에 어떻게 태어날지 궁금합니다. 이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궁금하고.”

혜민 스님
  “훌륭한 분이네요. ‘전생을 알려고 하면 이생을 들여다보라’는 부처님 말씀이 있어요. 저는 전생에 불교 관련한 일을 했기에 지금 이런 일을 하지 않을까요. 아마 다음 생애도 그 연장선에 있을 거예요. 다음 생에 더 나아지고 싶다면 지금 내가 좋게 변해야 합니다. 가족과 이웃을 보듬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군민 3  “49재(齋)는 죽으면 49일 만에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라는데요. 그 이후 차린 제삿밥은 누가 먹나요. 왜 우린 누가 먹지도 않는 제삿밥을 차려야 하죠?”

혜민 스님
  “그 49일이 심리적인 기간입니다. 49일보다 길수도, 짧을 수도 있습니다. 이생에 집착이 많은 사람은 쉽게 못 갈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잘 가겠지요. 좋은 마음이 있는 사람은 좋은 쪽으로 가는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미움과 분노가 많은 곳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평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제사는 정성인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대접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준비하면서 치유되는 효과를 얻지요.  자식들이 정성을 다하면 그분들이 돌봐줄 수도 있을 거예요, 잘은 모르지만요.” 


신동아 2016년 6월 호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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